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A사 고문… 2020년 1월 '지발위원' 위촉정기간행물 발행 업무 종사자, '지발위원' 될 수 없어2020년 6~8월, '환경오염 논란' 기업 옹호 칼럼 논란
  • ▲ 남영진 KBS 이사장. ⓒ연합뉴스
    ▲ 남영진 KBS 이사장. ⓒ연합뉴스
    남영진(68) KBS 이사장이 3년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 부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모 신문사의 논설고문을 겸임하면서 50년째 환경오염 논란을 빚고 있는 특정 기업을 옹호하는 취지의 칼럼을 연재한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민간인이지만 공적인 업무를 하는 '공무수행 사인(私人)'으로서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직책을 동시에 맡은 데다, '환경'이라는 공적 영역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을 두둔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한 것은 공정성 및 도덕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16년부터 A사에 '남영진의 청호칼럼' 기고

    2016년부터 논설고문 자격으로 A사에 '남영진의 청호칼럼'을 실어온 남 이사장은 2020년 1월 8일, 3년 임기의 지발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됐으나, 위촉된 지 8개월 만에 KBS 이사장으로 변신해 지역신문계로부터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신문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남 이사장을 제6기 지발위원으로 위촉할 당시, 남 이사장이 이미 A사의 주요 필진으로 활동 중이었다는 점이다.

    지발위는 문체부 산하 자문기구로,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사를 선정하고, 해당 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해충돌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발행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지발위원으로 위촉하지 못하도록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제10조의2 결격사유)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A사가 지역신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신문발전기금 대상사'를 선정하는 공적 업무와 사적 이익이 충돌할 우려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남 이사장이 칼럼 기고로 A사의 발행 업무에 관여한 만큼 애당초 지발위원이 될 자격이 없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임기 남기고 KBS 이사 도전… 지역신문계 '맹비난'


    남 이사장이 공영방송 KBS의 이사가 된 과정도 석연찮다. 2021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임기가 1년 5개월이나 남은 남 부위원장을 KBS 차기 이사로 추천했고, 다음달 KBS 이사회는 최연장자인 그를 12기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그러자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역신문노조협의회는 같은 해 8월 27일 <남영진 지발위 부위원장은 지역신문을 졸(卒)로 보냐>는 성명으로 남 이사장의 처신을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남 이사장은 "KBS 이사는 비상임이라 겸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9월 3일) 사의를 표명했다. 작은 소동이었지만 KBS 이사로서 또한 이사장으로서 정말 열심히 임하겠다"고 했다.

    남 이사장은 2020년 8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A사에 칼럼을 싣지 않고 있으나, 이 회사 조직도에는 여전히 '상임고문'으로 표기돼 있다.

    남 이사장과 A사의 대표이사는 한국일보 선·후배 사이로 알려졌다.

    "직접 현장 답사… 옳고 그름 따져보기로"

    남 이사장이 지발위 부위원장 시절 A사에 기고한 4편의 칼럼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남 이사장은 2020년 6월부터 8월까지 '석포 가는 길'이라는 문패의 시리즈 칼럼을 썼는데, 4편 모두 환경오염 문제로 시끄러운 'B제련소'를 다녀온 뒤 쓴 르포 기사였다.

    <영풍 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상류에 자리잡은 까닭은…'개발시대 최고 입지'>라는 제목의 첫 번째 칼럼에서 남 이사장은 "△B제련소 주변의 왜가리가 폐사하고 △소나무가 말라 비틀어 죽는가 하면 △낙동강 상류가 중금속으로 오염됐다는 기사를 읽다가 마침 광산업체를 다녔던 친구로부터 B제련소의 역사를 듣게 됐고, 그러다 직접 현장을 답사해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로 했다"는 장황한 서두를 늘어놨다.

    궁색한 이유를 내세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경북 봉화군까지 내려가게 된 계기를 설명한 그는 "봉화군 석포에 들어서니 제련소 곳곳에서 흰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부터 눈에 들어온다"며 "뒷산에 있는 소나무도 듬성듬성 죽어 있는 겉모습만 봐서는 영락없는 유해 환경시설이나 다름없었다"는 삐딱한 시선을 던졌다.

