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국가안보실 소속 비서관 사칭 가짜메일 배포됐다…보도한 언론에도 책임 물을 것"
  •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시스 DB
    ▲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뉴시스 DB
    "끝까지 파헤쳐서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밝혀내겠다. 최소한의 확인도 거치지 않고 보도한 언론사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미국에서 지난 수개월 간 한국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급증했고 청와대 또한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취지의 문건을 입수했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이같이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오후 브리핑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안보실 사이버정보비서관 명의로 국가안보실 사칭 가짜메일이 외교전문가에게 발송되고 언론에 기사화 된 사건에 대해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에 수사 의뢰서를 발송했다"며 "허위조작 정보가 생산·유포된 경위가 대단히 치밀한데다 담고 있는 내용 또한 한미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고 규정했다.

    이어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 언론사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성 보도라 생각한다"며 "사칭인지 해킹인지까지 포함해서 경찰이 수사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건의 발단은 〈아시아경제〉가 공개한 '문건'

    앞서 지난 26일 〈아시아경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청와대가 격앙된 반응을 내놓게 된 발단이다.

    해당 매체는 전체 9쪽, 5000여 자로 구성된 이 보고서를 청와대 내부 보고용 문서로 추정하면서 "한국의 (대북)제재 약화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어 불만이 증가하고, 한국이 중국과 더불어 제재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한국 측에서 손상시키고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미국이) 남북 간 군비통제와 신뢰구축조치에 대한 충분한 사전 협의와 합의가 없었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적시했다.

    이 모든 내용은 사전에 미국정부와 공조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청와대의 기존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작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6일에 이어 이틀에 걸쳐 문건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내놓았다. 김 대변인은 지난 26일에는 "안보실에서 작성한 내용이 아니다"라면서 "이 문서를 보도한 언론사에서 출처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같은 건으로 브리핑을 자처한 것이다.

    ◆ 청와대의 이례적인 이틀 연속 브리핑

    청와대가 정부에 대한 언론사의 특정 보도에 대해 이틀을 할애해 브리핑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보도가 나온 당일인 26일 "청와대에서 어떤 형식이든 문서를 만들면 워터마크가 찍히게 돼 있고 마지막에 문서를 출력한 사람의 이름과 시간이 초 단위까지 나오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식에 맞지 않으니 청와대 문건이 아니라는 취지의 소극적인 설명이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27일에는 톤이 한 층 높아졌다. 김의겸 대변인은 '한미 동맹을 깨뜨리려는 이간질', '반국가적 행태' 등의 단어를 사용해 발본색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김의겸 대변인은 "전날 보도가 나온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에서 자체적으로 안보실과 함께 경위 파악을 했다"며 "민정과 안보실 차원의 조사 차원을 넘어선다고 판단해 오늘 수사의뢰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강경대응'을 예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 靑 국가안보실, 외부자는 알기 어렵다

    청와대 조사 등에 따르면 해당 문서는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속인 한 연구원의 이름을 사칭했고, 메일 내용에도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 원고'라는 제목의 파일이 함께 발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른다면 사전에 아주대 중국 정책연구소와 같은 외교 전문가는 물론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이름까지 상세히 알고 있는 인물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실제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 연구소 소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언어구사나 접근방법이 대단히 정교하고 이 업계의 내막을 아주 가까이서 잘 아는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며 "해킹 조직이 권희석 전략비서관의 명의를 도용해 저에게 메일과 문서파일을 보냈고, 해킹에 실패하자 연구원의 메일을 도용해 마치 권 비서관의 파일인 것처럼 저희 회의 참여자를 포함해 다중에게 뿌린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문건'에 대해 명확하게 반론되지 않은 상황도 강경대응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난 26일 양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해당 문건이 청와대의 것이 아니라 주장했지만, 이 주장은 곧 반론에 부딪쳤다. 청와대 내부에서 작성된 문건이라면 철저히 관리가 되겠지만, 외부에서 작성된 문건이라면 양식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논의의 초점은 이 문건을 ▲누가 생산했고 ▲어떻게 유통·전달 됐으며 ▲그 문건으로 인해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느냐 이 세가지"라며 "외부에서 작성돼 청와대로 전달·보고 됐다면 양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정윤회 문건'을 통해 문건이 주는 파급력을 이미 한차례 체감한 바 있다. 불필요한 잡음 차단에 나섰다고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당시 문건 유출의 배후로 지목됐던 조응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 비서관은 이후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더불어민주당에 영입, 20대 국회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