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미니멀리즘 상징, 할리우드 스타들 애호 브랜드패션업계 "역사 만든 거인 잃었다"…멜로니 총리도 추모
  • ▲ 조르지오 아르마니. AP/뉴시스. ⓒ뉴시스
    ▲ 조르지오 아르마니. AP/뉴시스. ⓒ뉴시스
    이탈리아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 4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91세.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룹은 성명을 통해 "창립자이자 브랜드의 원동력이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사망을 깊은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그룹은 아르마니가 가족 등 가까운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우아함의 황제', '미니멀리즘의 거장', '레 조르지오(Re Giorgio·조르지오 왕)'로 불린 그는 현대 이탈리아 패션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과 사업가적 통찰력을 결합해 연간 약 23억유로(약 3조7000억원) 매출 규모의 패션 그룹을 구축했다.

    아르마니는 올해 6월 밀라노 패션위크 행사에 건강 문제로 처음 불참했다.

    또한 이번 달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 브랜드 창립 50주년 기념 대형 행사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아르마니를 밀라노 기성복 패션계의 거장으로 평가하며 구조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패션계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전했다.

    1934년 7월 밀라노 남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르마니는 처음에는 의사를 꿈꿨다. 하지만 대학을 2년 만에 중퇴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패션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으며 백화점 쇼윈도 디스플레이 일을 돕는 과정에서 패션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1975년 그는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세르지오 갈레오티와 함께 폭스바겐 차량을 1만달러에 팔아 남성복 브랜드를 창업했다. 여성복 라인은 이듬해인 1976년 선보였다.

    그의 대표적인 혁신은 안감이 없는 스포츠 재킷 디자인이었다. 1970년대 후반 등장한 이 재킷은 할리우드와 월스트리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르마니는 여기에 단순한 티셔츠를 매치하는 스타일을 제안하며 이를 "패션 알파벳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표현했다. 그의 정장은 곧 부유층 남성의 필수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을 위한 바지 정장 스타일을 직장 복장으로 정착시킨 것도 아르마니의 혁신 중 하나였다.

    어깨 패드가 들어간 재킷과 남성복 스타일 바지로 구성된 이른바 '파워 슈트'는 1980년대 등장한 비즈니스 여성의 상징적 복장이 됐다.

    아르마니는 2015년 자서전에서 "나는 남성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여성의 이미지를 강하게 만든 최초의 디자이너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베이지와 회색을 중심으로 한 절제된 색감, 고급 소재,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발전시켰다.

    1980년대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는 그의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 영화에서 배우 리처드 기어가 아르마니 의상을 입고 등장하면서 디자이너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아르마니는 200편이 넘는 영화 의상 제작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 ▲ 생전 모델들과 함께 사진 촬영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운데).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생전 모델들과 함께 사진 촬영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운데).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영화 시상식에서도 많은 배우들이 그의 의상을 선택했다. 숀 펜, 조디 포스터, 조지 클루니, 소피아 로렌, 브래드 피트 등은 대표적인 아르마니 의상 애호가로 꼽힌다.

    아르마니 스타일의 영향력은 단순한 의복 디자인을 넘어 패션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의 패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패션 철학은 편안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디자인이었다.

    그는 생전에 "난 실제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다. 실용적이지 않은 의류는 가치가 없다" 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2023년 기준 아르마니 그룹은 직원 9000명 이상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7개의 산업 허브와 6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의류와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향수, 화장품, 가구, 인테리어 제품 등을 판매하며 브랜드 사업을 확장했다. 또 레스토랑, 클럽, 스포츠팀 등 다양한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아르마니는 기업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생활을 철저히 관리하며 강한 경영 통제를 유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어린이 자선단체활동에 참여하고 에이즈 퇴치운동을 지원했으며 2002년 유엔 난민 친선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현재 아르마니 그룹의 후계 구도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아르마니는 생전 남성복 총괄 레오 델 오르코와 여성복 총괄인 조카 실바나 아르마니를 후계 후보로 언급한 바 있다.

    패션계 인사들도 잇따라 애도의 뜻을 밝혔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오늘 세계는 거인을 잃었다. 그는 역사를 만들었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몽클레르 CEO 레모 루피니는 "'우아함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조르지오"라고 밝혔다.

    알레산드로 베네통은 그를 "진정한 이탈리아의 천재"라고 평가했다.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 역시 그의 창의성과 패션계 영향력을 기렸다.

    프랑스 명품 그룹 LVMH는 성명을 통해 "그는 전후 패션 디자이너 세대의 마지막 인물이었다"면서 그의 유산이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케링 그룹 회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 역시 "그의 영향력은 패션계를 넘어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배우들도 애도를 이어갔다.

    배우 앤 해서웨이는 "이탈리아 패션계의 황제였다. 당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SNS에 남겼다.

    줄리아 로버츠도 그를 "진정한 친구이자 전설"이라고 추모했다.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그의 우아함과 창의성은 이탈리아 패션을 세계에 알렸다"고 평가했다.

    아르마니의 장례식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6일과 7일 밀라노 아르마니 극장에서 공개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