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낮지만 거부권 행사 단념하고 헌재로 공 넘길 수도
  • ▲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재의 강행 여부에 따른 여당·야당·청와대의 득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재의 강행 여부에 따른 여당·야당·청와대의 득실. ⓒ표=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는 거부권을 행사할까. 행사한다면 국회로 환부된 법안에 대해 여야는 재의결을 강행할까. 국회법 개정안의 환부와 재의를 둘러싸고 여당·야당·청와대 간의 셈법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18일 국회에서 인준받음에 따라 정국에 남은 뇌관은 국회법 개정안 뿐이다.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 이송함에 따라 청와대는 오는 30일까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심의할 때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헌법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데다가 신임 황교안 국무총리도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에 법리적인 차원에서 많은 검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최경환·황우여 부총리와 유기준·유일호·김희정 장관 등 현역 국회의원 출신 국무위원들은 정무적 차원에서도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 ▲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환부 거부돼 되돌아올 경우 재의 상정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이 환부 거부돼 되돌아올 경우 재의 상정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거부권, 정말 행사할까?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6일 "딱 한 글자를 고쳤던데…"라며 "우리 입장은 달라질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정의화 의장도 17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요지로 전화를 했는데, (이병기 실장이) 상당히 완강하더라"고 전했다.

    새누리당도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를 전제로 숙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18일과 19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분명히 우린 위헌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가결시켰다"면서도 "대통령 입장에서는 위헌성이 분명한데 결재할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19일 현안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정쟁을 일으켜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고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한편으로 야권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기류도 읽힌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이날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메르스 때문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지는 등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 ▲ 국회에 환부 거부된 법률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에 환부 거부된 법률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전원 출석시 재의 가결을 위한 이탈표는 62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로 환부된다. 되돌아온 법안은 상임위나 법사위를 거칠 필요 없이 본회의에 바로 상정할 수 있다.

    정의화 의장은 환부 거부시 본회의에 상정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를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에게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종걸 원내대표는 반발을 무릅쓰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 국회의장의 '자구수정' 중재안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게 중론이다.

    환부 거부된 법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53조 4항에 따라 재적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재적 의원은 298명이며 새누리당이 160석, 새정치연합이 130석, 정의당이 5석, 무소속이 3석이다. 무소속 3석은 다시 친여 무소속 2석(정의화·유승우)과 친야 무소속 1석(천정배)으로 나뉘어진다.

    만일 재적 의원 중 수감 중인 새누리당 송광호·조현룡 의원과 새정치연합 김재윤 의원을 제외한 전원(295명)이 출석한다면 재의결에 필요한 찬성표는 197표가 된다. 출석한 새정치연합 의원 전원과 정의당 의원 전원, 친야 무소속인 천정배 의원이 재의 찬성표를 던진다고 해도 135표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누리당에서 62표의 이탈표가 필요하다.

    문제는 환부 거부된 법안을 재의결할 때에는 국회법 제112조에 따라 무기명 투표를 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누가 재의 투표 때 찬성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62표의 이탈표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1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여야 각 당이 내부적으로 의총 등의 절차를 통해 의논하고 투표는 자유투표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일 정말로 이렇게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자유투표를 하게 된다면, 국회법 개정안은 재의 가결될 공산이 크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했는데도 국회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서 가결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당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청와대의 정국주도권이 치명적으로 약화되지만, 여당이 입는 내상도 그에 못지 않다. '이탈표' 책임론을 둘러싸고 친박이 득세하면서 여당이 친박·비박 간의 내홍에 전면적으로 휩싸일 수도 있다. 이 경우 1년 가까이 당을 잘 이끌어 온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국회법 개정안 사태 초기와 비교해 입장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지적된다.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청와대의 의중을 따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국회법 개정안 사태 초기와 비교해 입장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지적된다.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청와대의 의중을 따를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무성 나서면 재의 부결… 이종걸 "속았나"

    다만 여권 핵심 관계자는 "(자유투표를 하겠다는) 그 이야기는 벌써 보름도 더 지난 이야기"라며 "그 사이에 김무성 대표의 기류가 많이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는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항상 청와대의 뜻을 존중해 왔다"며 "유승민 원내대표가 직접 (부결시키자고) 나서기는 어려운 국면이기 때문에, 만일 정말로 거부권이 행사된다면 김무성 대표는 의총에서 '이번에는 대통령의 뜻에 따르자' 정도의 입장은 밝힐 것"으로 전망했다.

