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에게 협박글 파문 비서 박모 씨, 설훈 모셨다보니 국민들도 동정심 갖지 못해
  • ▲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영리한 새는 나무를 가려 둥지를 틀고, 현명한 신하는 임금을 가려 섬긴다."

    공자가 위(衛)나라를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춘추좌씨전 노애공(魯哀公) 11년 겨울의 기록에서 보인다.

    현대에 이르러 바야흐로 정치의 영역에서 군신(君臣) 관계는 사라진 줄 알았지만, 아직도 군신 관계나 다름없는 질서가 유지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여의도 의원실이다.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제출하는 '면직요청서' 한 장으로 언제든 잘릴 수 있는 게 의원실 보좌진이다. 카카오톡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보좌진도 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보좌진과 의원의 관계는 철저히 갑과 을일 수밖에 없다"며 "현대판 사노비"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이를 보다못한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의원이 보좌진을 직권 면직할 때는 최소한 30일 전에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그나마 보호하겠다는 게 이 정도 수준이니, 의원과 보좌진 사이의 현대판 전제 군신 관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보좌진 입장에서는 그저 주군 잘 만나는 게 제일 큰 복(福)이다. 영리한 새라면 나무를 가려 앉아야 할 이유가 충분히 존재하는 셈이다.

    최근 이를 입증하는 사건이 터졌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실의 전직 비서가 협박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설훈 의원실에서 근무하던 비서 박모 씨는 지난 2월 민원인 문모 씨의 전화를 응대하던 도중 시비가 붙었다.

    박모 씨의 전화 응대가 불친절하다고 주장한 문모 씨는 이를 새정치연합 민원실, 당대표실, 우윤근 원내대표실, 문재인 의원실, 국회 민원실, 새정치연합 보좌관협의회, 설훈 의원 본인과 보좌관·비서관 등과 통화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비서 박모 씨도 민원인을 상대로 "마음은 죽이고 싶다" "실제로 마주치면 칼로 찔러 죽일지도 모른다" "만나면 칼로 아킬레스건을 잘라 죽인다" "염산을 먹인 다음 방망이로 얼굴을 곤죽 내주겠다" 등의 글을 포털 사이트에 게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훈 의원실 관계자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원래 민원 대응은 보좌관이나 비서관 등 경험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다들 회의 중이고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 있던 비서에게 전화가 돌아가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며 "의원실에서 내보냈는데, 민원인 일로 물의를 빚은 것도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세련되게 대응했어야 하는 건데 본인도 욱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은 유감"이라며 "이미 (의원실에서) 나간 사람이다보니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 ▲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 사안의 사실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사실 국회에 악성 민원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같은 당의 김광진 의원실 관계자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우리 뿐만 아니라 국회 300명 의원실이 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며 "술 드시고 전화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실 비서는 엄연히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다. 국민의 한 사람인 민원인의 전화에 친절하게 응대하지 못한 잘못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포털 사이트에 올린 글은 실정법에 위반될 소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잘못은 섬길 주군을 잘못 고른 것이 아닐까. 막말로 악명 높은 설훈 의원의 의원실 출신이다보니 국민들도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났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역시 설훈 의원 밑에서 일했던 사람에게 뭔가 잘못이 있겠거니 하고 바라보게 되는 게 사실이다.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의 막말 퍼레이드는 이미 정치권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친숙한 수준이다.

    설훈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불법자금 20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주장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김모 청와대 비서관이 준 정보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해명했지만, 김모 비서관은 당시 미국으로 출국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피선거권을 10년 박탈당한 설훈 의원은 노무현정권 때 복권받았는데, 보은(報恩) 복권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지난해 9월에는 정의화 의장이 국회 상임위원장단 연석회의를 주재했을 때 "청와대에서 7시간 동안 뭐했나"라며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심각한 게 있다"는 망언을 했다.

    막말에도 주기가 있는 법인데, 설훈 의원의 막말과 망언은 주기도 따로 없는지 바로 그 다음달에 노인 폄하 발언으로 악명을 떨쳤다. 설훈 의원은 윤종승 한국관광공사 감사를 향해 "79세면 은퇴해서 쉴 나이"라며 "60세 전후로 정년을 하게 돼 있는 제도는 판단력이 떨어지니까 쉬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훈 의원 자신도 당시 62세로 정년이 넘은 상황이다. 게다가 자신이 모셨던 김대중 대통령은 79세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의 말 그대로 이제는 판단력이 떨어져서 나온 망언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가 바뀌어도 막말은 그치지 않아, 자신의 비서가 민원인과 공방을 벌이고 있을 무렵인 올해 3월에는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했다는 사실을 사실로 믿고 싶지 않다"며 "국민들이 천안함 조사 결과를 신뢰 못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는데 난들 어떻게 하겠느냐"고 다시 망언했다.

    설훈 의원의 막말 전력이 이 지경에 이르다보니, 그가 이번에 교문위원장직을 내려놓는다고 하자 환영과 안도의 목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후임 교문위원장이 될 같은 당의 박주선 의원은 지역구에서 열릴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이 직책을 맡는다고 하지만, 교육적 측면에서도 다행이라는 지적이다.

    이렇듯 막말을 일삼은 설훈 의원을 섬겼던 비서가 민원인과 다투고 포털 사이트에 섬뜩한 협박성 글을 올렸다고 하니 국민들도 일고의 동정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는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르겠는가"라고 했다. 영리한 새라면 애초부터 나무를 가렸어야 하는 법이다. 설훈이라는 썩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튼 댓가가 이리도 혹독한 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