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와 아슬아슬 균형외교트럼프, 인도 향해 거듭 강공 중H-1B 비자 개혁, 인도 IT산업에 치명타
  •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9월19일(현지시각) 비자 제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9월19일(현지시각) 비자 제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 뉴시스
    ■ 갈림길에 선 인도

    햇살이 내리쬐는 델리의 거리. 
    언뜻 보면 혼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체계와 리듬이 존재한다.
    인도가 직면한 지정학적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그들만의 길이 존재한다.

    필자는 최근 인도 외무부가 주최한 국제 기자단 연수에 참가해, 7개국 14명의 동료들과 델리와 뭄바이를 오가며 인도의 정책 결정자들을 만났다. 
    해운 장관, 인도 수출입은행 부총재 각국의 외교관 등과의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과연 인도의《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외교는 재편되는 국제 질서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가?

    전략적 자율성은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인 한국이나 일본에는 다소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비동맹 노선을 추구해왔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다자주의와 협력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외교적 공간을 넓혀왔다.
    최근 모디 총리는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서방이 민감하게 주시하는 전승절 행사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무역 전쟁에 직면했을 때 한국과 일본은 결국 굴복했지만, 인도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트럼프의 공격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균형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인도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지난 8월 미국은 인도산 주요 수출품에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2024~25 회계연도 기준, 인도의 대미 수출액은 약 865억 달러. 
    섬유·화학·보석·수산업 등 주력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며 고용 불안과 수익성 악화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이런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단순한 무역적자 해소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단절 요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도의 보조금 정책과《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산업 육성 전략이 미국 기업들의 시장 접근을 제한한다는 불만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에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H-1B 비자 개혁은 인도의 IT 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H-1B 비자 수혜자의 70% 이상이 인도인 기술자다. 
    이번에 발표된 최대 10만 달러에 달하는 신규 수수료 부과안은 인포시스, TCS와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해외 인력 의존도가 높은 중견·중소 IT 기업에도 부담을 안길 수밖에 없다. 

    인도 IT 산업은 전체 GDP의 8%를 차지하고, 미국은 최대 수출 시장이다. 
    따라서 이 조치가 본격 시행될 경우 단순한 인건비 상승을 넘어, 인도가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온 글로벌 소프트웨어 수출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GDP 성장률은 여전히 높지만 일자리 창출은 이에 못 미친다. 
    특히 청년층과 대졸자의 고용 부진, 비공식 노동시장 의존은 인도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집권 11년째를 맞은 모디 총리에 대한 국민 평가는 한층 냉정해졌다. 


  • ▲ 모디 총리의 줄타기는 지속가능할까? ⓒ 챗Gpt
    ▲ 모디 총리의 줄타기는 지속가능할까? ⓒ 챗Gpt
    ■ 인도의 버티기 작전

    그러나 인도의 잠재력은 여전히 막대하다. 
    인도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응해 아프리카와 글로벌 사우스 국가로 교역을 확대하고 있다. 
    2024~25 회계연도 기준 인도-아프리카 교역은 약 1,000억 달러에 달했다. 
    아세안 및 라틴 아메리카와의 무역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처의 다양화가 아니라, 공급망과 수요 구조를 전환해 선택지를 넓히려는 전략이다.

    인도 수출입은행 총재는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미국의 대인도 압박이 거세지고 있음을 인식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9월, 해당 은행은 트럼프 관세의 여파를 완화하기 위해 수출업체를 위한 추가 신용 지원책을 도입했다. 

    디지털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세계 3위 규모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이미 수십 개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을 배출하며, 데이터와 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혁신적 인프라다. 
    현지에서 만난 한 경제 전문 기자는 “인도의 비영리단체 NPCI가 운영하는 UPI(통합결제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의료·교육·공공서비스까지 연결되는 국가적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 8월 기준 UPI의 월간 거래 건수는 200억 건을 돌파했고, UAE, 싱가포르, 프랑스 등 해외에도 도입되며 국제적 확산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도 정부는 조선·해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현재 인도의 조선업은 세계 16위 수준(시장 점유율 약 1%)에 머물고 있지만, 정부는《Maritime India Vision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톱10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계 2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과의 협력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기술·인력·인프라 부족》이라는 도전 과제가 존재하지만, 강력한 정책 의지와 자본 투입, 국제 기술 제휴가 결합될 경우 인도는 공급망과 해양 안보 분야에서 더욱 큰 전략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마침 기자단이 인도에 체류하던 시기, 조선업 육성을 위한 100억 달러 규모의 종합 계획이 내각에서 승인됐다.



  • ▲ 뭄바이 자와할랄 네루 항만청 본관 앞. 이번 연수에는 7개국에서 총 14명의 기자가 참가했으며, 이 중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3명이 참여했다. 앞 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 필자 제공
    ▲ 뭄바이 자와할랄 네루 항만청 본관 앞. 이번 연수에는 7개국에서 총 14명의 기자가 참가했으며, 이 중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3명이 참여했다. 앞 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 ⓒ 필자 제공
    ■ 과연 성공할까?

    다만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구체화되려면, 인도의 대외 전략 또한 진화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에 단순히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보조금·시장 접근성 문제에는 점진적 개혁 의지를 내비치되, 동시에 신흥시장 개척과 기술 혁신으로 충격을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국제 협력체계에 대한 접근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된 전략적 협의체)를 단순히 동참하는 틀로 한정짓지 않고, 해양안보·공급망·첨단기술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미국이 인도가 속해있는 BRICS와 여타 협력체계에 대해 갖는 경계심을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오늘날, 도전과 기회가 교차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델리의 혼잡한 길거리 속에도 나름의 질서가 흐르듯, 인도 역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뚫고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필자로서, 인도의 전략적 자율성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그 선택이 안겨주는 막대한 책임과 예측 불가능한 도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 ▲ 필자 요시타 켄지 기자. ⓒ
    ▲ 필자 요시타 켄지 기자. ⓒ
    [편집자 주] 필자는 일본《산케이신문(産經新聞)》산하 유력 영자지인《재팬포워드(Japan Forward)》의 서울특파원이다.
    22년부터 한국 관련 뉴스를 영어로 보도하는 그는 한국어문 구사에도 아주 능하다. 
    미국 윌리엄&메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The Diplomat, Asia Times 등 영자지는 물론 일본의 주간《신쵸》월간《하나다》에도 활발한 기고활동을 하고 있디.

    본지에 "일본인 기자의 양심고백, 외신기자인 나도《계몽》되었다 …《한국 법치주의 붕괴》우려한다"를 기고, 주목을 받았다.
    이글은 원로언론인둘의 모임인 사단법인《대한언론인회》에서 발행하는 신문《대한언론인회보》에도 다시 실릴만큼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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