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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불쌍한 짭새’에서 벗어나라!
    11월 14일 반역(叛逆) 난동에 대한 단상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정말 큰 일 날뻔했다.
    분한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안도(安堵)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복판 광화문에는
    ‘폭력 경찰’과 ‘선량한 민중(民衆)’만 있을 뻔했다. 

  •   평소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개 X에 보리알 끼듯” 좀 배웠다 싶은 분들 데려다가
    “종알 종알” 말 따먹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 날에는 그런대로 쓸모가 있었다.

    ‘종합 편성 채널 TV’ 전부는 아니였지만,
    그 무슨 “민중 총궐기 대회”를 거의 생중계(生中繼)했다.
    그나마 그거라도 없었으면, 대한민국 경찰은 이번에도
    “평화로운 집회와 행진을 무참하게 짓밟은 민중의 몽둥이”라는
    누명(陋名)에서 자유롭지 못할 뻔했다.

      그렇다. 그날 광화문에는 ‘핏발 선 반역(叛逆) 폭도’와 ‘불쌍한 짭새’만 있었다.
    11월 14일의 이른바 ‘평화 집회·행진’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반역(叛逆) 난동”이라고 규정해야 맞다. 많은 궁민(窮民)들이 생생하게 보았다.

  •   그런데도 새(鳥)연합에서는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경찰 진압방식의 폭력성이
    도를 넘었다”며 그 난동 와중에 경찰청장에게 항의를 했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는 일관되게 “경찰의 무차별 과잉 대응” 운운하고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해야 하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우리는 그들을 위해 세금을 낸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여간 이로써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은 11월 14일의 폭도들과 새(鳥)연합은
    결국 한 패, 한 통속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새(鳥)연합 왕초께서도 11월 14일 “반역(叛逆) 난동”을 조마조마하며 지켜 봤을 것이다.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

      역시 그 간절함이 통했나?
    그들 폭도들 속에 있던 60대 남자가 어쩌다 중상(重傷)을 입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전남 보성(寶城) 농민회’ 소속이라고...
    절호의 찬스가 왔다? 도하 각 언론에 최근 보도된
    “호남 지지율 충격의 5%”를 만회할 기회가 온 것 아닌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야 각자 상상에 맡기도록 한다.
    과거의 전례(前例)도 있고 하니. 물론 또 한 번의 삽질로 마무리 될 게 뻔하다만은...

      최근들어 새(鳥)연합 왕초께서 부쩍 자주 거론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입에 발린 소리인 줄
    알만한 궁민(窮民)은 다 안다. 이 분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리 좋게 얘기해도
    ‘自有民主主義’, 즉 “자기(自己) 유리(有利)한 대로 민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   하지만 최소한 과반(過半)의 궁민(窮民)들은
    우리 경찰이 언제까지 그날처럼 상처뿐인 ‘불쌍한 짭새’로 남을 것인가를 걱정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의 정당한 물리력(物理力)으로 거듭나 주길
    바라고 있다. 무섭고 엄격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역(叛逆) 세력’에 대해서 만큼은...

      관건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궁민(窮民)들의 성원과 격려다.
    또한 무엇보다도 언론이 값싼 양비론(兩非論)에서 벗어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공권력(公權力)은 공권력(空拳力)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안(公安)이 공안(空眼)이 되면 없느니만 못하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최전선(最前線)에서
    ‘성(城) 안의 적(敵)’들과 맞서다가 부상(負傷)을 당한 경찰
    전사(戰士)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