    "석포천,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아"


    그런데 남 이사장은 "제련소 앞을 흐르는 석포천은 예상과 달리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무척 맑았다"며 "냇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친구는 피라미가 몇 마리가 보인다고 했는데, 1급수 어종인 '갈겨니'일 것"이라고 태도가 180도 바뀐 모습을 보였다.

    이어 "전화를 걸고 제련소를 방문했더니 B제련소의 C소장이 회사 선배를 만난 것처럼 예우하면서 우리를 반겨줬다"고 밝혀, 남 이사장 일행의 방문이 단순한 견학 차원이 아니라 사실상 '기획취재' 성격이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갑작스레 칼럼에 등장한 C소장은 이때부터 사측의 해명과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C소장은 "공장 외형이 커져 단일 공장으로 세계 4위, 수출량으로 세계 9위의 회사가 됐지만 환경문제 때문에 장치산업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좀 달라는 것"이라며 "지난 50년간 큰 탈 없이 아연 제련공장을 잘해왔는데, 이제 와서 공해산업이라고 막무가내로 당장 폐쇄하든지 다른 곳으로 옮기라니 저희로서는 난감할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자구노력, '낙동강 상류 공장' 이미지로 퇴색"

    C소장은 B제련소가 환경부로부터 폐수 배출 관련 문제로 2018년과 2019년 각각 조업정지 처분과 영업정지 명령을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경상북도가 20일 조업정지 명령은 이행했지만, 120일 조업정지 명령에 대해서는 '시설이 불법적으로 운영된 건 처벌받아야 하지만 폐수가 강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닌데 조업정지 처분은 과도하다'며 1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마찰을 빚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B제련소도 환경단체들이 지적한 오염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미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400여억원을 노후 시설개선과 환경정화에 투자했고, 2019년부터 2021년 말까지 3년간 수질 및 대기개선, 토양정화, 산림생태복원 등에 2000여억원을 투입한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했다.

    이에 남 이사장은 "이런 회사의 자구노력은 하나도 티가 안 나고 '낙동강 상류 공장'이라는 항상 태생적인 문제로 돌아간다"며 "새삼 '개발과 환경의 대립'이 여기서도 심각해졌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B제련소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B제련소, 320억 들여 '무방류시스템' 도입"

    이어진 칼럼에서도 비슷한 논조가 이어졌다. 또다시 칼럼에 등장한 C소장은 "폐수 수질개선, 대기개선, 토양정화, 산림생태복원 등 정화사업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쏟고 있는데도 '낙동강 상류 공장'이라는 낙인에 속절없이 묻혀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고, 환경부의 눈초리도 싸늘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남 이사장도 "B제련소 내부의 화학공정과 침전, 미생물 정화과정 등 여러 단계를 거쳐 낙동강으로 나가는 배출수를 직접 보니 맑아보였다"며 "70~80년대 강원도 도계, 태백 등지 탄광에서 나오는 까만색의 냇물을 봤던 터라, 하천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정도면 너무 맑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C소장의 주장을 거들었다.

    깨알 같은 회사 홍보도 이어졌다. "B제련소는 이마저도 아예 강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320억원을 들여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며 2020년 말쯤 시험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소개한 남 이사장은 "B제련소 1공장을 지나 물길 옆으로 난 길을 태백 쪽으로 따라 올라가다가 물가 돌 밑에서 까만 다슬기를 발견했다"며 "이는 물이 깨끗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반가웠다"고 말했다.

    "카드뮴 허용치 33만배… '개발시대'가 지은 원죄"


    남 이사장은 2020년 6월 7일 환경부가 "B제련소 제1공장 부지 내 지하수에선 신장 장애 또는 골연화증을 일으키는 중금속 카드뮴(Cd)이 수질기준 허용치의 33만배를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억울해 하는 B제련소의 반응도 소개했다.

