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 탄 집난이’ 같이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 평안도의 사투리입니다.
    ‘집난이’라는 말이 <우리말 큰사전>에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이 낱말을 들어본지도
    70-80년은 된 것 같은데, 엊그제 갑자기 ‘소 탄 집난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어려서 어른들이 하시던 이 말을 들을 때에는 ‘찌푸린 얼굴을 하고 소를 타고 시집가는 처녀’를 상상하였습니다. 다른 집 딸들은 시집 갈 때 다 말을 타고 가는데 가난한 집에 태어난 이 집 딸은 말을 못 타고 소를 타고 시집을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마도 남 보기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소를 타고 가는 겁니다. 

    나의 이 풀이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해 줄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평안도 사투리를 연구하는 민속학자가 있다면 모를까 누가 감히 이 노인의 어릴 제 기억을 틀렸다고 고쳐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되살린’ 이 속담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터득할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겁니다. 요새 말로 바꾸자면 ‘불평하지 말고 살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소를 타고 시집가는 젊은 여자가 말을 타고 시집가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면 불평과 불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소도 탈 수 없어서 걸어서 시집가는 처녀를 생각하면 “고맙다”는 생각이 앞설 겁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가마 타고 시집가는 처녀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소나 말을 탈 수만 있어도 팔자가 좋다고 했을 겁니다. 걸어서 시집가는 여자들을 생각하면 팔자가 늘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행운의 세대들’이 오늘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자란 건강한 사람들이 오늘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배용준이나 이영애보다 잘 생긴 남자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는 오늘의 한국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습니까? 전쟁과 가난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반성하세요. 지금 반성하면 길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