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국정자원 전산실 배터리 화재…시스템 647개 가동 중단택배·세금·신분증까지 줄줄이 먹통…국가시스템 마비에 대혼란서버만 이중화된 허술한 보안 체계…정부판 카카오 먹통 사태 재연2023년 대규모 마비 사태 후 법 개정하고 분원도 했으나 '유명무실'배터리 화재 특성상 완전 지연…피해 파악 어렵고 복구 착수도 못 해
  • ▲ 27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창문이 화재로 깨져 있다. 250927 ⓒ연합뉴스
    ▲ 27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창문이 화재로 깨져 있다. 250927 ⓒ연합뉴스
    전날인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에 있는 전산실 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서버 등 전산장비 보호를 위한 선제적 중단 조치라고 강조했으나, 화재로 인해 국가 전산망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정부 온라인서비스가 온통 먹통이 됐다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화재 진압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정부는 정확한 피해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복구작업에도 착수하지 못해 국가 전산망 정상화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라 볼 수 있는 국정자원 대전 본원에 불이 난 것은 지난 26일 20시15분께다.

    전산실 내 '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UPS)'를 작업자가 지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불꽃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UPS는 전산시스템에 단절 없이 전기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장치다.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는 58V 리튬배터리로, 12개를 수납하는 캐비닛 총 16개 중 8개가 불에 탄 것으로 소방당국은 파악했다. 내부에 있던 리튬배터리의 절반가량이 소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재로 전산실 내부 열기가 강해지자 전산실 적정온도를 유지해주는 항온항습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서버 등 전산장비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국정자원 측은 대전 본원 내 시스템 647개의 전원을 모두 차단했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화재 영향으로 항온항습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서버의 급격한 가열이 우려됐고, 정보 시스템을 안전하게 보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가동을 중단시켰다"고 설명했다.

    대전 본원과 분원 개념인 광주·대구센터를 둔 국정자원에는 정부 업무서비스를 기준으로 모두 1600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이 있다.

    이 중 가동이 중단된 시스템 647개는 대전 본원에 있다. 전체 국가 정보 시스템의 3분의 1 이상이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1등급 12개, 2등급 58개 등 총 70개 핵심 서비스가 직접 장애를 입었다. 주민등록등본 등 전자민원 발급이 중단된 정부24, 국민신문고, 모바일 신분증, 행정심판시스템, 청렴포털 등이 포함된다.
  •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주요 업무시스템이 중단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우체국에 우체국금융 장애 발생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250927 ⓒ뉴시스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주요 업무시스템이 중단된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우체국에 우체국금융 장애 발생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250927 ⓒ뉴시스
    불편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우체국이 가장 큰 문제다. 택배 물량이 몰리는 연휴를 앞두고 서비스가 마비 상태에 빠지며 '우편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우편 서비스의 경우 이날 배달 예정인 소포우편물은 배송시스템을 오프라인 체계로 전환해 배달하며 시스템 복구 일정에 따라 신속하게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다만 우체국 창구가 운영되지 않는 토요일인 이날은 소포 배송에서 미리 시스템에 입력된 정보를 활용하지만, 다음 주까지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으면 우편물 접수·배송처리가 전면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며 소요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다음 달 14일까지인 추석 명절우편물 특별소통 기간 전국 우체국을 통한 우편 물량이 지난해보다 4.8% 증가한 일 평균 약 160만개가 접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사태 장기화시 물류대란도 우려된다.

    우체국금융의 경우 입·출금 및 이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 보험료 납부·지급 등 모든 서비스가 중지된 상태다. 우정사업본부는 입·출금과 이체서비스 중단 상황에서도 우체국예금·보험 계약 유지에는 영향이 없다면서 보험료 납부, 환급금 대출 상환 지연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사실상 대다수 정부 부처 홈페이지와 주요 시스템이 셧다운 상태다. 화재로 인해 대외서비스는 물론, 내부 업무전산망인 '온나라시스템'도 마비돼 접속할 수 없다. 전 부처의 문서 작성과 결재, 보고 등 행정업무를 통합해 처리하는 핵심 전산망이다.

