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슈바이처되겠다는 꿈… 정치적 이해관계로 흔들면 안 돼
  • ▲ 국회의장에서 물러난 뒤 북한에 병원을 설립해 의료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한국형 슈바이처의 꿈을 밝힌 정의화 국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의장에서 물러난 뒤 북한에 병원을 설립해 의료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한국형 슈바이처의 꿈을 밝힌 정의화 국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최근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20대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관계로 부산 정가가 시끄럽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정의화 의장은 19일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에 출연해, 내년 4·13 총선 출마와 관련해 "51대49로 안 나올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불출마에 무게를 싣긴 했으되 51%라는 부분이 애매하다. 이어 "정치가 여러 변화가 많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내가 어딘가에서 필요하다면 그 일을 또 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이 이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지역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의화 의장이 내년 총선에서 부산 중·동구에 다시 출마하는 경우의 수도 열어놓고 있다고 한다.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지역 매체와 통화에서 정의화 의장이 다시 출마하면 당연히 그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해졌다.

    100%라고 단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출마설'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용어를 빌리자면 '참 나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정의화 의장에게 내년 총선의 출마 여부를 물어본 질문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느낌이다.

    정의화 의장은 그간 수차 국회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겠다는 꿈을 피력해 왔다.

    올해 초에는 CBS라디오 〈시사자키〉에 출연한 자리에서 국회의장 임기 이후에 관한 질문을 받자 "슈바이처를 아느냐"며 "나는 한국형 슈바이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의대를 다니던 시절 도시 영세민을 위한 '도시형 슈바이처'를 구성했고, 이후 의사로서 종합병원을 이끌면서 복지재단을 만들기도 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의장이 끝나면 은행에 빚을 내서라도 장인·장모 고향(평양 및 평안북도 의주)에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정의화 의장은 "(북한 사람도) 우리 동포인데 맹장 정도로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느냐"며 "1년에, 두 달에 한 번씩이라도 (북한에 설립한 병원에) 왔다갔다 하면서 의술도 가르쳐주고 시술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러한 정의화 의장의 숭고한 계획에, 대담을 맡은 정관용 교수조차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얼마나 좋겠느냐"고 무릎을 쳤다.

    나아가 "오늘 말씀해주신 그 소망은 사실은 의장님의 소망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소망일 것"이라며 "(국민들의 소망을) 대신 이뤄주신다고 생각하시고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소망을 차치하고 역대 국회의장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의화 의장이 차기 총선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의장의 권위가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은 2002년 2월 28일 국회법이 개정되면서부터이다.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 조항이 이날 의결됨으로써 의장은 여야의 정쟁을 초월한 조정자이자 중재자, 입법부의 운영자로서 국가의전서열 2위에 걸맞는 권위를 갖게 됐다는 평이다.

    3월 5일 이 법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공포되자, 당시 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던 이만섭 전 의장은 즉각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이탈하고 헌정 사상 최초로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다. 이후 이만섭 전 의장은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후임인 박관용 전 의장도 11대부터 16대 총선까지 부산 동래에서 내리 6선을 했지만 국회의장을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했다.

    17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는 당시 원내 제1당인 열우당의 김원기 전 의장이 선출됐는데, 전북 정읍에서 6선을 했지만 18대 총선에 불출마하고 상임고문으로 물러났다. 후임인 임채정 전 의장도 같은 경로를 밟았다.

    18대 국회의 전반기 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부산 영도에서 내리 5선을 했지만 19대 총선에 불출마했고, 후임인 박희태 전 의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19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강창희 전 의장도 지난 4월 20일 대전 중구에 있는 자신의 지역사무소에서 20대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처럼 당적을 떠나 중립적인 의정 운영자로서 국회의장을 수행하고 명예롭게 정계를 떠나는 것이 이미 헌정(憲政)의 상도(常道)로 자리잡았는데, 이제 와서 새삼 정의화 의장에게 차기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다는 것이 우습다.

    혹시라도 정치적 이해 관계를 염두에 둔 세력들이 정의화 의장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출마설을 흘리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중하길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정의화 의장이 명예롭게 국회의장을 마치고 물러나 대북 의료 봉사 활동을 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로서 존경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계를 물러난 역대 국회의장들 중 일부가 이런 저런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존경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화 의장이 국회의장을 물러난 뒤, 흰 가운을 걸친 채 남북을 오가며 동포를 위해 봉사한다면, 비로소 우리 국민들도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참다운 존경심을 가질만한 '은퇴한 국회의장'의 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슈바이처'가 되겠다는 정의화 의장의 소중한 꿈을, 대수롭지 않을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흔드는 세력이 여의도에서든 부산에서든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