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여야 합의로 마련해야… 친문호헌패권세력 극렬 반대가 걸림돌
  •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가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가 정하는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 사진공동취재단

    국회는 국정 수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증명해보일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의 퇴임 수순을 국회가 정해야 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대통령 퇴임 절차' 정하기에는 적잖은 난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70조에 의해 5년 임기를 보장받는 대통령을 '질서 있게' 퇴임시키려면 그 절차 또한 헌법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개헌(改憲)에 의해 대통령의 임기를 종료시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상정하기 어렵다.

    ◆'헌법 부칙 통한 현직 대통령 임기 종료' 선례 있어

    1980년 10월 22일 국민투표에서 의결된 제5공화국 헌법은 부칙 제3조에서 '이 헌법 시행 당시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이 선출됨과 동시에 종료된다'고 규정했다.

    1980년 8월 27일 당선된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 6년을 규정한 제4공화국 헌법 제47조에 따라 1986년 8월 26일까지였으나, 새 헌법안 부칙에 따라 1981년 2월 25일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즉시 종료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해서도 똑같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 제70조에 의해 5년 임기를 보장받고 있다. 따라서 2018년 2월 24일까지로 보장된 임기를 단축하려면 새 헌법안의 부칙에 '시행 당시 대통령'의 임기를 종료하는 규정이 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인 절차는 △국회 개헌특위 설치 △개헌특위에서 개헌안 성안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로 발의 △발의된 개헌안을 공고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 의결 △국민투표 △새로운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출 △대통령 선출과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 임기종료·퇴임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헌특위 구성 자체는 이미 여야 합의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에는 적잖은 난관이 뒤따를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회 개헌특위 설치 자체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합의된 사항이다. 그 시점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선언으로 모든 상황이 변했다.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으로 '질서 있는 퇴진'을 이끌어내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내년 1월까지 개헌특위 설치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특위 설치 시점을 앞당기려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탄핵 정국'이 '개헌 정국'으로 전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초의 개헌특위 설치 약속조차 뒤엎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권력분산형 개헌, 친문호헌패권세력이 받을까

    여야 간의 샅바싸움 끝에 국회 개헌특위가 설치되더라도 평탄한 대로가 깔리는 것은 아니다. 개헌안의 내용을 둘러싸고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개헌의 핵심은 통치구조인데,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폐단이 재발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폭넓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로 나타나고 있고,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으로 평가받는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이 차지할 권력이 분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친노친문호헌패권(親盧親文護憲覇權)세력의 방해 공작을 뚫고 어떻게 개헌안을 성안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셈이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민경욱 원내대변인이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선언 직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민경욱 원내대변인이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선언 직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과거 개헌은 여당 단독, 1987년 개헌은 여야 합의

    개헌에 관한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을 기도한 1954년 헌법(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1969년 헌법(이른바 '3선개헌' 헌법) 등은 여당에 의해 단독 발의돼 야당의 극렬한 반대 끝에 국회에서 의결됐다. 1972년 헌법(이른바 '유신개헌' 헌법)은 아예 국회를 해산한 상태에서 국회 발의와 의결 절차 없이 개헌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같은 개헌은 모두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했기 때문에, 현행 헌법은 당시 집권여당인 민정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합의로 마련돼 1987년 10월 12일 국회에서 258명의 출석 의원 중 25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의결됐다.

    당시 신민당 이철승 의원 등 4명만이 "대통령중심제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어렵고 1인 독재를 조장하며, 정당정치·책임정치를 무력화하고 지역감정을 극도로 과열시키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고 연설한 뒤 반대 투표했다.

    ◆친문호헌패권세력 반대하면 개헌안 성안은 쉽지 않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구 관련 등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때 여야 합의로 하는 게 관례가 된 것처럼, 1987년 개헌 이후 개헌안은 여야 합의로 마련한다는 것은 헌법적 관례가 됐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정의당 등 비교섭단체의 작은 반대 정도야 무릅쓰고 본회의에서 개헌안을 의결할 수 있겠지만, 친문호헌패권세력이 반대한다면 개헌은 순탄하게 진행되기 어렵다.

    비록 새누리당·국민의당 양당과 민주당 비문(非文)계 등 당적(黨籍)을 뛰어넘어 많은 수의 의원들이 권력분산형 개헌에 찬성한다고 하지만, 기어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손아귀에 쥐겠다는 야욕에 불타고 있는 친문호헌패권세력의 반대를 어떻게 넘느냐가 최대 변수다.

    일단 국회에서 개헌안이 의결되면 국민투표는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개헌의 역사에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개헌 절차 돌입 앞서 국회 추천 총리, 과도내각 구성할 듯

    산고(産苦) 끝에 개헌이 이뤄지면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다. 반면 독일식 의원내각제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한다.

    어떤 경우든 새 헌법 부칙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순간,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질서 있는 퇴진'을 공언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改憲)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국정을 맡거나, 이후 새 헌법에 따라 진행되는 선거관리업무를 맡는 것은 야당이 반대할 것임은 물론 국민 정서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개헌 절차에 돌입함과 동시에 내각을 통할할 중립적 국무총리 후보자를 추천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추천된 후보자를 총리에 임명함과 동시에 2선으로 물러나는 전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임명된 중립적 총리는 개각(改閣)을 단행한 뒤, 중립내각이 개헌과 개헌에 따른 새로운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과도적으로 국정을 담당하게 되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개헌까지의 과도내각, '우양과도내각' 모델될 가능성 높아

    헌정의 선례도 있다. 1960년 4월 26일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하야(下野)하자, 국회는 이튿날 수석국무위원인 우양(友洋) 허정 외무장관으로 하여금 과도내각을 조각토록 했다.

    허정 장관은 28일 윤호병 재무장관·이병도 문교장관·전예용 부흥장관·전택보 상공장관·김성진 보사장관·석상옥 교통장관 등 6명의 국무위원을 새로 임명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허정 장관은 "이승만 박사의 사임으로 나 또한 사임해야 하지만, 수석국무위원마저 사임한다면 국정의 공백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생긴다"며 "내무·법무장관을 제외한 전 각료를 경질하고 새로 임명해 중립적인 과도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8월 15일까지 의원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고 대통령과 총리를 새로 선출하겠다"고 '로드맵'을 제시하며 "개헌까지의 과도 기간 동안 내각은 물론 공무원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