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B, 대만 성장률 5.1% 전망…韓은 0.8%로 5배 差반도체·AI 투자로 초고속 성장…아시아 '소룡'에서 '대룡'으로제도적 유연성-세제도 뒷받침…韓은 규제·정치 갈등에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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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 타이베이에서 '컴퓨텍스 2025' 개막을 앞두고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50919 AP/뉴시스. ⓒ뉴시스
그야말로 '진격의 대만'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와 안보 환경 등이 비슷한 대만이 국민소득에서 한국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꽃인 'AI 붐'에 제대로 올라탄 것 뿐만이 아니다. 균형 잡힌 반도체 생태계, 기업을 대하는 정부와 국회의 인식과 태도 등이 뿌리에 있었다.9월30일 아시아개발은행(ADB)가 발표한 9월 '아시아경제전망'에 따르면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3%에 이어 올해도 5.1%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올해 성장률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0.8%)의 5배에 이른다.이에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진국의 기준점이라는 1인당 GDP 4만달러도 대만이 내년에 우리보다 먼저 진입할 공산이 크다. 한국이 당분간 재추월하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대만은 한국, 싱가포르, 홍콩 등과 1980년대 경제가 고속 성장한 아시아의 4대 신흥공업국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 1970년대 말 일본에서는 아시아 경제 대국인 자기 나라를 '대룡(大龍)'으로, 일본 뒤를 빠르게 좇고 있는 4개국을 '작은 용(四小龍)'에 비유하기도 했다.이들 나라 모두 식민지 역사를 경험했고, 국가 주도의 경제시스템과 수출 중심 성장전략을 추진했으며 높은 교육열과 저축률을 바탕으로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이 가운데 대만은 약진하는 중국의 그늘에 가려 '네 마리 용' 중 가장 존재감이 약했다. 그런 대만이 2024년 일본을 넘어선 데 이어 우리나라까지 앞지를 태세다. 일본이 '소룡'으로 여긴 나라가 '대룡'이 되는 것이다.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1950~1960년대 미국의 대규모 원조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농지개혁 등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섬유·전자·기계 등 수출산업과 중소기업 육성, 정부의 민간의 유기적 협력으로 연평균 8~9% 경제성장을 지속했다.본격적인 성장은 200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과 반도체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이들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적극 참여하면서 시작됐다.대만 경제의 급성장은 2020년대에 본격화했다. AI 붐에 제대로 올라타면서다. TSMC(대만반도체제조회사), ASE 등 대만 반도체기업들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에 AI칩을 공급하면서 수출이 크게 뛰었다.간판 기업 TSMC는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의 AI칩을 생산하면서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시장 70%를 지배하고 있다. TSMC 외에도 반도체 부품·장비·설계 등에서 다수의 혁신기업이 쏟아져 AI 생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대만 경제도 위기가 없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제도적 장치로 위기를 넘겼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에는 대규모 외화보유액과 금융규제정책을 방패 삼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위기를 관리다. 우리나라처럼 금융자유화 일변도로 나아가지 않고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자본을 규제하는 식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2020년에는 여느 나라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도 맞았다. 당시 세계는 곳곳의 공장이 폐쇄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와해했다. 하지만 대만은 이러한 충격 속에서도 성공적 방역정책을 바탕으로 제조업 기반을 유지해갔다.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강화하는 동시에 디지털 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면서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했다.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도 대만 입장에서는 큰 시험이었다. 과거 대만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높았으나, 산업의 중국의존도를 낮추고 특히 첨단산업의 경우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으로 급속히 이동시키고 있다.무엇보다 대만은 정부의 정책 혁신과 유연성이 뛰어나다. 최근 고성장 역시 이런 전략과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만의 경제시스템은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 산학협력, 전략적 클러스터(산업집적지역) 육성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다.기업을 경영하려는 의욕에 영향을 미치는 세제부터 우리와 다르다.법인세율만 하더라도 한국은 24%에서 다시 25%로 올리려는 반면 대만은 20%다, 상속세 최고세율도 한국은 50%(대주주 할증의 경우 60%)를 고집하고 있지만, 대만은 2009년 50%에서 10%로 낮춘 바 있다. -
- ▲ 2021년 대가뭄 당시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에 있는 저수지(스먼)의 모습. 210502 신화/연합뉴스. ⓒ연합뉴스
대만은 2016년부터 "아시아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고 하면서 AI 반도체에 집중 투자했다. 산업단지에 금융·세제·용수·전력·인력을 묶은 패키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정부는 정책지원을 아끼지 않았다.2021년 100년 만의 가뭄 당시 일부 지역에는 주 2회 급수마저 중단하는 등 국가적 비상사태였지만, 국가 생명인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논농사에 사용되는 농업용수를 끌어다가 TSMC 공장에 우선 공급했을 정도다.또 산업계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자 대학에 1년이 아닌 6개월마다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뽑도록 하기도 했다.2023년에는 여·야 합의로 반도체 등 첨단기술 지원을 위한 '대만판 반도체법'을 통과시켜 투자와 고용을 총력 지원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등 전략산업 연구개발비용의 25%, 시설투자의 5%에 대해 세액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또 우리나라가 반도체산업 종사자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인정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끝내 통과시키지 못했지만, 대만은 2017년 반도체 등 첨단산업 관련 기업에 한해 '주 40시간 근무'의 예외를 적용하는 근로법을 제정했다.특히 우리나라보다 대기업 경제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만은 정부가 기업과 연구기관간 긴밀한 협력을 직접 조율하고 주도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식으로 혁신 산업생태계를 만들었다.TSMC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세계 반도체업계를 지배하는 TSMC는 1987년 대만 정부 산하의 공업기술연구원(ITRI) 주도로 설립됐다. 당시 대만은 전자산업을 육성하려 했으나, 대규모 설비투자를 할 민간기업이나 자본이 부족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과정을 담당하는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기 벅찬 상황이었다.이때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며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모델의 가능성을 본 장중머우(모리스 창) ITRI 박사가 나타났다. 그는 정부를 설득해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으로 TSMC를 세웠다.ITRI가 기업과 정부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벤처 창업과 기술 이전을 체계화했다. 이후로도 정부의 세제 및 인프라 지원, R&D 보조, 인력양성정책을 끌어내는 바탕이 됐다.실제 스마트폰과 전자제품 조립분야에서 세계 최대 생산역량을 갖춘 폭스콘, 무선통신용 칩과 IoT 칩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미디어텍 등도 이러한 기반 위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첨단기술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다. TSMC는 설립 초창기부터 오로지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에만 집중했다. 대규모 자본을 선제 투입해 첨단 미세공정 기술을 확보했다. 또 돌다리를 두드리는 식으로 반도체 수요를 확실히 확보한 뒤 투자에 나섰다.경영학계에서는 이러한 대만의 경제적 특징을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또는 '선지국가(先知國家, visionary state)'로 설명한다. 즉 대만 정부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전략적으로 신성장 산업에 투자하면서 민간기업과 긴밀히 협력해 시장 혁신을 촉진하는 '선견지명이 있는 국가'인 셈이다.무엇보다 이념보다는 실용적인 접근방식과 정책을 선호한다. 반면 한국은 정쟁에 발목이 잡혀 반도체 특별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했다. 대만의 질주는 한국의 제자리걸음을 유난히 도드라지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