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상회담 후 '영토편입, 2차 관세' 등 푸틴에 손'강대국'간 논리로 전쟁 당사국 우크라 배제한 '제국주의' 지적정상회담 앞둔 韓, 트럼프 압박 및 '패싱' 우려李정부 햇볕 정책에 김정은 '핵무장 확대' 응답 北 변화 없는 대화책은 한미 갈등만 야기할 수도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갤러리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그린 작품. ⓒ연합뉴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갤러리에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그린 작품. ⓒ연합뉴스
    "젤렌스키가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합한 지역)'를 포기하면 러시아와 신속한 평화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유럽 주요국 정상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돈바스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종전협상이 주권국을 선제 침공한 '강대국' 러시아의 논리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알래스카 회담 같은 방식이 한반도 안보에 적용될 경우다. '힘에 의한 평화 추구' 역사의 반복 속에서 자강하는 국가이자 강력한 동맹을 지닌 나라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알래스카 회담에서 미·러 두 정상은 실질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고만 했을 뿐, 세부 합의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의 입장 선회를 시사했다.

    그는 트루스소셜에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제일 나은 방법은 단순한 휴전협정이 아니라 평화협정으로 직행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돈바스 합병 주장을 두둔하는 취지의 글을 썼다. 회담 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일부 영토를 주고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에게 "러시아로부터 단순 휴전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돈바스 면적은 남한(10만㎢)의 절반 수준인 약 5만3200㎢로, 약 665만명이 거주하며 39% 정도가 러시아계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도 이곳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루한스크주의 대부분과 도네츠크주 약 70%를 장악했다. 이미 돈바스 전체의 약 88%인 약 4만6570㎢를 점령하고 있고, 나머지 12%(약 6630㎢)까지 우크라이나에 포기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대신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남동부 수미·하르키우 내 장악지역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수미·하르키우 지역 면적은 약 440㎢ 정도다. 면적만 놓고 따지면 우크라이나가 양보해야 할 면적이 돌려받을 땅의 15배에 이른다. 무엇보다 수미 일대는 낙후된 지역이지만, 석탄 등이 풍부한 돈바스는 광공업, 제조업, 교통 중심지다.

    대(對)러시아 관세 압박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180도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 등에 "100%의 세컨더리 관세(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회담 뒤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은 필요 없어졌다. 지금은 러시아 제재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왜 러시아에 제재를 더 부과해 휴전에 동의하도록 강제하지 않냐는 질문에 러시아에 대한 더 많은 제재가 (협상에 도움 된다는) 증거가 없다"며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순간 세계에서 러시아와 협상테이블에 앉아 평화협정을 맺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예정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의 영토 포기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회담에서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간 3자 회담 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실현 여부는 불확실하다.
  • ▲ 한·미 연합훈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한·미 연합훈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앞서 유엔 안전보상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략했을 때 국제사회는 이를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세계경찰을 자임해 온 미국이 이처럼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사후적으로 추인한다면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게다가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됐다. 침략을 당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는데도 영토를 내놓으라는 것은 '강대국의 2차 가해'와 다름없다. NYT는 "제국주의 시대 방식으로 21세기의 문제를 논의한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강대국들의 담합에 휘둘리는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동맹과 우방도 거래대상일 뿐이라는 냉혹한 논리가 지구촌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나 알래스카 회담 같은 방식이 한반도 안보에 적용될 경우 북한의 '서울 패싱' 전략이 먹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북한이 지난달 공식 담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밝힌 반면 이달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에 대해서는 "잔꾀"라고 조롱한 것도 통미봉남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전날 "평화를 지키는 것이 진짜 유능한 안보"라면서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핵 무력 강화 의사를 밝히면서 이 대통령을 압박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미국과 한국의 합동 군사연습은 가장 적대적이며 대결적 의사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군사력 시위 행위들은 전쟁 도발 의지의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조성된 정세는 핵 무장화의 급진적 확대를 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 대통령이 북한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면서 대화 의지를 드러냈음에도 화해 제스처를 일축하고 정면 대응에 나선 셈이다.

    이 대통령은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 대통령은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 동맹 현대화'를 앞세운 트럼프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감축과 역할 조정, 방위비·국방비 인상 압박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만에 하나 북·미 직거래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핵 군축 협상으로 직행할 경우다. 한국으로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시나리오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위험천만한 장사꾼으로부터 한·미 동맹을 사수해야 한다.

    베를린 장벽과 동서냉전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국방과 안보에 관한 대국민 연설'에서 "우린 우리의 힘으로 평화를 지킨다. 약함은 오직 침략을 부를 뿐"이라고 설파했다.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은 약소국 배려 없는 강대국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강대국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개별 현안에 대해 우리의 주도권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돌발카드를 내밀지 알 수 없다. 정부는 '알래스카 노딜'의 함의를 면밀히 검토해 한반도 안보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특단의 비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이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