한미 관세·투자 협상, 최종 타결 단계'상업적 합리성' 사업에만 年 200억 불 상한투자금 회수 가능 사업에만 투자 원칙 관철현금 200억 불+조선 1500억 불, 진척 따라 분납對韓 15% 상호관세 유지 … 수익은 韓美 5대5'엄브렐라 SPC', 다른 사업 수익으로 손실 보전
  •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오늘 한국과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생산적인 회의였다. 관세협정도 거의 최종 단계까지 갔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요 사항도 대화를 나눴다. 또한 매우 중요한 항목들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정상 특별만찬에서 이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내린 총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한미 관세·투자협상이 사실상 최종 타결 단계에 도달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상업적 합리성' 있는 사업에 연간 200억 달러 상한 투자

    양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한 87분 간의 정상회담에서 3500억 달러(약 498조2950억 원) 규모의 대미 투자·관세협상 세부 사항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 7월 30일 큰 틀의 협정이 타결된 뒤 투자 시기·규모·수익 배분 등을 둘러싼 세부 이견을 조율한 결과다. 정부는 미국 상무부, 재무부 등과 장기간 고위·실무급 협상을 이어온 끝에 이번 최종안을 도출했다.

    한국이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한해 연간 200억 달러(약 28조4750억 원) 상한을 두고 투자를 집행하기로 한 것이 이번 합의의 골자다. 여기서 말하는 상업적인 합리성은 투자 금액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보장된다고 투자위원회가 선의(good faith)에 따라 판단하는 투자를 의미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후 경주 국제미디어센터에서 위성락 안보실장과 공동 브리핑을 열고 세부 합의 내용을 공식화했다. 김 실장은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는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약 284조7400억 원)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약 213조5550억 원)로 구성된다"며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MOU 문안에 명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업적 합리성' 조항은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사업에만 자금을 투입한다는 원칙을 명시한 것으로, 미국 상무부 장관이 이끄는 투자위원회가 프로젝트의 수익성·현금 흐름·환수 가능성을 종합 심사해 판단한다. 한국 산업부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협의위원회는 전략적·법적 고려 사항에 대한 의견을 투자위원회에 제시하고, 투자위원회는 협의위원회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돼 있다.

    수익 배분 방식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가 5대 5로 배분하고, 한국이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하면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합의됐다. 김 실장은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도 조정 가능한 것으로 서로 양해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충격 최소화 … 엄브렐라 SPC·마일스톤·캐피털콜 도입

    개별 프로젝트별 손익을 통합 관리해 일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엄브렐라 형태의 SPC(특수목적법인) 구조도 도입된다. 또한 미국 측이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투자 요구를 제기하면 한국이 재협의를 요청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김 실장은 "2000억 달러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5500달러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다. 다만 중요한 점은 우리는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했다는 점"이라며 "2000억 달러의 투자가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고,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되면 납입 시기와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별도의 근거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시 자금 유출을 방지하고자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 진척 단계에 따라 자금을 분납하는 '마일스톤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김 실장은 "연간 200억 달러 한도는 캐피탈콜(capital call) 방식으로 운용한다"며 "일시에 전액이 투입되는 일은 없고, 사업별 '마일스톤'(단계별 진척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원은 외화 자산 운용 수익으로 충당할 계획이며, 국내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투자금은 2029년 1월까지 장기에 걸쳐 조달되며,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외화자산 운용 수익이 우선 활용되고, 필요 시 국제 금융시장에서 정부 보증채 형태로 자금을 일부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 중 조선업 협력 분야에 대한 1500억 달러 투자는 우리 기업 주도로 추진된다. 장기 선박금융을 포함해 자금 조달 구조를 다변화하고, FDI(외국인직접투자)와 보증을 결합해 외환 부담을 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조선·잠수함 건조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 조선산업 현대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거듭 밝혔다.
  •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0일 경북 국제미디어센터(IMC) 중앙기자실에서 한-미 오찬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0일 경북 국제미디어센터(IMC) 중앙기자실에서 한-미 오찬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관세 15% 유지 … 경쟁국 대비 자동차·반도체 가격 경쟁력 확보

    관세 부분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기존 0% 관세를 관철하진 못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제시한 25%에서 15%로 내린 관세를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 김 실장은 "상호 관세는 7월 30일 합의 이후 이미 적용되고 있는 대로 15%로 인하해 계속 적용하기로 했으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도 15%로 인하된다"고 밝혔다. 의약품과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MFN)를, 항공기 부품·제네릭 의약품·미국 내 비생산 천연자원 등은 '무관세 혜택'을 받는다. 반도체는 한국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가 적용된다.

    법안 절차는 올해 안에 추진된다. 김 실장은 "MOU를 이행하기 위해 법이 제정돼야 하고, 그 법이 국회에 제안되는 시점의 달 첫날로 소급해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다"며 "11월 내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외환시장 안정과 수출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달성한 것으로 평가했다. 김 실장은 "한미 금융 패키지가 우리 산업 경쟁력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 기반이 될 것"이라며 "양국 간 산업 공급망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