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 이완용의 망령北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 '안보 자살' 부른다北 오판·주한미군 철수 부추길 위험한 평화협정北核 위협 외면한 이재명의 '가짜 평화' 고집北 기만 눈감은 文 9·19 합의 이재명이 계승종전선언·평화협정 뒤 '경기동부연합' 그림자
  • ▲ 민심을 청취하는 '경청 투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시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 민심을 청취하는 '경청 투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시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아무리 비싸고 더러운 평화도 이긴 전쟁보다는 낫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대북관에는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반도 종전선언을 꾸준히 주장해 온 이 후보는 그간 '친북'(親北)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양새다.

    대신 이 후보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3600여 차례 위반한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카드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제21대 대선에서 승리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재명표 '더러운 평화론'의 위험성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전쟁을 통해 얻는 승리보다 불완전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평화 상태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1월 저서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서 "국방을 강화하는 것도 강력한 억지력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북한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는 게 1차 목적이 아니다. 대북 관계도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23년 7월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간담회에서 "대량 살상 후 승전하는 것이 지는 것보다 낫겠지만 그게 그리 좋은 일인가"라며 "강력한 국방력으로 이길 수 있는 동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北 오판 부르는 '이재명식 가짜 부전승'

    '이재명표 평화론'은 손자병법의 '부전승'(不戰勝), 즉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상의 승리라는 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격해 봐야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인식을 상대에게 심어서 애초에 공격을 단념시키려면 충분한 능력은 물론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억제 의지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는 이 후보의 발언은 억제력과 협상 지렛대의 상호작용을 간과하고 있고 한국은 억제 의지가 없다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도발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바로 그러한 사례로 꼽힌다. 한국전쟁 발발 전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이른바 '애치슨라인' 연설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설정했다. 이 연설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북한 김일성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미국이 남한을 지켜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 남침을 결행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 ▲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이완용은
    ▲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이완용은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고 주장하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에 주권을 넘겼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완용의 '가짜 평화'·체임벌린의 '양보'가 남긴 교훈

    이재명표 평화론은 '더러운 평화'를 택한 국가는 국가의 주권도 국민의 생명도 지키지도 못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외면하고 국민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이완용은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고 주장하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하고 일본에 주권을 넘겼다. 1938년 당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총통의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 병합 요구를 수용하며 '평화를 위한 양보'를 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 평화는 히틀러의 오판을 불러와 제2차 세계대전의 길을 열고 말았다. 당시 영국 하원의원이던 윈스턴 처칠은 "양보는 전쟁을 유발했고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의 평화론은 그간 북한이 한국의 평화적 제스처를 전략적 공백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도발을 지속해 온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경고, 2018년부터 2019년의 대화 국면에도 핵전력 강화를 한결같이 추진해 왔다. 북한은 2023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핵무력을 '북한의 존엄과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절대무기'로 규정했고 핵무기 선제 사용 권한을 명문화했다. 최근 북한은 사상 최대 규모인 5000톤급 신형 구축함 '최현함'을 진수하는 장면을 공개했으며 핵추진잠수함(SSN) 개발까지 계획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재명, 종전선언·평화협정 꾸준히 주장

    이 후보는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종전선언이 '비핵화 협상의 입구'라며 평화 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그는 "한반도의 기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2017년 2월 16일), "어떠한 정치적 이유를 들어서라도 종전 선언 자체를 막을 수는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2021년 11월 25일),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의 출구가 아닌 입구"(2021년 11월 26일),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고 평화 체제로 가기 전에 반드시 정전 상태를 종전 상태로 바꿔야 한다"(2021년 12월),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으로 가야 한다"(2021년 12월 10일)고 말했다.

    ◆北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은 '안보 자살'

    그러나 미리 종전을 선언한들 북한의 핵 능력이 그대로이고 군사적 적대 의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선(先)평화선언 조치는 동맹 억제력 약화를 초래한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현재 정전협정과 주한미군에 의해 유지돼 온 억제 체제의 정당성이 약화하고 북한은 이를 빌미로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실제로 종전선언 논의가 무르익었던 문재인 정부 말기에 "섣부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및 연합훈련 축소 압력으로 이어져 동맹 억제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평화협정으로 종이조각상의 평화가 선언되면 오히려 한미 억제 태세가 이완되고 북한의 오판 여지가 커져 안보 공백이 발생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법적으로는 전쟁 상태가 끝나 북한이 도발해도 이전처럼 즉각적 정전협정 위반으로 간주하기 어렵고 다자적 개입 근거도 희박해진다. 북한은 이를 노려 서해상 국지 충돌과 같은 저강도 도발을 일으킨 뒤 우리는 평화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한편, 남한으로서는 이미 평화협정을 맺은 마당에 대대적인 군사 대비 태세를 지속하기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이재명표 '한반도 비핵화'의 위험성

