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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회고록, 실제론 北 선전물… 김일성 우상책 ‘세기와 더불어’ 버젓이 판매

제주 4.3, 여순 사건을 '의거'라 표현하며… "김일성 투쟁 공적 인정돼야" 주장책 내용 사실과 전혀 달라 역사적 가치 없어… 대법원 2011년 ‘이적표현물’ 판결출판사 ‘민족사랑방’처벌 대상… 포털, 쇼핑몰, 온라인 서점 모두 처벌될 수 있어

입력 2021-04-22 12:21 수정 2021-04-22 14:50

▲ 김일성 우상화 서적 '세기와 더불어'를 현재 판매 중인 업체들. 국내 대형서적업체가 대부분 보인다. ⓒ네이버 서적 검색 결과 캡쳐.

‘민족사랑방’이라는 출판사가 지난 1일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했다. 

<세기와 더불어>는 2011년 8월 대법원에서 ‘이적표현물’ 판정을 받았다. 이것이 원본대로 출간된 것도 문제인데, 현재 포털 사이트가 서적 구입처를 알려주고, 온라인 서점과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버젓이 판매 중이라는 점도 논란이 됐다.

출판사 ‘민족사랑방’ “김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생생한 기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한 민족사랑방은 지난해 11월 김승균 전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이 차린 출판사다. 김 전 이사장은 1991년 2월에도 ‘일월서각’이라는 출판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북한이 출간한 <팔만대장경 해제> <선역팔만대장경> <이조실록>을 수입하고자 했다.

민족사랑방은 배포한 책 소개를 통해 <세기와 더불어>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중국 만주 벌판과 백두산 밀영을 드나들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생생한 기록”이라며 “1920년대 말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싸워온 투쟁기록을 고스란히 녹여낸 진솔한 내용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고 소개했다.

“사실 일제 치하에서는 김 장군(김일성)을 전설적 인간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고 전제한 출판사는 “이제 본인의 회고록으로 의문의 여지는 풀렸다고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제주 4.3 의거, 여수·순천 의거가 명예회복되어 원혼을 달래고 있다. 좌익세력의 항일무장투쟁도 항일투쟁의 혁혁한 공적으로 인정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기대한 출판사는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은 통일운동기금에 사용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세기와 더불어>, 북한서 김일성 우상화 위해 펴낸 이적표현물

출판사 측이 찬양하다시피 한 <세기와 더불어>는 북한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1992년 4월부터 1998년 7월까지 펴낸 김일성 회고록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회고록이 아니라 그를 우상화하기 위한 북한의 체제 선전물로,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들뿐이어서 역사적 가치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이적표현물’로 지정된 상태다.

2011년 8월12일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정부 허가 없이 북한에 몰래 가서 김일성 동상을 참배하고, 북한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사진, <세기와 더불어>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남·당시 49세) 씨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때 “국가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어야 이적표현물”이라며 <세기와 더불어>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 네이버 쇼핑에서 찾은 '세기와 더불어' 판매처. 대기업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여럿 보인다. ⓒ네이버 쇼핑 검색결과 캡쳐.

교보문고·CJ몰, 국가보안법 위반?… ‘이적표현물’, 출간·배포·구입·소지 처벌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세기와 더불어> 출판·유통과 관련 “상당히 심각한 사건”이라며 “지금까지 판례를 보면 이적표현물은 출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유통·판매에 관계된 사람도 모두 처벌해왔다”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할 목적으로 만든 문서·그림 기타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이 법 제7조 6항에는 “해당 행위의 미수범도 처벌한다”고 적시됐다. 즉, 이적표현물을 출판·유통·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구입·소지한 사람도 처벌을 받는다.

법대로 한다면 <세기와 더불어>를 펴낸 출판사뿐 아니라 이 책을 유통·판매 중인 예스24·교보문고·반디앤루니스 등 대형서점, CJ오쇼핑·AK몰·11번가·쿠팡·지마켓 등 온라인 쇼핑몰 또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 업체는 현재 25만~28만원의 가격을 책정해 놓고 <세기와 더불어>를 판매 중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사법기관서 다룰 문제”

일부 매체는 “김일성 회고록을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해당 도서는 윤리위 심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뿐더러 10년 전에 이미 이적표현물로 대법원이 지정했다”고 밝혔다. <세기와 더불어> 출간·판매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므로 담당 경찰에서 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서적들을 심의하는데, 그 대상은 소설·만화·사진집·화보집,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에서 지정한 정기간행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이라며 “<세기와 더불어>처럼 소위 회고록을 포함한 역사 관련 도서, 학습서적, 교과서는 심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일의 사회적 파장이 워낙 커서 심의위원들이 <세기와 더불어>도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곧 논의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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