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국민 정서가 제약 조건… 의원 정수 늘리는 것 불가능"김종철 "지역구간 면적 527배까지 차이 나… 이것이 합당한가"
  • ▲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가 11일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가 11일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선거구획정위)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국회의원 정수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 비율 등 바람직한 선거구 획정 방안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견해들이 쏟아졌다.

    당초 이 공청회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진술인으로 출석한다는 점에서, 정치 현실과 유리된 규범론과 외국 사례들이 난무하는 공리공담의 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샀었다. 하지만 뜻밖에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의견들이 많이 제시됨에 따라, 선거제도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여야 지도부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들도 향후 협상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획정위는 11일 오후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8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의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 산하 기구가 아닌 독립 기구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가 선거구의 경계를 정하기에 앞서 각계각층의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장이었다.

    이날 공청회에는 선거구획정위원들과 금창호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 김욱 배재대 교수, 김종갑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신옥주 전북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이 진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조선일보 부국장)은 "선거구 획정 권한이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의 손을 떠나서 독립기구에 맡겨졌다는 것은 큰 진전"이라면서도 "정치관계법에 국회가 (선거구 획정안을) 손댈 수 없도록 규정됐다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이어 "정개특위가 (이달) 13일까지 선거구 획정 기준을 넘겼어야 했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며 "첫 번째 시한을 못 지키면 10월 13일의 (획정위의 획정안 국회) 제출 시한과 11월 13일로 잡혀 있는 획정안 국회 처리 시한도 차례차례 밀려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마지막까지 밀려가다보면 정치권이 벼락치기 합의를 하고 획정위는 이 합의를 추인하는 역할만 하게 될 수도 있다"며 "국회가 스스로 법을 만들었는데 설마 그렇게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들이 아주 수시로 벌어진다"고 경계했다.

    김창균 위원은 국회가 선거구획정위에 부여한 권한을 '현금'이 아닌 '부도 가능성이 높은 어음'으로 비유하면서, '어음'을 '현금화'하기 위해 획정위가 신경써야 할 지점으로 △법정시한을 지켜 정치권에 빌미를 제공하지 말 것 △국민 정서를 고려해 현실적인 획정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10월 13일까지는 어떻게든 획정안을 만들어 국회로 넘겨야 한다"며 "그래야 공이 국회로 넘어가고, 국회를 여론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 11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 출석한 진술인들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서복경 서강대 연구원,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 김종철 새서울 대표변호사, 김종갑 입법조사처 조사관.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11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 출석한 진술인들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서복경 서강대 연구원,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 김종철 새서울 대표변호사, 김종갑 입법조사처 조사관.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또, 모처럼 주어진 재량권이라고 이를 마음껏 휘둘러 파격적인 개혁안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국민 여론을 우군(友軍)으로 삼아 헌정사에 좋은 첫 선례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김창균 위원은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염치와 체면을 내던질 각오가 돼 있다"며 "선거구는 법정사항이라 최종적인 결정권은 결국 국회에 있기 때문에, 획정안이 (기성 정치권에) 너무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되면 법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획정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창균 위원은 19대 국회에서 의원 정수가 299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난 경위를 설명했다.

    김창균 위원은 "의원 정수를 고작 한 명 늘리자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선거구를 조정하다보니 마지막으로 영남이나 호남에서 1석을 덜어내 299석을 만들어야 하는데, 양당이 그 1석을 포기하지 못해서 국민의 비난을 무릅쓰고 300석이 됐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여야 간의 형평 문제에 정치권에서 그 정도로 민감하다"며 "어느 한 쪽이 너무 밑지는 획정안을 넘기면 손해 보는 쪽에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논란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의석 문제에 있어서는, 둘 다 증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창균 위원은 "갤럽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의원 정수 축소 응답이 57%, 현행 유지가 29%로 증원 반대를 합하면 86%가 돼 (증원) 찬성의 열 배를 넘는다"며 "국민 정서가 결정적 제약 조건이기 때문에, 의원 정수를 300명보다 늘리는 것은 정치 현실상 불가능하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며 "의원 정수를 현재대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첫 번째 획정 작업은 아주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새로운 선거법에 따른 획정 절차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에 좋은 선례를 만들면 다음에는 보다 독립적으로 재량권을 갖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 ▲ 김종철 새서울 대표변호사가 11일 열린 선거구획정위 주최 공청회에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김종철 변호사는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한다면, 지역구를 270석까지 늘리고 비례대표를 30석까지 줄여 선거구의 인구 상한을 24만 명, 하한을 12만 명으로 해 농어촌 지역구를 가급적 통폐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를 전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종철 새서울 대표변호사가 11일 열린 선거구획정위 주최 공청회에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김종철 변호사는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한다면, 지역구를 270석까지 늘리고 비례대표를 30석까지 줄여 선거구의 인구 상한을 24만 명, 하한을 12만 명으로 해 농어촌 지역구를 가급적 통폐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를 전달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리농어촌지역지키기운동본부 추천으로 공청회에 출석한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도 국민 감정을 진솔히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종철 변호사는 "국민들의 준법의식은 정당하게 구성된 국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사표(死票)와 평등의 원칙 등을 일거에 만족시키려면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만들어서 정당득표율대로 다 나누면 되겠지만(이스라엘식 완전비례대표제), 그렇게 구성된 국회를 국민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국회라고 생각하겠느냐"라고 물었다.