    일사불란하게 당 지도부의 입장을 따르는 이른바 '모범생'들이 많은 집권여당의 특성을 감안해 볼 때, 김무성 대표가 이 정도의 입장을 밝히게 되면 새누리당에서는 친박·비박을 가리지 않고 거의 전부가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는 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이빨을 드러내고 나서는 게 문제다. 국회법 개정안은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합의에 의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빅딜'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 부결'을 전제로 한 질문에 "우리가 또 한 번 (새누리당에) 속았나"라고 웃은 바 있다.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 부결을 바라보는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시각을 이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속는 것' 즉, 정치적 사기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재의 부결이 현실화된다면 국회에서는 여아 간의 극한 대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어찌됐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등은 야당과 합의를 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에 국회의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한 협상에 나서기에도 동력이 떨어진다. "'빅딜'하는 척 하고 또 거부권 행사하려고 그러느냐"고 나서면 면목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여당 원내지도부의 협상력이 추락함에 따라 국회 운영에도 혼란이 오게 된다.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법 개정안을 부결시킨 청와대도 마냥 웃을 입장이 아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생경제법안을 처리시킬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사진 오른쪽)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시 의결정족수를 맞춰주기로 했다는 이른바 약속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뒤 이를 취소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사진 오른쪽)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시 의결정족수를 맞춰주기로 했다는 이른바 약속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뒤 이를 취소한 바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표결 거부 시에는 진실 공방 재점화 가능성도

    새누리당 지도부나 원내지도부가 나서서 부결을 종용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자유투표를 하자니 '이탈표'가 염려되는 딜레마를 피하기 위해 아예 본회의장에 단체로 입장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애초에는 정의화 의장이 환부 거부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보류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정 의장이 이종걸 원내대표와 '정치적 약속'까지 한 마당에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결국 차선책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아 의결정족수를 맞춰주지 않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이다.

    이 경우 헌법에서 정한 재적 과반수의 출석 요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재의를 할 방법이 없게 된다. 또, 무기명으로 이뤄지는 투표와는 달리 출석은 누가 본회의장에 들어왔는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이탈 출석'을 할 정도로 '간 큰 여당 의원'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방안의 문제점은 집권여당이 본회의장에 단체로 입장하지 않는 게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다는 점에 있다. 그간 새누리당은 각종 인사 관련 표결 등에 새정치연합이 '협조'하고 "출석해 표로서 의사를 표현하라"고 촉구해 왔는데, 정작 스스로 곤란한 사안에서는 단체로 출석을 거부한다고 하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으로서 면목이 서지 않는 일이 된다.

    또한 의결정족수를 한 번 맞춰주지 않는다고 해서 해당 법안이 폐기돼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부담이다. 19대 국회 임기 만료 시까지는 계속해서 언제든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는 상태로 있게 되기 때문에, 향후 원내지도부 간의 협상에서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의 표결 처리'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 의사 일정이 꽉 막히게 될 위험성이 있다.

    새누리당이 의결정족수를 맞춰주기로 했느냐에 대한 '진실 공방'이 재점화될 우려도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6일 "(유승민 원내대표가 재의결시 의결정족수를 만들어주기로 했다는) 정치인 사이의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정치인의 말을 믿느냐'고 하더라"는 말까지 소개했다.

    이 말 때문에 정치권에 한바탕 큰 파문이 일면서 비록 발언 자체는 취소됐지만, 새누리당이 막상 의결정족수를 맞춰주지 않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면 언제든지 '진실 공방'은 재점화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평이다. '진실 공방'에 '빅딜'에 따른 정치적 사기 논란까지 번지면 국회 운영이 마비되는 것은 재의 부결 때와 별반 다를 것도 없다는 지적이다.

  • ▲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의 파국은 피할 수 있게 되고, 여야 관계는 순항이 예상된다. 사진은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원내수석.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의 파국은 피할 수 있게 되고, 여야 관계는 순항이 예상된다. 사진은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원내수석.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거부권 행사 단념하고 공을 사법부로 넘길 수도

    결국 여당·야당·청와대가 아무리 복잡하게 셈법을 헤아려봐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렇다할 이득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새누리당 신지호 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학진 전 의원이 15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 정국의 고수(高手)로 정의화 국회의장과 이종걸 원내대표를, 하수(下手)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단념하고 국회법 개정안을 공포할 가능성도 미미하게나마 아직은 살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일 국회법 개정안이 공포되면 황교안 국무총리의 인준과 함께 정국의 뇌관들은 제거된다. 당청 갈등도 불편하나마 봉합되며, 여야 관계도 순항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중한 메르스 정국을 감안해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뒤따를 수 있다.

    야당은 시행령과 관련해 상임위 차원에서 수정 '요청'을 하며 압박을 강화할 수 있지만, 반대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 사태에서 한 수 접어준 것을 발판 삼아 민생·경제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압박할 수도 있다.

    공포 후에 문제로 남는 것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느냐이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한 사안으로 결론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행정부의 행정입법권 침해를 이유로 권한쟁의심판이 청구될 경우, 심판의 반대편 당사자가 되는 국회사무처에서는 이에 대비해 국내의 여러 헌법학자들의 견해를 청취하고 외국의 판례와 입법례를 수집·분석하는 등 헌법소송 준비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권한쟁의심판에 돌입할 경우 여·야·청이 개정 국회법의 위헌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강제성'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일 수는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공이 사법부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큰 논란이 일 것은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