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것은 쓰되 쓰지 않을 것은 안 쓰는것이 기자의 자세"
  • ▲ 국방부 청사.ⓒ뉴데일리DB
    ▲ 국방부 청사.ⓒ뉴데일리DB

    아마 남자라면 군대에 대해서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기자 또한 그랬다. 두 명의 신입 기자에게 국방부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상우 기자와 임재섭 기자였다. 잠시 망설여졌다. 남자들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재입대'를 지옥같은 상황에 비유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군대를 다시 간다니! 

    그러나 아무나 출입하기 어려운 국방부의 특성상, 기자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방부를 출입하는 경험은 쉽지 않는 경험이다. 우리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국방부 방문길에 올랐다. 

    국방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국방부의 대언론 시스템, 다른 하나는 '기자의 마음가짐은 무엇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처음 국방부 내부의 브리핑실을 본 첫 인상은 '무게감'이었다. 

    국회와 비교를 하자면 국회는 많은 기자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한마디라도 더 말을 하려는 의원들과 정당의 대변인이 있다. 그리고 이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하고 복잡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에 반해 국방부는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만 깔끔하게 입장을 하는 상황이어서 잘 정돈된 차분함과 무게감이 느껴졌다. 

    우리가 브리핑실에 갔을 때에는 브리핑이 시작하기 전이어서 국방부 공보과 직원이 마이크는 잘 켜지는지 소리는 잘 나는지 테스트를 일일이 하고 다녔다. 놀랍게도 테스트를 하고 다닌 사람이 소령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모를까 이곳에서는 소령은 높은 계급이 아니었다. 

  • ▲ 국방부 브리핑실 모습. 소령계급의 공보과 직원은 일일이 마이크가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다니며 꼼꼼하게 브리핑을 준비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국방부 브리핑실 모습. 소령계급의 공보과 직원은 일일이 마이크가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다니며 꼼꼼하게 브리핑을 준비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브리핑을 준비하는 사람은 공보과 직원 외에도 있었다. 국방부 산하에 각 부처가 많고, 국방 분야는 전문성이 요구돼 대변인이 곧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고 했다. 국방부 산하의 관계자들이 브리핑을 할 때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전부 모인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는 '아마 국방부 산하 부처가 17개가 있으니, 20명 정도는 앉아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다. 

    이윽고 국방부 브리핑이 시작됐다. 브리핑실에는 좌측에 의자가 13개 있었는데, 브리핑이 시작할 때에는 3명이 앉았다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앉는 사람이 늘어났다. 브리핑이 끝날 때 쯤에는 7명이 앉아있었는데, 우리는 곧 앞에 나서서 답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임과 권한이 있는 높은 사람만 좌측에 앉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예상에 비해서 앉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브리핑이 끝난 뒤 선배 기자는 브리핑 당시 브리핑실 뒤쪽에 서 있던 사람 대부분이 군 당직자라고 했다. 

  • ▲ 왼쪽으로 보이는 의자에 국방부 산하의 관계자들이 브리핑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앉는다.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 서서 브리핑 내용을 받아적고 답변할 내용을 준비한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왼쪽으로 보이는 의자에 국방부 산하의 관계자들이 브리핑 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앉는다.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 서서 브리핑 내용을 받아적고 답변할 내용을 준비한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국방부 브리핑실은 좌측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뒤쪽에 서 있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내 예상보다 국방부가 실수하지 않고 답변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십 명 이상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배치됐던 것 같다. 다른 부서에서 보기 어려운 진기한 분위기를 경험 할 수 있었다.

    국방부에는 공개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민감한 내용들도 많고 보안사항들도 많다. 그래서 공개 브리핑에서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답하기보다는 따로 접촉해 취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 브리핑을 매일 같이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열린 공간에서 질의하고 그런 질문을 국방부가 듣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소통의 창구가 여전 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 해 보았다.

