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에 꽂힌 경고탄 … APEC 전 계산된 시위스포트라이트 노린 北 … 국제 행사마다 되풀이트럼프 노벨상 욕망 노려 … 비핵화 대신 군축北美 회동, 득보다 실 … 韓 외교 자초한 패싱
  • ▲ 북한 미사일총국은 지난 22일 중요 무기체계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통신은
    ▲ 북한 미사일총국은 지난 22일 중요 무기체계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통신은 "평양시 력포구역에서 북동방향으로 발사된 2개의 극초음속비행체는 함경북도 어랑군 궤상봉등판의 목표점을 강타했다"고 전했다. 이번 시험발사는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김정식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장창하 미사일총국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22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잇달아 발사하며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군축협상 조기 재개의 판을 미리 깔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페이스메이커론의 패러독스'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PEC 앞두고 쏜 '대남 무력 시위' … 내륙 탄착, 의도된 경고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우리 군은 오늘 오전 8시 10분쯤 북한 황해북도 중화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발사된 단거리탄도미사일 수 발을 포착했다"며 "포착된 북한의 미사일은 약 350km 비행했으며 정확한 제원에 대해서는 한미가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해당 미사일은 동해상이 아닌 함경북도 인근 내륙 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해 9월 시험한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화성포-11다-4.5형'을 다시 쏜 것으로 추정했지만, 북한은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번 발사가 '새로운 무기체계'인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양시 역포구역에서 북동 방향으로 발사된 두 개의 극초음속비행체가 함경북도 어랑군 궤상봉등판의 목표점을 명중했다"고 보도했다.

    '화성포-11다-4.5형'은 일명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을 기반으로 탄두 중량을 4.5톤급으로 증대시킨 개량형 단거리 미사일이다. 사거리와 고도가 낮고, 변칙 기동이 가능해 방어망을 뚫기 용이한 특성상 주로 대남 타격용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통신이 언급한 '극초음속비행체'라는 표현으로 미뤄 봤을 때 해당 미사일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1마'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화성-11형은 극초음속 활공체(HGV) 형상의 탄두를 장착한 KN-23 계열 단거리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며, 지난 5월 8일 여러 기종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을 혼합 발사한 이후 167일 만이다.

    전직 안보 관료는 뉴데일리에 "북한은 단거리든 장거리든 탄도미사일 발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는 즉시 이를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우리는 핵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을 수용하고 조속히 협상장에 나오라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이어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이 해상 대신 내륙 지역에 탄착된 것은 단순한 기술적 오류라기보다는 의도적 경고 성격이 짙다"며 "이는 실제로 남한이나 일본을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으로, 바다에 떨어졌을 때보다 훨씬 강한 심리적 압박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 2012년 3월 27일 오전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의장석에서 버락 오바마(왼쪽 두 번째) 당시 미국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앞줄 오른쪽) 당시 러시아 대통령 등과 이야기하며 파안대소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 2012년 3월 27일 오전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의장석에서 버락 오바마(왼쪽 두 번째) 당시 미국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앞줄 오른쪽) 당시 러시아 대통령 등과 이야기하며 파안대소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국제행사 앞두고 반복된 北의 패턴 … 세계의 이목이 쏠릴 때 도발

    북한은 주요 국제회의나 외빈 방한, 정권 교체기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점을 정밀히 계산해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외교적 주목도를 극대화하고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 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울에서 열린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와 2012년 3월 26~27일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꼽힌다. 북한이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2년부터 2017년 사이에만 한미·한중·미중 간 양자 및 다자 정상회담, 핵안보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전후해 감행된 핵·미사일 발사가 약 17차례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북한은 한국이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이자 비(非) G7 국가로서 최초로 개최한 2010년 'G20 정상회의'를 핵 능력을 과시할 기회로 삼았다.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들이 서울에 모인 바로 2010년 11월 12일, 북한은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을 영변 핵시설로 초청해 우라늄 농축 공장과 건설 중인 경수로를 처음 공개했다.

