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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 스틸컷
‘사도’는 나랏일을 다루지 않고 집안일을 다뤘다. 이준익 감독은 궁궐을 배경으로 영조와 사도세자, 정조까지의 어긋난 관계를 그리며 비극적 사건인 ‘임오화변’을 최대한 팩트에 가깝게 풀어나간다. 이에 관객들은 무려 250년 전, 높으신 그 분들의 이야기에 아니 눈물 흘릴 수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의 뒤틀린 사연은 우리들에게 충분히 있어 왔기 때문이다.
비록 영조와 사도만큼 회복 불능의 상처는 아닐지라도 부자간에 한 번 쯤은 오해나 의견 대립을 겪어 봤을 터. 살다보면 의외로 ‘이런 데서?’라는 사소한 부분에서 감정의 골이 파이기 시작한다. 영조와 사도는 기질자체가 다른 것이 근간에 깔렸던 상황에서 ‘대리청정’을 하며 연신 부딪치고 급기야 영조는 사도에게 매 순간 폭언을 일삼게 된다. 사도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내가 아들만 하나 더 있었어도...”
엄하게 호통 치는 아버지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원했던 아들, 유교문화가 뿌리깊이 박힌 대한민국 대다수 부자들의 관계와 상동하리라 본다. 본디 부모는 자식을 엄하게 다스려야 하며 자식은 웃어른을 공경할 것. 필자는 ‘임오화변’이 일어나기까지의 사건들이 유교의 수직적 관계 허용, 가부장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준비된 뒤주에 순순히 몸을 넣는 사도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조 일가인 주변 인물들 또한 갈등의 중심인물들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우리들의 가족 구성원을 투영시켰다. 혜경궁 홍씨, 영빈, 인원왕후, 정성왕후, 화완옹주, 홍봉한 등은 영조와 사도의 갈등 속에서 미간에 주름이 펴질 틈도, 온전히 발 뻗고 자는 날도 없다. 그 속에서도 이들은 각자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애쓰는 서늘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 영화 참 잔인하다. 이들의 이야기에 어쩐지 공감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정과 소름이 함께 밀려온다. -
- ▲ ⓒ'사도' 스틸컷
고통은 대물림 되는 것일까? 천민 신분의 후궁 소생인 탓에 정통 왕들과 차별을 받았던 영조는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평생 안게 되며 독한 인물로 거듭났다. 그는 자신이 만든 엄격한 틀에서 사도가 한 치라도 벗어난 모습을 보이면 매섭게 채찍질을 했다. 완벽주의자인 영조에겐 사도가 당근을 받을 자격으로 비춰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사도는 정조에게 사랑을 주는 법 역시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정조인 소지섭의 눈빛에는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비애가 서려있다.
‘사도’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인 ‘왕의 남자’와 같이 판소리곡이 사도의 광기에 갇힌 심경을 드러내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사도의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면 ‘나무아비타불, 나무아비타불’이라고 외는 주술 같은 노래가 꽹과리, 북의 타격감과 함께 관객들의 심장을 사정없이 때린다. 이 신들은 우리의 질풍노도시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잘못 건드리면 ‘펑’ 터져버릴 것만 같던 예민하고 위태롭던 그 당시를.
생각할 사(思)에 슬퍼할 도(悼)의 의미가 담긴 ‘사도세자’란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인물들의 감정선을 치밀하게 들여다 본 이 영화는, 사건 중심의 플롯을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로, 思我, 思族하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
- ▲ ⓒ'사도' 스틸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