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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의 맏형'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8선·경기 화성갑)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는 것인지 안 한다는 것인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의 구도도 '안갯속'이다. '친박의 좌장'에 이어 '맏형'까지 판박이로 결단을 못 내리는 모양새다.
지난 주에는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1%도 없다"더니, 어느새 주변을 통해 "50대50"이라는 말이 나온다. 원유철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에 홍문종 의원의 최고위원 출마 선회설까지 모든 조짐이 서청원 의원의 당권 도전을 가리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출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에도 서청원 의원이 선뜻 공식 입장을 표명치 못하는 것에는 △상처받은 '맏형 리더십' △낙선 우려 △국회의장 좌절 가능성 △혼란스런 청와대의 사인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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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9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원유철 의원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원유철 의원은 11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맏형 리더십'인데 '형님이 왜 끼어드느냐' 아우성
'친박의 맏형'이라고 하지만 전당대회 출마를 고민하는 사이 이미 '맏형 리더십'에 생채기가 났다는 지적이 많다. 고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내상(內傷)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여권 관계자는 "맏형이 '내가 아우르겠다'라고 나오면 아우들 사이에서 '형님 먼저' 하는 리액션이 나와야 그게 진정한 '맏형 리더십' 아니냐"며 "지금은 되레 '형님이 왜 끼느냐'고 아우성만 사방에서 나오는 모양새"라고 혀를 찼다.
이미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병국 의원(5선·경기 여주양평)은 "총선 패배 직후에 지도부가 총사퇴를 했는데 서청원 의원은 그 지도부의 핵심이었던 분"이라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분이 다시 나온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권 주자인 김용태 의원(3선·서울 양천을)도 "(서청원 의원이 출마한다는 것은) 친박패권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며 "서청원 의원이 당권을 잡으면 새누리당은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까지 극언했다.
비단 비박 진영에서만 포격이 날아드는 게 아니라,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주영·한선교 의원조차 서청원 의원의 출마를 마뜩찮아 하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주영 의원(5선·경남 마산합포)은 "서청원 의원이 나오면 계파싸움이 반복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고, 한선교 의원(4선·경기 용인병)도 "(계파 갈등이 심화될 게 뻔하지만) 그렇다고 나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라고 말을 흐렸다.
이래서는 도저히 '맏형'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됐다. '맏형 리더십'이랍시고 전당대회에 나섰다가 '타이틀'까지 잃게 될까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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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2014년 7·14 전당대회 당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7·14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8선인데 3~5선들과 싸우다 떨어지면…?
그래도 전당대회에 나가서 당대표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일 안 되기라도 하면 더 문제다. 반드시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것에 고민의 근원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8선인데 3~5선 후배들과 어우러져 일합을 겨루다가 말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그대로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하면 '총선 패배 책임론'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당권 레이스 과정에서 '총선 패배 책임론'이 쟁점화되면 될수록 손해보는 것은 서청원 의원 뿐이다.
최경환 의원은 지난 6일 "지난 총선 기간 나는 최고위원은 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며 "그런데도 마치 내가 공천을 다한 것처럼 매도당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최경환 의원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가 서청원 의원에게는 타격이다. 서청원 의원은 지난 총선 기간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공천을 다한 것처럼 매도'당해도 피해갈 변명거리가 없는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평의원이라서 총선 패배의 책임이 없다고 구구절절히 호소했던 최경환 의원이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총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청원 의원더러 '전당대회에 나가달라'고 했다더라"며 "참 미스테리한 일"이라고 슬몃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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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최다선인 8선 의원으로 20대 국회 개원 당시 임시 의장을 맡았던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출된 정세균 의원을 축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당권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국회의장의 꿈
8·9 전당대회에 출마할 경우 '필생의 숙원'인 국회의장의 꿈이 더욱 멀어진다는 것도 고심을 깊게 하는 요소다.
국회의장이 되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 하고 야당과의 관계도 원만해야 한다. 그런데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동안 '맏형 리더십'에 상처가 나고 있다. 실제로 출마를 단행하게 되면 3~5선 후배들과 진흙탕에서 뒹굴며 이전투구를 벌일 수밖에 없으니 원한과 적(敵)만 잔뜩 남기게 된다.
당대표가 되더라도 문제다.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대표가 되면 첫 번째로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고, 두 번째로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그를 도와 대야(對野) 전선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런데 경선이라는 것은 아무리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공정히 관리하려고 해도, 패한 쪽에서 반드시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실제로 서청원 의원처럼 국회의장이 '필생의 숙원'이라던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지난해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상대책위원장을 잘못 맡았다가 당대표 경선 관리를 그르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원한을 사고 결국 국회의장의 꿈마저 허무하게 무너졌다.
8·9 전당대회 당권 레이스 과정 뿐만 아니라 이후 대선 후보 경선 관리 과정에서 적(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대선 후보가 직접 네거티브에 나서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당대표가 앞장서서 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을 겨냥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야권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 또한 국회의장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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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8·9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박심마저 아리송… 저마다 자기 좋을대로 해석
이런저런 요소를 다 감안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녹색 신호등'을 켜준다면 '친박의 맏형'이자 '영원한 친박'으로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가보겠는데, 정작 박근혜 대통령의 사인도 해석하기가 애매하다.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단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서청원 의원에게 "8선인데 국회의장까지 양보하고 당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줘 고맙다"며 "계속해서 당의 화합을 위해 애써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전당대회에 나와 당대표가 돼서 당을 화합시켜달라는 메시지가 아니냐'며 서청원 의원의 출마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회의장을 양보한 것처럼 전당대회에서도 한 발 뒤로 물러나 당의 화합을 위해 힘써달라'라는 메시지라고 정반대로 해석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덕담에는 정작 전당대회의 진퇴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당부가 담겨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으로 저마다 자기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박심(朴心)은 박근혜 대통령 혼자 아는 것인데, 그걸 전달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십수 명"이라며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이 '대통령의 의중을 팔고 친박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말이 정녕 틀리지 않다"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