    남 이사장은 이 사안과 관련해 B제련소 측에 문의해 보니 B제련소 측이 "지하수 오염은 이미 지난해(2019년) 지적돼 정화명령을 받아 이행하고 있는 사안인데 환경부가 마치 새로운 사실을 적발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고 수치도 선정적으로 인용했다"며 "공장굴뚝 92개중 7개를 편의추출 식으로 조사해 놓고 그중 70%가 기준을 초과한다고 지적한 것은 전체가 그런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불만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남 이사장은 "환경부가 적발사실을 재탕했다는 B제련소 측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환경부 홈페이지에서 작년과 올해 배포된 보도자료를 찾아 읽어보니, 지하수 오염이 적발된 것은 지난해가 맞지만 '33만배'라는 수치는 올해 새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환경의식이 높지 않고 먹고 살기 바빠 개발논리가 시대정신이던 때에 정화되지 않은 공정수가 공장 바닥에 흘러 스며들고 오염물질 덩어리 폐기물을 함부로 바닥에 방치했던 '원죄' 탓이리라. 어쩌면 '33만배'는 제련소가, 아니 그 시대가 지은 '원죄'의 넓고 깊음을 확인해주는 수치가 아닐까"라는 사견을 덧붙였다.

    "왜가리 떼죽음은 생존을 위한 '번식싸움' 탓"


    남 이사장은 같은 해 7월과 8월에도 B제련소에 대한 칼럼을 A사에 기고했다. 먼저 <영풍 석포제련소 뒷산 일부 소나무 폐사, '원인 미궁' 갈수록 황량…'일단 복구부터'>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 이사장은 B제련소 뒷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폐사된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을 지적하며 "환경단체가 철저한 원인 조사를 위해 모든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환경부와 산림청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B제련소 측의 입장을 전달했다.

    "나무가 죽은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요즘 같은 장마 때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걱정됐다"며 "멀쩡하게 복원할 수 있는 야산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뭘까 하는 반감도 들었다"고 말한 남 이사장은 "소나무가 죽은 원인을 은폐하겠다는 것도 아닌 바에야, 주변 야산은 우선 살려 놓는 게 더 중하지 않을까"라고 환경단체와는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영풍 석포제련소 앞 냇가엔 청정 물고기와 보호새인 갈겨니·왜가리 서식>이라는 마지막 칼럼에서 남 이사장은 "지역 환경단체들이 2017년 5월부터 언론을 통해 안동댐의 물고기와 왜가리의 떼죽음을 알리면서 그 원인이 'B제련소에서 흘러나온 오염원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대구지방환경청이 안동댐 상류 낙동강에서 떼죽음한 떡붕어의 폐사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안동대에 맡긴 결과, 2018년 12월 중금속이나 물고기 전염병에 의한 폐사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소개했다.

    또 남 이사장은 "대구지방환경청이 2020년 5월 안동댐 왜가리 집단폐사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결론은 역시 질병이나 중금속이 왜가리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며 "왜가리 집단폐사의 원인은 놀랍게도 서식지가 비슷한 중대백로와의 번식둥지 경쟁이었다"고 밝혔다.

    '충동적 견학'보다 '의도된 방문' 가능성 높아


    이처럼 남 이사장은 3개월에 걸쳐 '왜가리·소나무 폐사', '낙동강 상류 중금속 오염' 등 B제련소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의혹을 B제련소 관계자와 환경부 자료 등을 근거로 대신 해명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물론 중간중간 B제련소를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B제련소의 '의지'와 '진정성'를 부각하는 의도가 엿보인 칼럼이었다.

    남 이사장은 첫 번째 칼럼 서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명목으로' B제련소로 달려갔다고 밝혔으나, B제련소의 소장이 직접 마중 나와 남 이사장 일행을 안내하고 회사의 애로점을 조목조목 토로한 것을 보면, 사실상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의도된 행보'였을 공산이 크다.

    A사 홈페이지에서 B제련소나 모 기업의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관련 기사들이 게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판성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홍보성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평소 양사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논설고문(현재는 상임고문)으로서 그런 양사의 관계성을 남 이사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B제련소를 위한 해명성 칼럼 역시 그러한 배경 속에서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2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든 남 이사장은 제35대 한국기자협회 회장과 미디어오늘 편집인·사장 등을 거쳐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노무현 브리핑'을 담당했다.

    이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와 신문발전위원회 사무국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2021년 9월부터 KBS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임기는 2024년 8월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