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연합회, 법적 근거 없는데도 개최 찬성… "언론계 망신" 기자들 비판
  • ▲ 다음달 2~3일 양일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들러리'로 이용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상윤 기자
    ▲ 다음달 2~3일 양일간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들러리'로 이용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정상윤 기자
    한국기자협회(이하 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조국(54) 법무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의 ‘들러리’로 이용됐지만 ‘항의성’ 입장 발표조차 하지 않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언론계 일각에선 중립을 지켜야 할 언론단체들이 노골적으로 '친여 성향'의 정치색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들 언론단체 집행부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도 지적했다. 애초부터 법적 근거가 없는 민주당의 ‘국민청문회’ 제안을 거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 없는' 국민청문회 주관 요청에 방송기자연합회 '하겠다' 화답

    2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6일 여야 간사 회동 이후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일정에 합의했다. 법정시한인 '30일까지 1일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주당과 '9월 초에 3일간' 진행해야 한다고 맞서던 자유한국당측이 바른미래당의 9월 초 이틀간'이라는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측이 청문 일정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강행하겠다던 국민청문회 역시 무산됐다. 앞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한국당이 오늘(26일)까지 청문회 일정을 합의해주지 않는다면 국민청문회를 강행하겠다”고 말했다.

    기자협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23일 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에 공문을 보내 국민청문회를 주관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자협회측은 국민청문회에 국회법이나 인사청문회법에 따른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회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기자협회는 “국민청문회는 법에 규정된 것이 아니고 선례도 없는 예외적인 사항이어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거부하지 않고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방송기자연합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국민청문회 개최에 찬성했다. 방송기자연합회는 26일 국민청문회 주관에 대해 전국 지회장 52명을 대상으로 의견수렴 투표를 진행한 결과, 지회장 52명 중 40명이 투표해 찬성 27명, 반대 9명, 유보가 4명으로 67.5%가 청문회 개최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투표율은 77%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주관한다는 ‘설렘’에 빠져있을 때 민주당은 야당과 인사청문회 일정에 합의하고 법적 근거가 없는 국민청문회가 아닌 정식 인사청문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오후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후보자의 실체적 진실을 알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청문회 일정을 대승적으로 합의했다”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여당과 각 언론협회가 구두로 국민청문회에 대해 의사타진을 했으면 괜찮았겠지만 공문을 통해 정식적으로 답변을 요청했다”며 “결과적으로 여·야간에 인사청문회 일정이 타진되며 방송기자연합회는 이를 위한 들러리가 됐다”고 비판했다.

    결국 '들러리' 선 방송기자연합회 ‘원론적 답변’만

    이어 “여당이 제안한 국민청문회는 보수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다”며 “여당이 정말로 국민청문회를 시행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여당의 '국민청문회 카드'에 결국 '들러리'를 선 꼴이 된 언론단체들은 '항의성'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원론적 답변만 하고 있다.

    정규성 한국기자협회장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여야 합의가 돼서 의미가 없어졌다”며 “인사 청문회 합의가 안 되는 것을 전제로  의견 수렴을 했는데 합의가 됐으니 국민청문회를 진행하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국민청문회 주관 설문조사까지 했던 안형준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청문회 일정이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국민청문회를 의뢰 받았다”며 “그런데 합의를 했으니 더 이상 국민청문회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언론계 일각에선 이같은 행태가 언론계 전체를 망신주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계 "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 망신 자초"

    기자협회소속 모 일간지의 A기자는 “여야가 합의 후에 각 단체에서 내놓은 답변은 누구나 다 아는 원론적 이야기”라며 “협회는 언론의 중립성을 위해 처음부터 여당의 요청에 반대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단체들의 집행부가 친여권 성향 인사로 채워지고 있다”며 “드러내놓고 여권 편을 드는 게 보일 정도”라고 했다.

    이어 “국민청문회의 경우도 법적 근거가 없으니 거부했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들러리를 서게 된 상황에선 항의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언론계 전체를 무능하게 만드는 행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