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화오션 제재로 韓美 '조선동맹' 정조준조선 협력, 美 해군력 우위 지탱하는 핵심축韓, 서태평양 작전 약점 메우는 군수 지원 거점희토류·조선 … 美中, 체제 설계 놓고 격돌中, 사드 보복 넘은 압박 … 韓 외교 시험대균형은 곧 양자택일 … 실용외교의 한계 지적도
  •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한 뒤 조시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한 뒤 조시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불과 보름 앞두고 미·중 간 통상 갈등이 극심한 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한가운데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금지 수준으로 통제하고,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에 미국이 무역법(해사·물류·조선업) 301조를 근거로 중국 해운사와 중국산 선박에 항만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하자 중국은 한국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을 전격 제재했다. 한국이 미·중 무역전쟁의 직접 타격 대상이 돼 공식 제재를 받게 된 것은 전례가 드물다.

    중국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는 미 정부의 관련 조사 활동에 협조하고 지지하면서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해쳤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표적은 한·미 조선협력 체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현장 시찰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대표, 조현 외교부 장관,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이 대통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토드 영 상원의원.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현장 시찰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대표, 조현 외교부 장관,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이 대통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토드 영 상원의원. ⓒ뉴시스
    ◆한화오션 제재, 韓美 '조선동맹' 정조준한 中의 정치적 경고

    이번 제재의 핵심은 일명 '마스가'(MASGA)라고 불리는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도하는 '미국 조선업 르네상스' 구상에서 한화오션은 가장 적극적인 외국 파트너 중 하나로 꼽힌다.

    한화는 지난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한 뒤 8월 말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참석한 선박 명명식에서 5년간 50억 달러 투자와 연간 건조량을 현재 1~1.5척에서 20척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해사청(MARAD)이 발주한 선박 건조 계약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며, 수천 명 이상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보복이 아닌 한·미 경제안보동맹을 직접 겨냥한 '정치적 제재'이자 APEC 외교전을 향한 경고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조선·해운 분야의 충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략 구도 속에서 한국의 산업기반이 갖는 안보적 의미를 재확인시켰다. 한국은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중국의 해양 팽창을 억제하는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세계 5위권의 군사력, 그리고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 가장 큰 약점인 군수 보급을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방위산업 기반을 가진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진 국가"라며 "특히 조선업 분야에서의 한·미 협력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미국의 해군력 우위의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평가했다.

    ◆공급망·희토류·조선 … '경제 체제 설계' 두고 맞붙은 美中

    한·미 조선협력은 단순한 산업협력을 넘어 미·중 세력 경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이러한 흐름에 대응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본격화되기 전 공급망 통제 카드를 선제적으로 꺼내 들었다. 중국 상무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4월 '국가안보와 산업안전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희토류·흑연 등 7개 전략광물의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했다.

    이에 미국은 오는 11월 1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희토류 통제, 301조 보복 관세, 조선·해운 분야 확전으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 내부의 규범과 질서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제 체제 전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의 구속력이 사실상 무력화된 현재, 양국은 각자 산업정책·보조금·기술표준을 무기로 독자적 경제질서를 구축하며 시장점유율을 넘어선 '룰(rule)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기업에 보조금과 세액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제조업 르네상스'를, 중국은 국유기업 중심의 보조금 체계와 금융 완화 정책을 유지하며 내수 중심의 자립경제인 '쌍순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열린 미국 해양청 발주 국가안보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 명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韓, '中 사드 보복' 이후 다시 맞은 '제도화된 압박'

    문제는 이 충돌이 한국을 직접 시험대 위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한화 제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의 '2차전'을 연상케 하지만 이번에는 훨씬 정교하다.

    2016년에는 롯데마트 영업정지, 한류 차단, 자동차 판매 급락 등 비공식 보복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법적·제도적 제재로 전환됐다. 중국은 이제 감정이 아닌 체계를 통해 압박하며 '미국과 협력하면 언제든 대가를 치른다'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이 미·중 경쟁의 중간지대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외교적 시험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실용외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의 한계에 맞닥뜨리고 있다. 대통령실은 "한화의 대중 거래가 적어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외교의 구조적 제약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실용외교는 동맹과 자율의 균형을 지향하지만, 세력 경쟁이 '체제 선택'의 국면으로 진입하면 균형은 곧 양자택일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균형은 곧 선택 … 현실적 한계에 직면한 李 정부 '실용외교'

