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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디딤돌대출 정보. ⓒ연합뉴스
"디딤돌대출 규제가 진짜 되겠어요? 생활형숙박시설(생숙) 사례 보셨잖아요. 시장이 들고 일어서면 정부는 또 발을 뺄겁니다."(부동산 전문가 A씨)
금융권의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가 본격화한 지난 17일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규제의 시장 파급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정책의 섬세함도, 원칙도 없다"는 그의 말은 하루만에 현실이 됐다. 다음날인 지난 18일 정부는 돌연 디딤돌대출 규제 잠정 연기를 선언했다.
불과 며칠새 서민 동아줄인 디딤돌대출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 것이다.
이달 중순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은행권에 공문을 발송해 디딤돌대출 제한을 요청했다.
핵심은 '방공제'로 불리는 2500만~5500만원 규모 소액 임차보증금 공제를 필수 적용하고 신축아파트 후취담보대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생애최초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기존 80%에서 70%로 줄였다.
하지만 실수요자들이 대출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자 결국 정부는 규제를 잠정유예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디딤돌 조이기'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잔금납부를 앞뒀던 실수요자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규제유예로 당장 급한불은 껐지만 입주전까지 언제든 한도가 축소될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다.
시장 혼란도 가중되는 분위기다.
잠잠해졌던 '패닉바잉(공황매수)'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믿었던 디딤돌대출마저 막힌다는 불안감에 무주택 서민들이 뒤늦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다.
디딤돌 규제가 오락가락 정책으로 혼란을 초래했다면 생숙 용도변경 허용은 '버티면 된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정부는 지난 16일 '생활숙박시설 합법사용 지원방안'을 통해 기존 생숙 숙박업 신고와 주거용 용도변경을 모두 허용하기로 했다.
용도변경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던 △복도폭 △주차장 등 건축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이행강제금 납부도 2027년말까지로 유예했다.
2021년 생숙의 주거용 사용을 막은지 3년만에 기존 수분양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이행강제금을 납부할뻔 했던 5만여가구 생숙 수분양자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원칙이 사라졌다"는 비판여론이 커지고 있다.
시장이 반대하면 불법이 합법화되고 규제도 언제든 풀어질 수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추락한 신뢰도만큼 정책 무게감도 급락하고 있다. 시장에선 정부 정책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놔도 시장이 꿈쩍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책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가볍게 저질러 놓고 뒷수습하기엔 정책 하나하나에 얽혀있는 실수요자들이 너무 많다.
특히 자산 70%가 부동산에 묶여있는 한국에선 정책 하나로 인생플랜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보다 섬세하고 일관성 있는 부동산정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