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노출' 신성약품 독감 백신, 21일까지 전국 공급… 중단 통지 후에도 접종… "시스템 허점 드러나"
  • ▲ 정부가 독감백신의 유통상 문제로 무료접종을 중단한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내원객이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있다. ⓒ권창회 기자
    ▲ 정부가 독감백신의 유통상 문제로 무료접종을 중단한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내원객이 독감 예방접종을 맞고 있다. ⓒ권창회 기자
    정부 조사 결과 배송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접종이 중단된 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은 백신 접종 중단 공지가 밤늦게 이뤄져 불가피하게 접종이 이뤄진 것이라며, 백신을 맞은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이상반응이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의료계 등에서는 그러나 질병관리청이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큰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확실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은 25일 정부 조달계약 독감 백신 유통 현황에 따른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조달계약업체인 신성약품을 통해 지난 21일까지 독감 백신 578만 명분이 전국 256개 보건소와 1만80101개 의료기관에 공급됐다. 전체 1259만 명분의 46%에 달하는 양이다.

    22일 이전 63명, 22일 34명, 23일 8명 접종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정부 조달 백신 접종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105명이 접종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접종자에 대해서는 현재 이상반응에 대한 조사를 시행 중이고, 현재까지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105명은 서울·부산·전북·전남 지역에서 접종받았다.

    해당 백신은 22일부터 사용될 예정이었던 데다 21일 오후 접종 중단이 통지돼 접종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아울러 지난 22일 질병관리청은 해당 백신의 접종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질병관리청은 문제의 백신 접종이 이뤄진 이유로 긴급하게 접종 중단 결정이 내려져 제대로 안내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정 청장은 "21일 오후 백신의 상온 노출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았고, 위험도를 판단한 결과 접종을 중단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려 의료계 시스템, 예방접종 등록 시스템, 공문을 통해 전달한 것이 같은 날 밤 9~10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만 개에 달하는 의료기관에 일일이 정보를 다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는 당일(22일) 접종이 불가피하게 이뤄졌다"며 "긴급하게 공지하면서 미처 의료기관에 일일이 안내를 드리지 못해 접종이 발생했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문제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각 지역 보건소의 접종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2일 이전에 63명, 22일에 34명, 23일에 8명이 접종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2일부터 접종돼야 할 백신이 그 이전에 사용되는 등 관리부실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여기에 전북 전주시 조사 결과 13개 병·의원에서 16~22일 179명에게 정부 조달 물량 백신을 투약했고, 무료로 보급하는 독감 백신을 돈을 받고 접종한 사례도 확인됐다. 

    정 청장은 이와 관련 "보통 병원에서 국가 물량과 개인 물량을 구분해 백신을 관리하는데, 한 병원에서 두 백신이 같이 관리되는 일이 발생해 594명 중 60명 정도가 정부 조달 물량으로 접종받았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이어 "질병청은 24일까지 파악한 통계로 말씀드리는 것이고, 전주시에서는 계속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숫자는 다를 수 있다"고 부연했다.
  • ▲ 정부가 독감백신의 유통상 문제로 무료접종을 중단한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시민들이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권창회 기자
    ▲ 정부가 독감백신의 유통상 문제로 무료접종을 중단한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서부지부에서 시민들이 유료 독감 예방접종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권창회 기자
    상온 노출 백신의 위험성과 관련해서는 "백신들이 대부분 1회용 주사기에 충전돼 밀봉된 상태로 공급돼 오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되고, 현재까지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면서도 "효력에 대해서는 조사해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속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질병청 "이상반응 보고 안 돼"… 의료계 "관리 시스템 구멍"

    정부는 상온 노출이 의심되는 백신이 배송된 5개 지역 내 750명분의 백신을 대상으로 품질검사를 진행 중이며, 상온 노출이 추정되는 제품을 2차로 확대해 검사할 예정이다. 백신을 미리 투여한 민간 의료기관과는 접종 위탁계약을 취소하는 한편 별도의 안내가 있기 전까지 의료기관에서 정부 조달계약 백신을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새로운 조직이 된 질병관리청의 시스템상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공무원 조직이 된 질병관리청이 공문을 통해 안내하려다 보니 위기관리시스템상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는 먼저 전화나 팩스 등을 통해 선조치하고 공문을 보내는 게 옳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2만 개에 달해 일일이 안내하지 못했다는 해명에는 "질병관리청이 각 지자체에 응급상황을 알리고 지자체에서 보건소나 의료기관 등으로 전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제대로 된 안내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위험한 백신의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수도권 내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공무원들은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데, 질병관리청이 새로운 조직이 되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받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교수는 상온 노출 백신과 관련 "해당 백신은 상당히 안전한 백신 중 하나로 상온에 노출됐다 하더라도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효능이 떨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정말 중요한 백신이거나 상온에서 변질될 가능성이 큰 백신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의료사고는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