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부인 최씨, 감리교회 명문家 출신'죽동교회' 세운 故 최학삼 목사가 증조부부친이 사비 털어 노아의 방주형 교회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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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으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각 매체 취재팀이 대선 출마 선언 당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을 찾고 이튿날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한 전 총리의 행보를 일일이 기사화화며 의미 부여에 나선 가운데, 유권자인 네티즌도 각자의 SNS와 블로그 등으로 한 전 총리의 언행을 곱씹는 설왕설래를 이어가고 있다.
- ▲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가 일요일인 4일 예배 참석차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를 찾아 전창희 담임 목사 등 교회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한덕수 캠프 / 연합뉴스
한 전 총리는 경기고, 서울대, 하버드대 박사, 총리, 대통령권한대행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출세가도를 달려왔으나, 일평생 관료로만 살아온 탓에 사생활이나 가족사 등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그가 조기 대선 직전 보수층의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면서 네티즌들도 부랴부랴 한 전 총리의 '신변사'를 검색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그 중에서도 그와 가족의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을 달구는 모양새다.
이른바 '무속 논란'이 직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전례가 있는 데다, 후보자의 종교 성향이 표심 좌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한 전 총리 부인을 둘러싼 소문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충분했다.
◆"무속에 심취" '한덕수 家' 겨냥 마타도어 난무
발단은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박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덕수 총리 부인이 화가"라며 "그림계의 '큰손'인데 '무속'에 너무 많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 총리도 무속에 그렇게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가 (싶다)"고 언급해 논란을 야기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전 총리와 호흡을 맞췄던 박 의원의 입에서 이같은 말이 나오자, 민주당은 뚜렷한 증거도 없이 한 전 총리 부인의 '무속 신앙설'을 들먹이며 애써 김건희·최은순 모녀와 연결시키려는 언론 플레이를 전개했다.
현재 일부 네티즌이 퍼뜨리고 있는 관련 주장 역시 최강욱 전 의원 등의 '아님 말고식' 주장을 인용한 것일 뿐 구체적인 근거는 없는 '뇌피셜'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한 전 총리 본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감리교 소속인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이 교회 원로권사로 등재돼 있는 한 전 총리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처럼 공개석상에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난 부활절 때도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고 조용히 예배를 드렸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타 정치인처럼 '표밭 관리'를 위해 교회를 오가는 '외식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알고보니 4대째 신앙 이어 온 '기독교 집안'
앞서 박 의원은 "한 전 총리의 부인이 무속에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으나, 부인 최아영 여사는 '4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 사람으로 남편과 함께 종교교회에 출석하며 집사로 봉사 중이다. 최 여사의 양친 모두 이 교회에서 장로를 역임하는 등 종교교회와 50년 가까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최 여사의 증조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다수 교회와 여학교를 설립하며 한국기독교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꼽힌다.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죽동교회'를 설립한 고(故) 최학삼 목사가 바로 최 여사의 증조부다. 노아의 방주 형태에 겉면을 화강암으로 두른 이 교회는 최 목사의 손자인 고(故) 최현식 장로, 즉 최 여사의 부친이 사비를 들여 건축했다. 아름다운 외관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지역 명소로 알려졌다.
최 목사는 이완용과의 소송에서 이긴 일화로도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이완용이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로 흐르는 하천을 보로 막는 바람에 마을에 홍수가 빈번해지자 최 목사가 동네 청년들과 함께 이완용이 막은 수교천 근방의 보를 터 버렸다고.
이에 이완용이 최 목사를 고발했으나 2년간의 재판 끝에 대구고법에서 최 목사가 승소함으로써 일단락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