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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표현을 애용하는 정치인이다. 한때 '변방의 장수'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꼬리)의 성공이 대한민국(몸통)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다.
'꼬리를 잡아…', 이른바 왜그더도그(wag the dog)는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에 의해 현물시장이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주객전도의 경우를 일컫는다.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사법리스크'(꼬리)가 171석의 '제1야당'(몸통)을 흔드는 요즘의 민주당에 제격인 수식어다.
꼬리에 의해 몸통이 흔들린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차기 제1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민주당 8월 전당대회가 벌써부터 '친명(친이재명) 마케팅' 일색인 점이 그 방증이다.
이 대표가 지난달 24일 사실상 연임 도전을 위해 대표직을 사임한 뒤 최고위원들도 '친명'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낯 뜨거운 충성 경쟁은 '유일사상'의 독재국가를 방불케 한다.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강선우 의원은 이 전 대표 사임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친명계 김병주 의원도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며 "이 대표와 함께 2026년 지방선거 승리와 정권 창출의 승리를 위해 선봉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명비어천가'가 따로 없다.
친명계는 범야권을 이끌 인물은 이 전 대표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펴고 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1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가 권위주의 체제나 독재 체제에서의 지도자처럼 인위적으로 경쟁자들을 배제한 게 아니지 않나"라며 "본인이 확고한 리더십을 갖고 총선을 지휘했고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가 총선의 압도적 승리 아니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2022년 8월 전당대회 당시 비명(비이재명)계 박용진 의원이 도전했다가 이 후보로부터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는 발언을 듣고도 '비명횡사' 탈락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상황이 이러하니 누가 정치적 수모를 감수하고 이 전 대표에게 대항하려 하겠나. 이처럼 일극 체제가 극명해지다 보니 이번 전당대회는 기존 지역순회 대신 한 번으로 끝내는 '원샷 경선'마저 검토되고 있다.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니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에 '민주'가 희석되는 순간이다.
'비명(非明) 소리'가 사라진 민주당은 특별한 견제없이 이 전 대표의 차기 당권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해 당대표직이 필요하다는 방탄 의도는 갈수록 노골화 된 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관련 1심 재판 결과가 오는 10월에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범죄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5년 간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공직에 출마하거나 임용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벌금형 수위가 관건인데, 당대표직은 이 전 대표 정치생명 연장의 '도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정치권에 평배하다.
미국의 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저서 <정치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서 공리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누군가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 전 대표의 정치 가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국민의 고통은 불가피하다는 공리주의적 철학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이 전 대표가 정치 중앙무대로 진출하면서 발생한 정치 양극화로 인해 국민이 겪는 피해는 정량화할 수 없이 크다. 특히 계파가 공존해 견제하고, 다수파가 소수파를 포용해 진영 전체의 건강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된 민주당이란 공당(公黨)의 몰락은 대한민국 정치를 크게 후진시켰다.
특히 이 전 대표를 표상·우상화하는 친명계 의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진정 국민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이 전 대표를 내세워 자기이익을 실현하려는 것인 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민복(民僕)은 온데간데없고, 이미 선출됐으니 국민은 뒷전으로 밀려난 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전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안 발의는 이 전 대표의 대권 가도를 위한 자기이익 실현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 내에서는 "당이 집단사고에 사로잡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한목소리에 끌려가다 무모한 실수를 저지르는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한다. 집단지성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집단사고의 핵심은 '집단은 절대로 잘못될 리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집단사고는 결속을 강요하는 집단 분위기, 외부 의견의 철저한 차단, 긴급사태로 인한 위기감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은 집단사고가 부른 대참사다. 결국, 집단사고는 안 좋은 의미에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악순환'을 낳는 개념이며 오늘날 민주당의 씁쓸한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