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효범 사진작가 / BEOM STUDIO
    ▲ ⓒ김효범 사진작가 / BEOM STUDIO

    그를 만난 날은 부쩍 추워진 날씨였다.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속 조상무의 서늘한 이미지를 줄곧 떠올렸기 때문일까. 더욱 한기가 서렸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정중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조우진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수더분하다’였다. 실내여서 만은 아니었을 터다. 말의 온기로 어쩐지 마음까지 삭 녹는 듯 했다. 그러한 반전으로 뉴데일리스타와 조우진의 만남이 시작됐다. 



    “조상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냉철한 면이 없지는 않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오차를 줄이려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하지만 다른 분들 말을 들어보면 그런 부분보다 대체적으로는 허당끼가 더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 직전에 원고지 형식의 수첩과 펜을 꺼내들더니 본인도 인터뷰 내용을 좀 써 봐도 되겠냐며 새삼 학구적인 면모를 보인 조우진이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도중 싱긋 웃더니 천장 기둥에 매달려 간단하게 몸을 푸는 동작으로 넉살을 피우기도 했다. 창고에서 안상구(이병헌 분)에게 “이제부터 바보로 삽시다잉?”이라 어르며 톱으로 그의 팔을 자르던 조상무가 맞나 싶었다. 



    “악역은 이번에 두 번째에요. 2011년에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 이원종 씨 그림자 격으로 살수 역할을 했었거든요. 그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나는 그저 해결사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캐릭터예요. 감독님께서 조상무는 길거리 어디서나 봤을 법한 중년의 임원,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큰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 있어서도 그저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품질보증부 부장님을 따와 봤죠. 그 분이 건조한 투로 경상도 사투리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일하는 데에 있어선 프로셨어요.”



    실제 인물을 착안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인 몰입도가 컸는지 모른다. ‘내부자들’에서 그다지 많은 컷들을 부여받지 못한 상황임에도 조우진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내부자들의 살벌한 세계를 한층 악랄하고 냉혈하게 표현해냈다.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 등 내공으로 꽉 찬 정통 연기파 배우들 틈에서 신 스틸을 할 정도면 실제 감정소모 또한 무시 못했을 터. 



    “새벽에 제 촬영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손도 떨리고 약간 정서불안 증세가 나타나더라고요. 운전하고서 백 미터를 못 갈 정도로요. 어두운 골목 한 곳에 들어가서 차를 잠시 세웠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내부자들’을 촬영하면서 ‘조디악’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현실 밀착형 공포를 체험하는 기분이었어요. 오싹했죠.”



  • ▲ ⓒ김효범 사진작가 / BEOM STUDIO
    ▲ ⓒ김효범 사진작가 / BEOM STUDIO



    반면 ‘내부자들’을 촬영하는 순간에는 줄곧 또 다른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고. 대 배우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됐더란다.   



    “‘연기 어벤져스’ 분들이잖아요. 동경의 대상들 틈에 낀다는 거, 함께한다는 거 자체가 영광이었죠. 현장에서도 배울 게 굉장히 많았어요. 실생활에서도 영화에 푹 빠져계시는 분들이더라고요. 항상 몰입해 계시고. 쉬는 시간, 대기 시간, 여유 있게 현장에 있는 모습까지 모든 게 다 영화 같았죠. 심지어는 담배까지 너무 맛있게 피셔서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게 됐어요.(웃음)”



    영화의 살벌한 관계들과는 반대로 현장은 끊임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분위기였단다. ‘포레스트 검프’ 속 탁구를 치는 장면처럼 전혀 힘을 주지 않고도 서로 호흡 좋게 주고받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다고. “베테랑들 속에서 탁구채를 갖다 대고만 있어도 잘해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조우진에게서 황정민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과 같은 겸손함이 느껴졌다. 



    “주연은 굳이 욕심 내지 않으려 해요. 단역이든, 주연이든, 조연이든 훌륭하고 의미 있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볼 생각이에요. 그런 의지를 항상 뿌리로 삼고 싶고요. 99년에 제일 처음 무대에 올랐어요. 16년 동안 작품에 텀이 있을 때는 생계를 위해서 물류 창고 일도 해보고 사무보조, 편의점, 고급아파트 경비도 며칠 해보고 그랬어요. 지금도 많은 연극배우들이 그런 상황이죠. 스스로도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뭐든지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작품들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안고 살려고요.”



    아마 대부분의 이들이 조우진을 ‘내부자들’로 겨우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연극과 뮤지컬 12작품 이상, 드라마 ‘무사 백동수’ ‘닥터 진’ ‘마의’ ‘구암 허준’ ‘구가의 서’ ‘기황후’ 등 12편 이상, 영화 ‘마마’ ‘최종병기 활’ ‘원더풀 라디오’ ‘관능의 법칙’ 등 7편 이상에서 묵묵히 역할을 해왔다. ‘내부자들’에서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이경영에 꿀리지 않는 포스를 내뿜은 것이 놀라울 일이 아니라는 증거다.



    “아직도 제 연기를 볼 때 부끄럽고 민망해요. 연극할 때도 마지막에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내가 잘 했구나’ 보다는 ‘덜 부끄럽고 덜 창피했구나’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선배님들께서 자부심 좀 가지라는데 사실 지금도 얼떨떨해요. ‘내부자들’을 세 번 정도 봤는데 처음엔 저를 잘 못 보겠더라고요. 아직은 손가락 안에 드는 수의 영화를 찍은 터라 어색해요. 관객보다 카메라가 보는 눈이 어색하달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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