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지역구 지키기는 정당성 있지만, 슬그머니 생겨난 옆 돗자리는 뭔가
  •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문 앞에 농성장을 차린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문 앞에 농성장을 차린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국회가 법률 제정과 예산 심의라는 본연의 기능은 온데 간데 없이 도떼기 시장으로 전락했다.

    민의가 수렴돼야 할 본회의장을 중심으로 반경 50m 안에 농성장만 세 곳이 차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3일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확정고시를 할 것으로 알려지자, 이에 반발해 전날 저녁부터 본회의장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3일 오전에는 로텐다홀 농성장에서 실외 현장 의총을 열었다.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도종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특별대책위원장은 마이크를 잡고 선동 발언도 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비공개 의총을 계속하기 위해 돗자리와 침낭을 남겨두고 예결위회의장으로 몰려들어간 시각, 얼마 떨어지지 않은 로텐다홀 계단에서는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의 "충청도와 농어촌 지역구를 지키자"는 힘찬 외침이 울려퍼졌다.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 의원모임이 차려놓은 농성장에서 나온 소리다. 모임의 여당 간사인 황영철 의원과 조해진, 이장우 의원 등이 농성장에 앉아 있었다. 이 농성장은 지난달 초,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 의석을 늘려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자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국회본청 정문을 나서면 정의당이 비례대표를 축소하지 말라며 농성장을 차려놨다. 정의당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도 본회의에 불참한 채 정문 앞 농성장을 지키기도 했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주장과 고집만 난무하고 있는 우리 국회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듯 하다.

    그나마 지난달 초에 농어촌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농성장이 차려질 때만 해도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는 사안인 만큼 정당성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슬그머니 양 옆에 생겨난 농성장은 이유도 명분도 없다. 정당성이 희박한 무리들이 끼어들어 앞뒤로 돗자리를 같이 까는 모습이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을 심의해야 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위원장 자리가 파행 운영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구속된 박기춘 위원장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여당 간사가 위원장 대행을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김동철 의원을 후임 국토위원장으로 선출하기로 했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으면 선출할 방법이 없다.

    김영석 해수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연기됐다. 부처 수장의 공석 상태가 길어지면 해수부의 업무에도 지장이 따를 수밖에 없다.

    민생경제법안 처리와 예산 심의를 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국회가 농성장으로 변해버린 것은 의회주의가 땅에 떨어진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예산안 심의, 법안 처리 등은 중차대한 문제이지만, 상임위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고 해양수산부 장관 인사청문회도 무산됐다"며 "야당은 투쟁 대신 민생 정치에 매진해야 하며, 지금도 역사는 야당의 반(反)의회주의 장외투쟁을 기록하고 있다"고 준엄한 경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