    이 대통령이 안미경중의 종언을 고했듯이 외교 전문가들도 균형 외교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2023년 11월 보고서에서 "균형 외교는 한국의 전략적 이익과 국제질서의 추세에 맞지 않는다. 균형 외교는 한국의 의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안보와 세력 균형 유지에 필수적인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역내의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연성 견제를 목적으로 한 다자안보협력이 대세가 되고 있다"며 "균형 외교는 한국을 이러한 흐름에서 소외시킬 것이다. 전략 방향과 우선순위가 모호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관성을 깨고 미래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군사혁신과 투자를 본격화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중국의 강대국화는 지리적으로 근접한 한국에게는 잠재적 위협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한국의 근본적인 전략 이익은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팽창주의적 국가들을 억제할 수 있는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특히 근해에서의 중국의 해양 지배는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의 잠재적 위협이 증대되고 미·중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한국은 과거의 전략적 모호성 또는 균형 외교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한·미 동맹에 우선순위를 두는 국가안보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한국과 역외균형자인 미국은 세력 균형과 현상 유지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 이익을 공유한다. 미·중 경쟁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갔다. 전략적으로 선택이 필요한 경우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 대한 양자택일의 압박은 경주 APEC을 앞두고 거세지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지난 15일(현지시각) 워싱턴DC 재무부 청사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를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경제적 강압"이자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더 광범위한 계획의 일부"로 규정했다.

    그리어 대표는 "예를 들어 한국에서 스마트폰을 만들어 호주에 판매하면 그 회사는 먼저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휴대전화는 중국에서 조달한 희토류가 든 반도체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에 미국과 미국의 동맹 국가들이 함께 대항할 것을 촉구했다.

    해당 기자회견에서 베선트 장관은 "중국 정부 내 일부가 실망스러운 행동과 경제적 강압을 통해 세계 경제를 둔화시키기를 원한다면 중국 경제가 가장 피해를 볼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이건 '중국 대(對) 세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용납할 수 없는 수출 통제를 전 세계에 부과했다"며 "우리와 우리 동맹들은 지시를 따르지도 통제받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은 우리 동맹들에게 우리가 협력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가 돼야 한다"면서 이번 주 세계은행(WB)·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 기간에 동맹들과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중국 공산당이 기대한 사실상 '친중 외교'의 레토릭인 미·중 사이의 '균형'보다 '독자 노선'에 가깝게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산당은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먼저 통화하고 일본을 첫 순방지로 택한 점, 천안문 열병식을 불참한 점 등을 상징적 행보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산당 인사들은 '한국이 미국의 힘을 과신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여전히 '한반도 안보의 최종 관리자는 중국'이라는 구시대적 관념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정서는 이번 한화 제재의 정치적 맥락을 읽는 또 다른 단서로 볼 수 있다.

    실용외교가 동맹 강화와 자율성 회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국정 여기저기서 부상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4일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자국의 군사 자산을 한반도 외 지역으로 신속히 전개하고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반면 한국의 전작권 전환은 유사시 자국군 지휘권을 스스로 행사하겠다는 개념이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자국의 전략자산을 자유롭게 운용하려면 한국군의 통제 범위는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한국군이 전작권을 전면 행사하려면 미군의 전략적 자율성은 제한될 수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제2차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내란 특별검사팀의 7월 21일 오산기지 내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 압수수색에 대해 외교부에 항의서한을 보냄으로써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 직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있는 것 같다"며 "심지어 우리 군사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빼냈다고도 들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확인해 볼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서명한 방명록.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서명한 방명록. ⓒ뉴시스
    ◆경주 APEC, 美中 '룰의 전쟁' 무대 될까

    결국 APEC 정상회의는 미·중이 각자의 경제안보 질서를 놓고 벌이는 '룰의 전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한화 제재를 통해 한·미 동맹을 이간하고,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 강화로 압박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실용'이라는 수사는 선택을 유예하는 언어였고, APEC 국면에서 그 유예의 여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위에 다시 드리워지고 있는 사드 사태의 그림자는 이번에는 불매가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표준이라는 체제의 언어로 이뤄진 보복전이다. 미·중의 체제 전쟁이 심화될수록 한국의 외교 공간은 좁아진다.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중국이 한화오션을 겨냥한 것은 군사기술보다 산업 기반, 즉 조선·해운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전략적 목적이며 이는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에 맞불을 놓기 위한 체제 전쟁의 일부"라며 "이번 조치는 사드 때처럼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제도화된 경제 압박이라는 점에서 훨씬 구조적이며 장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의 구도에서는 어느 한쪽 진영에 실질적으로 서지 않으면 국익을 지키기 힘들다"며 "결국 이번 사태는 실용 외교가 현실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얼마나 작동 가능한지를 가늠하게 할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