    기재부는 열린재정과 국가재정관리시스템(디브레인)이 멈췄고, 조달청의 나라장터도 불통이다. 통계청 역시 국가통계포털(KOSIS) 등 주요 데이터 서비스가 중단됐다. 교육부의 나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역시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디지털 원패스 로그인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김민재 차관은 "현재는 항온항습기를 우선 복구 중이며 이후에 서버를 재가동해 복구조치를 하고자 한다"면서 "우체국금융과 우편 등 대국민 파급효과가 큰 주요 정부 서비스 장애부터 신속히 복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서버만 이중화된 허술한 체계…정부판 카카오 먹통 사태
    이번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시스템 마비는 데이터를 보관하는 클라우드 환경의 이중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태가 커진 것으로 지적된다.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판교 데이터센터 운영관리도구가 이중화되지 않아 대규모 장애가 벌어졌던 문제가 '행정부 버전'으로 되풀이된 셈이다.

    더군다나 대규모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2년도 안 돼 재발하면서 정부대응체계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불이 난 전산실은 국정자원이 자체 운영하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인 'G-클라우드 존'에 해당한다. 이 구역의 재난복구(DR) 시스템은 서버 DR과 클라우드 DR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환경이다.

    국정자원은 서버의 DR 환경은 갖춰져 있지만, 클라우드 DR 환경은 구축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규모 클라우드 운영체계이다 보니 똑같은 환경을 갖춘 '쌍둥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지역적으로 떨어진 곳에 갖춰놓고 화재 등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같은 기능을 맡도록 하는 서비스 이중화(백업) 체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DR 시스템이 서버 DR로 절반 정도만 갖춰져 있다 보니 이번 화재로 정부 시스템 다운이라는 속수무책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카카오는 먹통 사태 이후 재난복구 시스템을 데이터센터 3개가 연동되는 삼중화 이상으로 고도화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정자원 대전 본원은 공주 센터와 이중화하는 작업이 계획됐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진척이 늦어졌다는 것이 클라우드업계 전언이다.

    아울러 2005년 설립된 대전 본원은 건축 연원 20년 이상에 노후화 문제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정자원이 올해 초 클라우드 재난복구 시스템 구축의 세부방안을 내놓은 것과 더불어 5년 내 순차적 이전 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상세 컨설팅 작업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 ▲ (좌로부터) 윤상기 소방청 장비기술국장, 행정안전부 이용석 디지털정부혁신실장, 김민재 차관,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 등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정부 서비스 장애 관련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50927 ⓒ연합뉴스
    ▲ (좌로부터) 윤상기 소방청 장비기술국장, 행정안전부 이용석 디지털정부혁신실장, 김민재 차관,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 등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정부 서비스 장애 관련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250927 ⓒ연합뉴스
    또 다른 문제는 2023년 11월 새올행정시스템 전산망과 정부24를 포함한 대규모 온라인서비스 먹통 사태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국정자원에서 유사 사고가 재발했다는 점이다.

    앞서 2023년 11월17일 공무원 전용 행정 전산망인 시도 새올행정시스템과 정부24 서비스가 네트워크 장비 '라우터' 포트 불량 등 사유로 마비됐다.

    같은 달 22~24일에 걸쳐 주민등록시스템, 나라장터, 모바일 신분증 등 온라인서비스가 순차 중단되면서 일주일 사이 전산망 사고 4건이 이어졌다. 초유의 전산망 마비 사태라는 오명이 뒤따랐다.

    뿐만 아니라 행안부가 국가 주요정보자원을 통합 보호·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 거점인 국정자원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전망이다.

    애초 행안부는 이번 화재사고가 발생한 대전 본원에서의 서버 이상 등에 대비하기 위해 광주와 대구에 분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화재 직후 대부분의 정부 부처 온라인서비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중단되며 분원조차 본래 목적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허점을 노출했다.

    더 큰 문제는 열폭주 등 리튬배터리 화재 특성상 소방당국의 진화작업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시스템 복구는커녕 이튿날인 27일에도 피해 현황 파악을 위한 내부 진입조차 못 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지, 어떤 시스템을 먼저 복구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전산망 장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처음으로 위기상황본부를 가동한 데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대응기구를 격상했으나, 국가 전산망 심장부가 정상 가동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이날 브리핑에 동석해 "화재 원인은 감식을 해봐야 알 것"이라며 "손상에 따라 (복구가) 바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있을 텐데 복구하면서 공개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 "오늘 아침까지 화재 열기가 안 빠져 복구작업에 착수를 못 했다"며 "복구가 언제 끝날지는 열기가 빠지고 소방안전점검이 끝나고 서버를 재가동해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상기 소방청 장비기술국장은 "배터리 교체과정에서 불꽃이 발생한 것은 확인됐지만, 전원이 차단된 상태에서 왜 발화했는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이번 정보시스템 장애에 따른 국민 불편에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번 장애로 인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큰 불편을 겪으신 데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장애를 신속히 복구하고, 상황이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