    이어 노무현정권 시절 수도 이전 사건에서 '관습헌법'에 대해 판시했던 헌법재판소 결정례에 빗대 "국회의원은 법리상으로는 국민 전체의 대표이지만,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지역과 주민의 대표라는 헌법적 의식을 갖고 있다"며 "지역을 대표하지 않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국민이 갖고 있는 관습헌법적 의식에 위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김종철 변호사는 △단원제 국회의 특수성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 등을 감안해, 의원 정수를 현재 300명으로 유지한다면 지역구가 늘어나고 비례대표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김종철 변호사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인구가 엄청나게 적은 알라스카주에도 상원 의원 2명을 배정해 지역대표성을 보장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서울 동대문갑과 영양·영덕·봉화·울진은 국회의원 1인의 관할 면적이 527배 차이가 나는데 이것이 과연 합당한가"라고 물었다.

    나아가 "국민의 뜻이 국회의원을 300명 이상 용납하지 않는 것이라면 비례대표를 많이 줄여서 전체의 10%(30명)로 하면 되는 것"이라며 "이 경우 (지역구가 270명이 되면) 12만 명을 하한, 24만 명을 상한으로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정치 현실과 국민 정서를 적절히 고려한 주장에 선거구획정위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공청회에 출석한 진술인들의 발언이 모두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획정위원들의 질문은 주로 김창균 위원과 김종철 변호사에게 쏠렸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김창균 위원은 비례대표를 무작정 늘려야 한다는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규범론에 반박하며, 현직 언론인으로서 목격한 생생한 정치 현실을 소개했다.

  • ▲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이 11일 열린 선거구획정위 주최 공청회에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김창균 위원은 현재의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된 정치 현실을 볼 때, 양심상 도저히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창균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이 11일 열린 선거구획정위 주최 공청회에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김창균 위원은 현재의 비례대표 선출과 관련된 정치 현실을 볼 때, 양심상 도저히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창균 위원은 "비례대표가 정치이론적으로 제대로 작동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이 옳을 수도 있다"면서도 "현실에서 비례대표가 선출되는 방식과 선출된 비례대표의 경쟁력, 그리고 당선되자마자 지역구부터 챙기는 것을 보면 양심상 도저히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숫자로 된 데이터는 없지만 20년 동안 정치권을 지켜보니, 지역구는 아무리 당 지도부가 전횡을 한다고 해도 본선에서 떨어질 사람을 밀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의 경쟁력은 담보되더라"며 "비례대표는 발표 하루 전날에도 막 바뀐다. 이것이 정치 현실"이라고 냉정히 진단했다.

    나아가 "선거구획정위가 던진 획정안이 국민에게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순간, 이것은 정치 게임이 돼 버린다"며 "국민들의 바람을 누가 더 수용한 안을 냈느냐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김종철 변호사 역시 국민 정서는 비례대표 확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 지역과 주민의 대표인 지역구 의석 확대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양원제가 아닌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회에서는 당연히 지역구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제헌의회 때 (국회의원이) 200명일 때는 비례대표라는 게 없었다"고 상기시켰다.

    아울러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면서 지역구의 대표라는 관념은 건국 이래의 헌법으로부터의 관념"이라며 "내가 뽑은 대표가 국회에 갔기 때문에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준법의식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비례대표 의석 증원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농어민을 대변하는 대의대표가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김종철 변호사는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실시안에 따르면 인천·경기·강원이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연 그 권역에서는 농어민 대표가 나올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를 통해서 농어촌을 대변한다는 게 제도적으로 될 수 있다면야 방법이겠지만, 정치 현실을 보면 생각이 다른 것 같다"며 "소수자 보호 등은 제대로 (비례대표제가) 운영됐을 때의 이야기이고, 국민들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