    ◆北,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까지 가린 '보이지 않는 참가국'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 58개국 정상이 참여해 핵테러 방지와 핵물질 관리 강화를 논의한 글로벌 협의체였다. 한국은 2010년 미국 워싱턴에 이어 두 번째 개최국이자 아시아 최초의 주최국으로서 정상급 핵안보 의제를 주도하며 국제사회에서 '핵 비확산의 모범국가'로 위상을 높일 기회를 맞았다. 이 기회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 정상회의를 앞두고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기 위한 도발을 감행했다. 당시 북한은 미북 간 합의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2·29 합의)을 위반하고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해 국제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한국이 주최한 핵안보정상회의는 초청받지 않았으나 존재감을 드러낸(absent but very much present) 북한으로 인해 행사 본래의 외교적 조명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시스터'(The Sister)의 저자인 이성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뉴데일리에 "이로 인해 제2차 핵안보 정상회의 기간 미중 정상 간 대화에서도 긴장이 감돌았다"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이었던 게리 세이모어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에게 '북한이 이런 식으로 미친 짓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들과 핵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고성을 질렀다고 한다"고 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런 행사(경주 APEC) 시점에 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집권 초반처럼 지나치게 고립돼 있는 상황에서 대화 상대로 자신의 존재감과 입장을 알려야 할 때, 다른 하나는 현재와 같이 유리한 정세에서 자신감이 넘칠 때"라면서 "이번에는 후자에 가까운 경우로 APEC 정상회의에서 혹여 다뤄질 북한 관련 논의에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의도이며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과 상관없이 대화에 연연하지 않으며 핵무력 강화에 매진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 ▲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열병식이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사진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열병식이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사진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APEC 앞두고 트럼프 '노벨상' 욕망에 구애 … '비핵화' 아닌 '군축'으로

    APEC 계기 미북 정상회동이 성사된다면 한미연합훈련·전략자산 전개 중단이 상호신뢰구축조치(CBM)로 실현돼 양자가 군축 협상 국면으로 조기에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전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2025 피스포럼' 토론에서 "설령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합의 수준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및 7차 핵실험 중단과 한미연합훈련·전략자산 전개 중단 또는 축소 간의 맞교환이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노벨평화상 수상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 온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위협하는 전술핵은 유지한 채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 등 전략핵 폐기를 골자로 한 군축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ICBM인 '화성-20형'을 모형 수준에서 공개하며 압박 수위를 조절했지만, 기술적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실사격을 감행해 미국 본토를 직접 겨냥한 압박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ICBM 전력을 폐기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핵 위기 종식의 주역'으로 자신을 내세우며 노벨평화상 수상 명분을 확보하기 훨씬 용이해진다.

    노벨위원회가 평화상 평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요소가 '전쟁 예방', '위기 완화', '군축 진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ICBM 해체를 이끌어냈다'는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내면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중동 평화를 상징한 것처럼 유사한 수준의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김정은에게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인정'이라는 상징적 교환이 돼, 결국 한국은 북한의 전술핵 위협에 직면한 채 미북 양측 모두 정치적으로 이익을 보는 '상징적 군축–정치적 평화' 시나리오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김정은 회동, 득보다 실 … 韓 외교 '패싱' 자초 우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직접 회동하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회담이 성사되면 결국 김정은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북 회동은 시기와 무관하게 결국 양자가 군축 협상에 돌입하고 북한은 인도·파키스탄 수준의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얻게 되면서 한미동맹은 실질적으로 와해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은 이에 대응해 한미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을 추진해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결말로 귀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직 안보 관료는 "과거 역대 정부는 '코리아 패싱' 우려 때문에 미북 간 양자 회동을 막아 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패싱을 자초하는 분위기"라며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론'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는 미국인데, 페이스메이커(속도 조절 보조자를 의미하는 '페이스세터')는 마라톤에서 중간에 빠지는 들러리에 가깝다. 결국 판문점에 한·미·북 정상이 함께 설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APEC 정상회의를 불과 며칠 앞둔 만큼, 김정은은 도발 수위를 극단으로 끌어올리기보다 단계적 무력 시위로 압박의 강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당분간 도발 강도를 높이며 몸값을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북 간 협상 구도가 아직 불투명하지만, 두 정상 모두 양자 회담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므로 북한은 대화 재개를 앞두고 무력 시위를 이어갈 여지가 있다"며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미국 본토를 정면으로 겨냥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자극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군사적 시위를 병행하면서도 협상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며 긴장을 조율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