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상·음악상·연출상·남우주연상·작품상 등 6개 부문 석권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무대 변화·음악 편곡 등 현지화 전략 성공
  •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NHN링크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NHN링크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로봇이라는 독창적인 소재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토니상을 휩쓸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극본상(박천휴·윌 애런슨), 무대 디자인상(데인 래프리·조지 리브), 음악상(박천휴·윌 애런슨), 연출상(마이클 아든), 남우주연상(대런 크리스),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차지했다.

    토니상은 미국 연극·뮤지컬계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공연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린다. 한국 뮤지컬이 토니상을 수상한 건 지난해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위대한 개츠비'(의상 디자인상)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국내에서 기획·개발한 작품이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토니상을 받은 것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처음이다.

    박천휴는 "정말 놀랍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한국의 인디팝과 미국 재즈, 현대 클래식 음악, 전통적인 브로드웨이를 융합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감성이 어우러진 '멜팅팟(용광로)'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번 토니상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총 6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차트 1위와 그래미 노미네이트,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드라마 '오징어게임' 에미상,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이어 한국 문화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윌·휴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와 윌 애런슨은 뉴욕대학교(NYU)의 뮤지컬 전문 대학원 과정인 티시예술학교에서 알게 됐다. 2010년 '번지 점프를 하다'의 대구뮤지컬페스티벌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고스트 베이커리' 등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연 배우 대런 크리스(왼쪽), 헬렌 J. 셴 등이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AP=연합뉴스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연 배우 대런 크리스(왼쪽), 헬렌 J. 셴 등이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AP=연합뉴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윌·휴 콤비'는 카페에서 영국 록밴드 블러의 리더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 듣다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 곡은 기계가 발달할수록 오히려 고립되는 사람들을 로봇에 비유했다.

    작품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쓸 때부터 한국어·영어 버전을 동시에 작업했다. 우란문화재단 창작지원 사업을 통해 2015년 트라이아웃(시범공연)을 했고, 2016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정식 초연했으며, 이후 CJENM을 통해 상업 프로덕션으로 발전했다.

    2020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영어 버전 시범공연을 가진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을 8번이나 받은 유명 제작자 제프리 리처즈와 계약을 맺고 지난해 11월 12일 1000석 규모의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했다. 2023년 '퍼레이드'로 토니상 베스트 리바이벌 뮤지컬상을 받은 연출가 마이클 아덴, 드라마 '글리'로 잘 알려진 배우 대런 크리스 등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프리뷰 당시 주간 매출 30만 달러(약 4억) 이하로 판매 부진을 겪었으나 현지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반딧불이들'(fireflies)라는 팬덤이 생기며 관객 수를 늘려갔다. 12월에는 100만(약 13억5000만원) 달러를 처음 돌파했으며, 토니상 후보 발표 이후 최근 4주간 매출액은 1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브로드웨이 버전은 대극장 규모에 맞게 무대·배우 구성·넘버에 변화를 줬지만 극 중 배경은 미래의 서울이고, 올리버의 옛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설정은 동일하다. 멀티맨 배우 한 명이 맡은 역할들을 분리해 4명의 배우가 무대를 이끌며, 한국 공연에 없던 제임스의 아들, 클레어의 주인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전사를 보강했다.
  • ▲ 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극본상을 수상한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극본상을 수상한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영상에 사용하는 한국어 문구를 장면화하거나 극 중 올리버가 기르는 식물인 '화분'을 한국어 발음으로 부르는 등 한국적인 요소를 곳곳에 녹여내 독특한 매력을 더했다. 올리버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과 레코드 플레이어, 반딧불 등 아날로그 정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브라스 편성을 확대하고 재즈 풍의 편곡을 통해 미국적인 색체를 강화했다.

    미국 콩코드 씨어트리컬의 션 패트릭 플라하반 최고 책임자는 지난 2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에서 진행된 '2025 K-뮤지컬국제마켓' 개막 콘퍼런스에서 "공상과학의 설정이지만 구체적인 스토리에 관객 모두에게 잘 다가가는 주제가 담겨 있고, 한국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보편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대만 제작사 C뮤지컬의 장심자(38) 대표는 "2018년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본 뮤지컬이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대만에서 중대극장 규모의 뮤지컬 제작했다가 여러 문제로 엄청 힘들었던 시기였다. 당시 뮤지컬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는데, 공연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고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C뮤지컬은 향후 '어쩌면 해피엔딩'의 대만 라이선스 공연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2024년까지 다섯 시즌을 마친 '어쩌면 해피엔딩'은 오는 10월 30일~2026년 1월 25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 공연을 선보인다. 현재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는 NHN링크와 우란문화재단이 공동 프로듀서(co-producer)에 크레딧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