    또한 이 후보가 사용하는 비핵화 용어가 한미일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사용하는 '북한 비핵화'가 아닌 주한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한반도 비핵화'라는 사실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에 대해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미군의 핵 탑재 전략자산을 한반도 상시 배치는커녕 전개도 못 하고 한미연합연습도 '전쟁연습'이라며 못 하게 된다. 결국 주한미군도 철수하라는 논리까지 그대로 연결되기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 국방부는 2023년 11월 27일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관련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지난 24일부터 일부 군사조치에 대한 복원 조치를 감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군이 GP 내에 무반동총과 고사총 등 중화기를 반입한 모습. ⓒ국방부 제공
    ▲ 국방부는 2023년 11월 27일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선언 관련 입장문을 통해 북한이 지난 24일부터 일부 군사조치에 대한 복원 조치를 감행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군이 GP 내에 무반동총과 고사총 등 중화기를 반입한 모습. ⓒ국방부 제공
    ◆굴종적 9·19 합의가 신뢰 구축인가

    종전선언·평화협정 대신 이 후보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9.19 군사합의 복원,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 방송 중단,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소통 채널 복원 등을 남북 신뢰 구축 방안으로 제시했다. "지난 정부 동안 9.19 군사합의는 무력화됐고 남북 간 공식 대화는 끊겼으며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재명표 신뢰 구축 방안은 군사적 긴장 완화, 신뢰 복원, 경제 활성화라는 단선적 인과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북한이 9·19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수천 차례나 위반한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는 것이 신뢰 구축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9·19 군사합의, 北 기만과 文 정부의 합작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적대 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감시초소(GP) 시범 철수,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해상 완충구역 설정, 공중 완충구역 설정, 군용기 비행 제한, 군사회담 정례화 등 군사적 신뢰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은 2018년 남북·미북 대화 국면에서 일시적으로 도발을 줄이는 듯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결렬을 계기로 핵미사일 개발을 노골적으로 가속화했다. 북한은 2023년 11월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이후 지상시설만 폭파하고 남겨둔 지하시설을 기반으로 3개월 만에 GP를 재가동했다.

    북한이 신속히 GP를 재가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GP 상호 검증 당시 북한 당국의 기만과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준 문재인 정부의 합작이었다. 당시 남측 검증단은 북측 GP 중 1곳에서 무장 병력 활동 흔적, 3곳에서 지하시설 연결 의심 공간을 발견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는 최종 보고서에 '북한 GP 불능화 달성'이라고 수정했는데 불능화의 기준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한국은 완전히 폭파한 GP를 2033년까지 1500억 원을 들여 복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가 2017년 7월에 게시한 게시물.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SNS 캡처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가 2017년 7월에 게시한 게시물.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 SNS 캡처
    ◆종전선언 추진 가능성 높은 이유는 '경기동부연합'일까

    그러나 이 후보의 당선 시 종전선언·평화협정 재추진 가능성은 특히 그를 지지하는 '경기동부연합'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의 송봉선 전 회장의 2024년 언론 기고문에 따르면,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정치권 인맥이 빈약했던 이 후보에게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은 든든한 배후 지원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성남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 후보는 김미희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치고 힘겹게 시장에 당선됐다. 이를 계기로 인수위원회에는 김미희, 남편 백승우, 윤원석, 한용진 등 다수 경기동부연합 인사가 영입됐다. 성남시는 2011년 신규 청소용역업체로 2010년 12월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설립한 신생 업체 '나눔환경'을 선정하고 56억 원 규모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또 한 번 논란이 됐다.

    이 후보는 2010년 성남 공동정부 시절부터 제기된 '종북 논란' 대해 '근거 없는 색깔공세'라고 일축해 왔다. 그러나 이 후보가 정치적으로 부상하면서 경기동부연합 계열 인사들이 2018년 경기도지사 인수위 등 이 후보의 조직이나 최측근으로 합류했으며 민주당 내에서도 이 세력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은 2022년부터 2023년 민주당 인재영입·공천 과정에서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에서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이자 경기동부연합 계열인 진보당에 당선권 비례대표 순번을 약속해 논란이 일었다.

    또 다른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 후보가 최근 남북 관계나 종전선언 언급을 자제하는 건 선거 전략일 뿐 집권하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