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중이라고 안 나오면 나올 사람 없어"… '청문회 앞둔 기싸움' 분석도
  • ▲ 30일 오전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가 열린 가운데, 김성태 위원장이 민주당 간사 박범계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30일 오전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가 열린 가운데, 김성태 위원장이 민주당 간사 박범계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가 첫 기관보고부터 고성과 항의가 오가는 등 파행을 겪었다. 검찰 관계자들이 일제히 출석하지 않아, 이른바 '정호성 녹음파일'을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야당의 의도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최순실 국조특위)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문체부·법무부·검찰·복지부·국민연금공단 등 5개 기관에 관한 1차 기관보고로 첫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기관보고는 시작부터 파행을 겪은 끝에 불과 43분 만에 정회됐다. 당초 이날 기관보고를 하게 돼 있는 검찰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김주현 대검차장, 박정식 반부패부장 3인이 출석 대상이었으나, 전날 오후 일제히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았다.

    검찰 측은 제출한 불출석사유서를 통해 △최순실 비리 의혹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국회에 나와 구체적으로 증언하게 되면 수사와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검찰총장이 국정조사에 출석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국조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야당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나머지 4개 기관의 기관장만을 대상으로 증인선서를 강행하자, 민주당 박영선·손혜원 의원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항의의 뜻으로 퇴장하기도 했다.

    국조특위 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증인선서 직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대통령이 모레까지는 특검을 임명해야 하니, 검찰의 수사는 종료 시점에 와 있다"며 "더 수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수사 만료 시점이니, 검찰은 이제 그동안 수사했던 수사 결과를 보고할 의무만 남아 있다"고, 불출석 사유를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관계자들이 이 자리에 출석조차 하지 않은 것은, 온 국민이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이 자리가 과연 제대로 된 자리이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지 준엄한 의문을 갖게 한다"며 "불출석은 국정조사를 모독하는 차원을 넘어서 주권자인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도 "국정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 모두는 진행 중인 수사와 향후 재판에 관여할 목적이 전혀 없고, 단지 국민에게 국정농단 사건의 진상을 알리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총장은 위원회에 나와 선서하고 수사 경과와 향후 공소유지에 관해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거들었다.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의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국조특위 현장에서마저 재연됐다.

  • ▲ 30일 오전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가 열린 가운데, 새누리당 간사 이완영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김수남 검찰총장 등의 불출석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30일 오전 국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가 열린 가운데, 새누리당 간사 이완영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김수남 검찰총장 등의 불출석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친박계로 분류되는 국조특위 새누리당 간사 이완영 의원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보면, 국정조사는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고 돼 있어, 그 이유로 검찰총장이 불출석사유서를 낸 것"이라며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을 오늘 이 자리에서 검찰총장이 밝힌다면 검찰 수사가 공정할 것을 어떻게 담보하겠는가"라고 두둔했다.

    그러자 비박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은 "방금 우리 당 이완영 의원이 대검찰청 관계자의 불출석에 대해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참으로 참담하다"며 "국회를 무시하는 관례가 계속되면 국조특위가 운영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문체부 국장들도 전부 검찰 수사를 받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수사받았는데 그러면 이사장도 (국조특위에) 나오지 않아야 하느냐"며 "앞으로 청문회에 다들 똑같은 이유로 안 나온다고 하면 동행명령장이라도 발부해야 하느냐"고 개탄했다.

    나아가 "법무장관은 이번 수사에 대해 전적으로 보고받지 않고 검찰에서 자체적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했는데, 수사 경과를 전혀 알지 못하는 법무부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며 "우리는 수사에 간섭하거나 피의사실을 알겠다는 게 아니라, 수사를 했는지 안했는지 팩트를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검찰 관계자의 불출석에 야당이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기관증인에 대한 질의를 통해 이른바 '정호성 녹음파일'을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무산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정호성 녹음파일'이란 검찰이 지난달 29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휴대전화 여러 대에 담긴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 씨와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가리킨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휴대전화의 자동녹음기능을 활용해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 씨와의 통화 내용을 전부 녹음해뒀는데, 통화 내용의 파급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매체에서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녹음파일을 단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은 횃불이 될 것" "10분만 들어도 대통령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질서 있는 퇴진'을 언급해 사실상 '즉각 퇴임'을 제외한 '손에 든 모든 카드'를 내려놓았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야당은 '정호성 녹음파일'을 부각시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려 했는데 국조특위에 검찰 관계자들이 일제히 불출석하면서 이러한 의도가 무산됐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29일) 대국민담화로 탄핵 추진 등 향후 정치 일정 전체에 혼선이 발생한 가운데, 야당은 국정조사를 통해 대통령에 지속적인 타격을 가하면서 퇴진 시점을 앞당기려 시도할 것"이라며 "내달 5~6일로 예정된 청문회는 1차 정점이 될 가능성이 큰데,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나오지 않으면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미리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