    실제 이날 브리핑에서는 기자들의 브리핑 질문 강도가 만만치 않게 강했다. 기자들은 외교 문제 등으로 답하기 어려운 문제에도 연이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뒤에 있는 당국자들은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 사실관계를 파악한다. 그 후 질문 내용에 대한 답을 정리하면서 일대일로 백브리핑이 진행되거나, 나중에 보도 자료를 완성해서 따로 배포한다. 

    여기서 기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해주지 않는다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쫓아가서 다시 질문하고, 취재원이 귀찮다고 느낄 만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취재원이 기분이 상하지 않게끔 말하는 것과 친분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은 결단코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배가 국방부에서 오랜 시간 노력했듯이 장기간의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기자라는 것이 단순히 글 잘 쓰고 머리회전이 빠르게 돌아간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의 메인이벤트는 김민석 대변인과의 인터뷰였다. 간단한 점심식사 후 여태까지 보고 느낀 것들을 적당히 정리하고 대변인실로 향했다. 

    사전에 김 대변인이 훌륭한 군사전문기자였고 국방부 역사상 최초의 언론계 출신 대변인이라는 사실은 공부했지만, 막상 TV에서 보던 인물을 눈앞에서 보니 떨려서 말이 잘 안 나왔다.

    하지만 언론계 대선배와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기에 마음을 다잡고 서투른 질문이라도 열심히 했다. 김 대변인은 우리의 서투른 질문에도 성실한 자세로 답해주었다. 

  • ▲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김 대변인은 새내기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투른 질문을 받고도 성실하게 질문에 응해주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김 대변인은 새내기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투른 질문을 받고도 성실하게 질문에 응해주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김민석 대변인은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국방연구원에 재직했다. 그는 각종 무기를 연구했으며, 특히 박격포의 수직 탄도 곡선과 파괴력 등 기밀을 다 뤘다. 거기에 북핵까지 공부했으니 기자가 아닌 연 구원으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이에 더해 한국 최초의 군사전문기자까지 거쳤다는 것은 긴 세월 동안 부단한 노력이 수반된 것이다.

    그는 "자신은 자기관리를 잘 못한다"고 했지만 원자력을 공부하기 위 해 1년 내내 연구실에 박혀 있던 열정은 범인이 쉽 게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김 대변인은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 못한다"라고 했지만 경영대부터 공대, 국제 관련 전공까지 폭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국방부에 대한 모든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대변인과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방부 대변인이 북핵을 비롯해 무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고 언론을 잘 이해하는 기자출신이어서 참 잘 됐다고 느꼈다. 김민석 대변인은 이런 폭넓게 쌓은 지식과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이 시답잖은 도발을 걸어올 때에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해 5월 12일 김민석 대변인은 무인기 도발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북한을 향해 "북한이란 나라 자체가 나라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인권과 자유가 없는 북한은 있을 수 없는 나라, 빨리 없어 져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김 대변인은 국방부 대변인의 모습이나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기자로서의 마음가짐도 알려주었다. 그는 '쓸 것은 쓰고 쓰지 않을 것은 안 쓴다' 고 간결하게 말했다. 어떤 기자가 특종을 손에 쥐고 그것을 쓰지 않고 참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보안이 중요한 국방 분야의 특성상 취재의 정도를 판단하여 내보내지 않을 것은 지켜주었기에 동료 기자 뿐 아니라 취재원들의 신뢰까지 받을 수 있었다. 

    대변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선배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기자의 자세도 강조했다. 기자 업무를 일로 받아들이지 말고,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바탕이 될 때 돈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얻을 수 있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곧 기자의 자세라는 말이다. 

    국방부에 체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국방부라는 출입처의 특징도 엄청나게 큰 경험이었지만, 기자로서의 기본자세도 큰 배움이었다. 선배가 말한 기자의 자세는 사실 인간으로서 기본 예의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국방부를 들어갈 때의 무거운 발걸음을 생각하면 국방부에 무엇인가 놓고 나온 듯 가벼운 발걸음 이었다. 

    단순히 국방부라는 새로운 곳을 경험했고, 어려운 일정의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걱정하고 있던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