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수상쩍은 시리즈 기사 내보내..황당무계 '평행이론' 들먹
  • ▲ SBS 뉴스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③ : "최대한 하지마" 법치 준법의 상징 '대.통.령' 중에서  ⓒ SBS 홈페이지 캡처
    ▲ SBS 뉴스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③ : "최대한 하지마" 법치 준법의 상징 '대.통.령' 중에서 ⓒ SBS 홈페이지 캡처


    20대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 SBS 홈페이지에 '대통령 선거개입 - 예외는 없었다'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가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이튿날까지 총 3편이 게재된 이 기사는 선거 때마다 반복된 전·현직 대통령들의 '선거개입' 논란을 담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밝힌 것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밝힌 대목,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 "이번 내각은 강원도 내각"이라고 언급한 모습들이 모두 선거중립을 위반한 사례라는 게 이 기사의 골자였다.

    특히 SBS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압도적으로 지지해 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개입을)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했던 모습이 12년 후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며 "선거개입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까지 했던 쪽은 선거개입의 주체가 됐고,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보장하라며 옹호한 쪽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선거개입을 중단하라며 비판하는 야당이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는 '장식'이었을 뿐, 화자(話者)가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당시 탄핵 소추의 이유가 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발 언행'과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닮은꼴'이라는 일종의 '평행이론'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억지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관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개 석상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는 호소를 수차례 한 바 있다. 여기에 친인척 비리에 연루된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 자살한 사건은 '탄핵안 가결'을 급진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한 게 전부다. 선거에서 올곧은 사람을 뽑아달라고 당부한 것일뿐, 결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투표를 당부하는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선관위도 "박 대통령의 발언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선관위에서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한 박 대통령의 언행과, 선관위에서 수차례 경고를 보내고 자제를 요청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행은 근본부터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SBS는 이같은 '팩트'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두 가지 사안이 동일한 '선거중립 위반'이라는 궤변을 시리즈 내내 반복하는 우(愚)를 범했다.

    만일 선관위의 유권 해석 결과를 알지 못한 독자가 이 기사를 접할 경우, '십중팔구'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사야말로 명백한 선거중립 위반이 아닐까?

    SBS는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선거개입으로 탄핵 소추를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결부시키는 기사를 내보냈다.

    또한 대통령의 정상적인 정치 행위를 '선거개입'으로 오도(誤導)하는 야당의 논리를 답습, 지극히 편향적인 논조를 유지했다.

    따라서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 대통령의 행보가 사실상 '탄핵감'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뿌린 것은 '특정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포석(布石)이라는 오해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분석.

  • ▲ SBS를 설립한 윤세영(사진 좌) 회장과 아들 윤석민 부회장.  ⓒ 뉴시스
    ▲ SBS를 설립한 윤세영(사진 좌) 회장과 아들 윤석민 부회장. ⓒ 뉴시스



    SBS "소유와 경영은 하나.. 대신, '보도 독립성' 보장해줄게"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기사가 지상파 뉴스에 버젓이 올라올 수 있었을까?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코너명이 붙은 이 기사는 방송에는 나가지 않는 온라인용 기사다. 따라서 이중삼중으로 데스킹을 거치는 일반적인 방송 기사와는 송출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마부작침'은 SBS 보도본부 내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 생산하는 새로운 형식의 데이터뉴스를 일컫는다.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보도본부 시민사회부 소속인 권OO 기자와, 기획취재부 탐사보도팀 소속인 박OO 기자, 분석가 한OO, 디자인 겸 개발자 임OO, 리서처 안OO 등으로 구성된 사내 프로젝트팀이다.

    '스브스뉴스'를 생산하는 뉴미디어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저널리즘팀'은 SBS에서도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포맷의 기사를 양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형식 파괴를 표면에 내세운 탓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관점에서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보도본부 산하에 '데이터저널리즘팀'이 꾸려지고 '마부작침' 시리즈가 등장한 시점이 올해 초부터라는 점은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SBS노사는 지난달 22일 ▲최초 기사 작성과 최종 데스킹까지 수정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 이력제'를 도입하고 ▲현장기자들이 반드시 방송돼야 한다고 판단하는 기사가 누락된 경우 등 '긴급 제안'을 통해 아이템을 재조정하며 ▲긴급 제안된 기사는 평기자들이 직접 편집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보도준칙 개선안'에 전격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된 보도준칙에 '경영진'이 아닌 '노사'에게 보도의 공정성이 있음이 명시된 것은 최근 SBS를 설립한 윤세영 회장의 아들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이 SBS 계열 3개 회사 (SBS미디어홀딩스·SBS·SBS콘텐츠허브)의 등기이사를 겸하게 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대원칙에 위배됨은 물론, 보도의 공정성마저 위협할 수 있는 이번 인사에 대해 기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경영진이 노조 측과 '독립성 보장'을 위한 추가 협상을 진행해 이번 합의안을 이끌어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보도·제작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강화되는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의 자율성이 보장된 '마부작침' 같은 기사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쏟아져 나올 공산이 커졌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 ▲ 올해 초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사내 프로젝트팀 '데이터저널리즘팀'의 '마부작침(磨斧作針)' 시리즈.  ⓒ SBS 홈페이지 캡처
    ▲ 올해 초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사내 프로젝트팀 '데이터저널리즘팀'의 '마부작침(磨斧作針)' 시리즈. ⓒ SBS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