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최고위원직 내거는 우리 국회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 6일 오전 여야 합의에 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맹비난하는 발언을 한 뒤, 정작 이를 논의하고 있던 이날 오후의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인사 청탁 문자를 주고받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6일 오전 여야 합의에 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맹비난하는 발언을 한 뒤, 정작 이를 논의하고 있던 이날 오후의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인사 청탁 문자를 주고받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오전과 오후의 언동이 전혀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와 같은 면모를 선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에 진통을 겪으면서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6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4·29 재보선 승리의 의미는 구조개혁과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요구였는데, 이번 여야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며 "여야 합의안이 과연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서 나온 안인지, 양당 대표 두 분의 미래만을 위한 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어 "합의안은 퍼주기식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며 비열한 거래"라며 "공무원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고,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공박했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며 "나 자신도 잘못된 안에 대해서는 모든 (최고위원)직을 걸고 철회시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절절히 나라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충정, 이전에 개헌 문제로 한 번 내놓았다가 무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다시 한 번 국민을 위해 최고위원직을 내거는 기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의 면전에서도 얼마든지 쓴소리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담긴 발언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날 오후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자 "모든 것을 걸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김태호 최고위원이 취한 행동은 엉뚱하기 짝이 없었다.


  •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6일 오후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해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본회의장에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6일 오후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해 소집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본회의장에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바로 지근거리에 위치한 김무성 대표가 앉은 자리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바삐 오가며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막판 조율하던 그 순간, 이를 "바로잡겠다"던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여야 협상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대신 김태호 최고위원은 본회의장의 심각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모티콘을 연신 날리며 누군가와 유쾌한 문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력서 한 장 보내놨소" "오케이, 받았어요. 고문(顧問) 월 300 맞나요? 6월부터요" "감사요"

    이모티콘과 초성체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청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무렵 인근의 김무성 대표 자리 근처에서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던 공무원연금 개혁안 여야 협상이 파국을 맞으며 좌초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총출동해 김무성 대표 주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어떻게든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 처리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남의 나라 일처럼 여기는 듯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오전에 "(합의안은) 양당 대표 두 분의 미래만을 위한 안"이라며 "모든 직을 걸고 철회시켜나가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날 결국 협상을 타결짓지 못하고 4월 임시국회가 폐회되자,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인사청탁이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를 위해 머리를 맞댔던 여야 원내지도부는 정치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로 큰 충격을 토로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정치가 허무하고 회의가 느껴진다"고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오전 회의에서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꾸지람을 들은 김무성 대표도 "살다 보면 세상 일이라는 게 이 길이 옳을까, 저 길이 옳을까 참 고민되는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 ▲ 같은 날 같은 시각, 김태호 최고위원의 자리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의 본회의장 자리 주변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들이 총출동해 심각한 표정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막판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같은 날 같은 시각, 김태호 최고위원의 자리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의 본회의장 자리 주변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들이 총출동해 심각한 표정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막판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같은 날, 집권여당 최고위원단의 일원을 구성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으로서는 얼마나 보람찬 하루였을까. 오전에는 누구보다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양 근엄한 표정과 목소리로 여야 대표들을 싸잡아 꾸짖고, 오후에는 본회의장에 등원해 즐겁게 웃는 이모티콘을 날리며 인사청탁을 진행했다.

    이런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정치란 회의감이 들기는 커녕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을까. 이러한 행동이 그가 툭하면 내걸겠다, 던지겠다고 부르짖는 집권여당 최고위원직의 무게를 가벼이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때문일까. 요즘 국회에서는 직책이 아니라 목숨을 내거는 것이 유행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14일 대정부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성완종 전 의원으로부터) 만약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온다면 내 목숨을 내놓겠다"고 단언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는 6일 원내대표 후보자 합동토론회에서 "이번에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떨어지면 자살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전엔 누구보다 나라 걱정하는 양 하다가, 오후에는 국사는 안중에도 없이 인사청탁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준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 요즘 유행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철회시키는데 걸겠다던 최고위원직을 내놓는 것이 자신이 저지른 물의를 수습하기 위한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는 지적이다.

    한편 김태호 최고위원은 7일 저녁 〈뉴데일리〉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송구스럽고 국민들께 참으로 면목이 없다"며 "어려운 처지에 처한 지인을 도우려 한 행동이었는데 경솔한 처신이었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