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감 잡은 安… 안철수는 정치 메시아? 현실 정치에 맞춰야
  • ▲ '내일포럼전남'이 주최한 안철수 의원 초청강연회의 모습.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최강철수'를 연호하며 안 의원이 새로운 정치를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내일포럼전남'이 주최한 안철수 의원 초청강연회의 모습.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최강철수'를 연호하며 안 의원이 새로운 정치를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낡은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빛을 몰고 올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 혁신에 온몸을 던져 뜨거운 지지를 받으실 분…"

    지난 11일 안철수 의원이 방문한 순천은 그야말로 안 의원의 '부흥회'나 다름없었다. 최소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강당에 모여 일제히 '최강철수'를 외치면서 장 내는 들끓었다.

    내일포럼전남 구희승 상임대표는 부정부패를 몰아낼 가장 깨끗하고 실력 있는 정치인, 망가진 호남의 정치를 되살리고 호남의 자존심 세워줄 호남의 사위로 안 의원을 소개했다.

    그런데 어쩐지 휘황찬란한 소개를 받았건만 안 의원의 표정은 좀처럼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친 기대가 무겁게 느껴지는 듯 보였다.

    왜일까.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제게 마지막 희망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온몸이 던져서 가루가 될 때까지 낡은 정치를 바꾸겠다는 각오를 다지겠다"고 했다.

    안 의원의 '희생과 헌신'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가 갈 길은 멀다. 당장 대선까지 남은 시간도 많지 않지만, 그 이전에 먼저 총선을 이겨야 한다. 그보다 앞서서 내부 정리도 필요하다. 현역의원과 외부인사들이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사당화 논란을 없애면서도 걸출한 대선후보를 낼 수 있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도 따로 필요하다. 각각의 결정의 기로에서 그가 선택할 때마다 반드시 그와 충돌할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다.

    그의 고민점과는 달리 대중들의 기대감은 지나치게 높아 보인다. 실제로 지푸라기를 눈 앞에 둔 사람의 기대감은 객관성을 잃은 것일 수 밖에 없다.

    지푸라기가 객관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든 간에 당장 물에 빠진 절박한 사람들은 자신을 살려낼 튜브나 구조대 이상의 역할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 지푸라기가 아니라 구조대가 출동한다 한들 자신을 구원해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의 모양이 구체화 될수록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당에 지지를 보낸 사람 중 누군가를 외면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되려 강한 배신감에 직면하기 쉽다.

    이날 기자가 순천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를 해줄 것이라는 강한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내년 총선을 통해 기존의 정치권을 하루아침에 뒤엎고 새로운 인물들로 정치를 보여줄 '정치 메시아'로 그를 지목하는 분위기다.

  • ▲ 안철수 의원은 광주-순천-김해의 1박 2일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뒤로 현수막의 웃는 표정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안철수 의원은 광주-순천-김해의 1박 2일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뒤로 현수막의 웃는 표정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이는 봉하마을에서의 싸늘한 공기를 되짚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안철수 의원은 여전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나면서 거리감을 좁히는데 주력했지만, 야권분열의 장본인으로 지목당하며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저버린 대가를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안철수 의원이 "특정세력을 비판한 적이 없다. 원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신뢰를 얻어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 말했던 것 뿐"이라고 직접 해명해야 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권 일각에서는 "사실 이명박 정권 때 가장 수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냐"면서 "야권에 합당할지 새누리당에 손을 내밀지 모를 일"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진보진영이 받은 상처는 당분간 쉽게 아물지 않을 듯 하다.

    어느 쪽이든 안 의원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중이다. 대선후보로서 열광적 지지를 이미 느껴본 바 있는 그다. '새정치'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잘 아는 듯했다. 순천에서 말한 강연 내용 곳곳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안 의원은 강연에서 일본 민주당의 사례를 들면서 "집권 경험이 없는 민주당이 처음 집권을 하다 보니 여러 실수를 하게 됐고, 국민에 큰 실망을 안겼다"고 설명했다. 야권이 정권을 잡아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발언이었지만, 경험의 중요성을 강하게 역설한 부분이다.

    그 역시 2012년 당시 대선후보로 정치생활을 시작했지만, 2013년 원내로 입성한 뒤 '강철수'가 되기까지 총 3년 3개월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자신도 "대한민국 정치 저 깊은 곳까지 정치를 경험하면서 제 능력이 부족해 정말 많은 실망을 안겨드렸다"고 했다. 주변에서 정치를 빠르게 배워간다는 평가를 그에게도 3년이 필요할 정도라면 경험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느끼는 '새정치'와 안철수 의원이 경험한 정치판에서의 괴리는 여기에서 온다는 지적이다.

    원내에 자신의 계파를 만들지 않아 그간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험'이 있는 현역들이 필요한데, 지지자들은 기존의 정치를 신물 내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있는 셈이다.

    국민의당 관계자가 "안철수 의원이 지지율이 높아 기분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요즘 고민도 많은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대목에서 나왔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는 계속 몸을 낮추고 있지만 그럴수록 한편에서는 기대감을 키우면서 열광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냉대가 쏟아지고 있다. 대중이 기억하는 생각하는 이미지와 안 의원 간의 거리감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의 정책이 구체화 될수록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나올 것이라 전망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뚜렷한 대책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말하는 사람은 그 한계를 알지만, 듣는 사람은 그 한계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한 말이다.

    안철수 의원은 3년 3개월 만에 '새정치'를 하기 위해서 '새정치'를 벗어던지고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여전히 2012년의 새정치의 바람이 다시 불어오는 것으로 이해하는 모양새다.

    안 의원은 스스로 "우리가 국민 눈높이에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또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겠다"라고도 말해왔다. 열광하는 대중도, 싸늘한 시선의 대중도 아닌, 침묵하는 다수가 소리를 낼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가 필요해 보인다. 지지자들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면서 당을 끌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갈길이 멀수록 실속을 다질 때라는 점을 안 의원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광폭행보와 폭넓게 소통이 폭넓은 지지자들의 입맛을 다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지지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