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탕평'했지만… 공천에서 '기득권' 내려놓을 수 있을까
  • ▲ 최근 공개 석상에서 당 지도부와 혁신위를 향해 연일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회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최근 공개 석상에서 당 지도부와 혁신위를 향해 연일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석현 국회부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보다 인화력이 큰 내용을 소재 삼아 2라운드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사'를 배경으로 하는 1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 대신, 선수들은 '공천 룰'로 한 판 붙을 태세를 보이며 몸을 풀고 있는 모양새다.

    새정치연합은 22일 유은혜 대변인의 현안 브리핑을 통해 당직 인선 결과를 발표했다. 총무본부장에 최재성 의원, 조직본부장에 이윤석 의원, 전략홍보본부장에 안규백 의원, 디지틀소통본부장에 홍종학 의원, 민생본부장에 정성호 의원이 임명됐다. 정책위의장은 강기정 의원에서 최재천 의원으로 교체됐다.

    이번 당직 인선은 '탕평인사'로 평가된다. 유임된 안규백·홍종학 의원과 전 사무총장으로서 사실상 유임에 가까운 최재성 의원을 제외하고 새로 인선된 의원들은 비노(非盧, 비노무현)계에서 임명됐다.

    이종걸 원내대표와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진 강기정 정책위의장이 최재천 의원으로 교체돼 원내 전략의 원활한 수립이 가능해졌다는 평이다. 당무에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윤석 의원의 조직본부장 임명은 계파를 떠나 적재적소의 인선이라는 분석이다.

    유은혜 대변인은 인선 결과 발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인사는 만장일치로 의결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다른 문제로 사소한 다툼과 소란이 있었을 뿐, 당직 인선에 있어서는 최고위원 간에 이견이 없이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당직 인선이 우여곡절 끝에 해피 엔딩을 맞이한 반면, '공천 룰'이라는 새로운 전선(戰線)에서는 짙은 전운(戰雲)이 드리우고 있다.

    새정치연합 내의 비주류 의원들은 최근 연일 자체적인 공천 혁신안을 제시하며, 문재인 대표를 상대로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 시간 대부분을 할애하며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일부의 오해가 있는 듯 하다"며 △조직을 동원하는 후보가 유리하다 △정치 신인이 불리하다 △역선택의 위험성이 있다는 오해를 공개 모두발언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석현 부의장은 "조직을 동원한다는 것은 기존의 소규모 당내 경선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여야가 합의한 동시 경선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국가가 대대적으로 홍보한다면 수만 명이 참여할 것이므로 조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 신인이 불리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 선임한 대의원들에 의해 진행되는 기존 제도야말로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며 "전국적으로 지명도 높은 명사라도 경선을 두려워하고 전략공천을 원했던 것은 천하의 사자라도 물 속에서 싸우면 악어를 못 당했던 이치"라고 비유했다.

    A당 지지자가 일부러 B당의 경쟁력 낮은 경선 후보에게 투표하는, 이른바 역선택 위험성에 대해서도 "투표소에서 주민등록증을 확인한 뒤 유권자가 희망한 한 정당의 투표용지만 교부하는 완전국민경선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석현 부의장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제도(오픈프라이머리)를 외면하고 공천 혁신을 찾는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라며 △전략공천 유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등으로 대표되는 혁신위의 공천 혁신안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 ▲ 21일 공천혁신안 기자회견 발표를 통해 문재인 대표가 컷오프·전략공천·단수공천 등 대표의 공천 기득권 유지 수단들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촉구한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1일 공천혁신안 기자회견 발표를 통해 문재인 대표가 컷오프·전략공천·단수공천 등 대표의 공천 기득권 유지 수단들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촉구한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연합을 향한 민심 이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전라북도의 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성엽 의원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숙의(熟議) 선거인단 경선 제도'의 도입을 촉구했다.

    경선 참여를 원하는 후보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중앙선관위가 공정성 있게 추출하는 400명 정도의 선거인단의 숙의 끝에 선출 절차를 거치는 이 제도는 공천 과정에서 당 대표나 지도부의 기득권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유성엽 의원도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완전 해체 △전략공천 전면 폐지 △단수공천 엄격 제한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 야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공심위·전략공천·단수공천은 그간 새정치연합에서 친노가 비노를 공천 학살할 때 사용됐던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라며 "문재인 대표가 이 세 가지 큰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는 컷오프를 통해 경선 후보자를 2~3배수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친노 후보와 가장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제외한 경쟁력 있는 비노 후보들을 사전에 갖가지 명목으로 탈락시켜, 사실상 친노 후보를 공천하는 역할을 맡아 왔다.

    전략공천은 비노계 현역 의원이 있을 경우 참신한 인재 등용·물갈이 등을 명분으로 이를 내쫓고 친노 후보를 내리꽂는 역할로 기능했고, 단수공천은 친노 후보의 경쟁력이 지나치게 미약해 경선에서 선출될 가능성이 없을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돼 왔다.

    이렇듯 기득권의 핵심 중의 핵심인 '공천권'을 전면적으로 내려놓으라는 요구가 문재인 대표의 귀에 곱게 들릴지 의문이다.

    유성엽 의원은 지난 5월 13일 문재인 대표가 참석한 민주당집권을위한모임(민집모) 회동에서 공천혁신특위 설치를 제안하며 그 위원장으로 주승용 최고위원을 천거했었는데, 이것이 문재인 대표의 역린(逆鱗)을 건드렸었다.

    이를 비노 계파의 공천권 요구로 받아들인 문재인 대표는 격분해 이른바 '당원께 드리는 글'을 작성했다. 성명 자체는 단결과 화합을 강조하는 전병헌 최고위원의 결사적인 만류로 공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내용이 모두 새나가게 되는 바람에 김한길 전 대표가 차담회 형식으로 반박에 나서는 등 극심한 당 내홍으로 번진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유성엽 의원의 당시 발언은 충언이자 고언에 가까웠다"며 "주승용 최고위원을 공천혁신특위 위원장으로 천거한 것도 그 정도의 진정성을 보여야 주승용 최고위원이 복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주승용 최고위원의 성품상 그런 자리를 제안한다고 해서 덥썩 받으실 분이냐"며 "당 대표가 당인(黨人)들의 성격을 너무 모르고, 충언의 진정성도 몰라준다"고 아쉬워했다.

    유성엽 의원의 이번 공천 혁신안 제안도 당을 위한 충언이지만, 민감한 사항인 '공천 룰'과 관련된 만큼 문재인 대표의 귀에 곧이곧대로 들릴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기득권(공천권)을 내려놓으라"는 비노 측의 충언·고언이 잇따를수록 문재인 대표도 자극을 받아 '제2의 당원께 드리는 글' 사태와 같은 파국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9일 국회에서 탈당 성명을 낸 새정치연합 전직 당직자·당원들로 구성된 중도개혁정당 창당 준비 모임인 국민희망시대의 임종천 대변인은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문재인 대표가 인사에서는 호남을 달래기 위해 마지못해 자칭 '탕평', 계파 안배를 하는 듯 했지만 공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천 과정에서 호남인을 더욱 더 무시하는 처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