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새누리당 당론에 재상정 포기..사실상 폐기 결정
  • ▲ 새누리당 의원총회 모습.ⓒ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의원총회 모습.ⓒ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위헌 논란의 국회법 개정안이 결국 폐기 운명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어 새누리당이 이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으로 확정하면서다.

    새누리당은 25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고 자동 폐기시키기로 결정했다.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권리를 존중함과 동시에 원만한 당청 관계에 중점을 둔 결정으로 풀이된다.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가능하지만 160석으로 전체 의원수(298명)의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재의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가 확정됐다. 국회법 개정안은 내년 5월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된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이날 여당의 뜻을 존중해 재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장실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
    정 의장은 평소 국회의 위상과 권위를 제일 중시하고 있지만,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는 의장의 평소 소신에 따라 재상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 정의화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헌법 53조에 정해진 대로 재의에 부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개정안을 재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정 의장은 다만 "여당이 과반을 넘는데, 본회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면 투표가 성립할 수 없지 않느냐"며 "그럴 경우까지도 생각해 검토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새누리당이 재의결하지 않기로 당론으로 확정하면서, 정 의장의 입장이 선회했다. 재상정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 사실상 폐기를 결정한 것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부터 5시간 동안의 마라톤 의원총회을 끝내고 기자들과 만나 
    "다수의 의원들이 '청와대와 국회, 특히 여당이 끝까지 싸우는 모습으로 가는 것은 좋지 않다'고 걱정했다"면서 "그래서 개정안에 대한 재의 표결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다수의 의원들은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당 의원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마당에 재의결을 한다는 것은 여당의 도리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재의결해야 한다는 의견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관심이 쏠렸던 유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는 일단 원내대표직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유 원내대표는 당내 친박(친박근혜)계의 사퇴 요구에 대해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겠다"며 사퇴거부 의사를 밝혔다. 


    다만 그는
     "원내대표인 나와 청와대 사이에 소통이 원활치 못했던 점에 대해 걱정도 하고 질책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당과 위헌 논란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인해 결국 당청 당내 갈등을 유발됐다는 점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 원내대표가 사과의 뜻을 밝히고 사퇴론을 비켜간 배경엔 김무성 대표의 중재 역할이 있었다는 주장도 전해진다. 김무성 대표가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 불가' 방침을 당론으로 정한 뒤, 유 원내대표의 청와대를 향한 사과의 뜻을 표명하는 것으로 '개정안'-'사퇴론'의 두 논란을 봉합했다는 것이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는 당 의원들에게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5일 오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대회를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5일 오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대회를 벌이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새누리당의 당론 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강경투쟁을 불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한 정치를 했다. 여당이 국회 지키기를 포기한 날이자, 의원이 직위를 포기한 날이다"고 맹비난했다.

    새정치연합은 나아가 이날 저녁 본회의 개회 직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 집결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규탄대회'를 열었다.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에 실망이 크다. 스스로 국회의 존재가치를 부정했다"며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란 헌정질서를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 모인 야당 의원들은 "국회법 재의거부 새누리당 각성하라", "오만한 대통령, 불쌍한 새누리당 국회법 재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여당을 싸잡아 힐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당 대표 등을 향해 수위 높은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
    오늘 박근혜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서 하신 말씀은, 도저히 대통령 품격 품위 언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여러번 하신 말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며 "국민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화 의장을 향해서는 "의회민주주의 높이는 사람이 맞느냐. 의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인가. 국회를 스스로 모독하는 불행한 의장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냐"며 면전에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님 서청원 이재오 의원님, 유승민 원내대표님 어디에 앉아 계시는가. 그 기개는 어디로 갔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책을 위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안'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연장안 등 두 개의 법안만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