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 북한 동영상에 대한 박연미 씨의 반박 인터뷰

    신준식 /뉴포커스

    최근 북한 우리 민족끼리가 탈북민 신동혁 씨(33세)에 이어 박연미 (21세)씨도 가짜라고 주장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을 알리는데 적극 기여했던 신동혁 씨같은 경우, 14호 관리소에서 18호 관리소 출신으로 증언을 번복한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완전통제 구역에서 탈출한 수용소 출신으로서 근본적 오류를 범한 셈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박연미 씨를 “가짜”로 만들기 위해 신동혁 씨와 똑같은 수법으로 가족 친인척들을 동원하면서까지 동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박연미 씨는 "일부 언론들에서는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 기사들에는 아주 무책임하게도 북한의 주장만 있고 나의 해명은 없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뉴포커스가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인 박연미 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다.  

  • 문: 먼저 북한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았나?
    답: 보았다.
    내가 북한을 떠날 때 13살이었는데, 북한 정권이 그런 어린애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가 싶었다.
    그런 동영상에 친인척 얼굴들이 등장하니 어리둥절했다.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던 친인척들이었는데...북한은 정말 나쁜 것 같다.   
    문: 일부 언론들에서 박연미 씨의 적극적 해명이 없어서 오히려 더 의심을 하는 것 같다.
    왜 침묵하나?
    답: 대응할 가치도 없다.
    그리고 난 바쁘다.
    거짓을 상대할 시간이 안 된다.
     
    문: 지금 북한 동영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아버지 사망문제이다.
    언론들도 그 점을 가장 주목한다. 박연미 씨는 그동안 아버지가 중국에 같이 나와서 사망했다고 했는데 북한 주장으로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10년 전에 이미 사망했다면서 그것을 근거로 박연미 씨의 증언 전체를 거짓으로 매도한다. 
    답: 북한은 독재정권이라면서도 참 멍청한 것 같다.
    세계를 상대로 거짓말하면서도 왜 그런 치명적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의 아버지는 2007년 10월 3일 탈북했고, 중국에서 찍은 가족사진도 있다.  
    중국에서 우리 가족이랑 함께 살았던 탈북자들도 남한에 10여명이나 와 있다.
    중국에서 치료 받다가 사망했는데 현재 묘지도 중국에 있다. 

  • ▲ 박진식(박연미 아버지) 씨의 영정사진과 가족사진
    ▲ 박진식(박연미 아버지) 씨의 영정사진과 가족사진
    북한은 나의 증언과 실체를 뒤집으려고 아버지 사망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 고약한 짓이 동영상 전체의 치명적 오류임을 증명해주었다.
    이 말을 하고 보니 아버지가 죽어서도 나를 지켜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인다. 
    문: 박연미 씨는 처음엔 아버지랑 같이 탈북했다고 했다.
    그런데 훗날에는 아버지보다 먼저 탈북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한 외신 기자가 그 점을 문제삼는 기사를 쓰는데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왜 아버지의 탈북시점에 대한 증언이 오락가락했나?
    답: 처음에 아버지랑 같이 탈북했다고 말한 것은...(울먹이며) 어머니와 내가 같이 탈북했을 때 중국 브로커가 시집가지 않으면 어머니와 나를 북한에 다시 돌려보낸다고 협박했다.
    탈북이자 인신매매여서 그 점을 감추고 싶어,(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들끼리 탈북했다고 하면 어머니를 이상하게 볼까봐
    아버지랑 같이 탈북했다고 말했다...(울음을 그친 뒤)
    그러나 외신 인터뷰가 많아지면서 솔직해야져야 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먼저 탈북하고 아버지가 뒤따라 강을 넘었다고 정정했다. 
    문: 북한 동영상에서는 박연미 씨의 집 앞이 압록강이어서 강만 넘으면 그만인데 산을 3개 넘었다며 그 증언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했다.
    산을 넘었나? 강을 넘었나?
    답: 목숨을 걸어야 하는 탈북이다.
    집에서 편하게 걸어나와 탈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그리고 혜산보다 그 위 쪽으로 올라가야 경비가 덜하고 강폭도 좁다.
    도로를 따라가면 경비대가 있어서 그 사람들을 피해야 했다.
    별 수 없이 꽃동지 산을 넘어 까막골 아래에 있는 주체 바위 쪽에서 내려가 언 강을 건너 탈북해야 했다.
    그때는 밤인데다 어린 나이에 국경을 넘는다는 공포로 나에겐 엄청 큰 산을 몇 개 넘는 것처럼 인식됐다.
    북한 동영상에서 그런 것까지 트집잡는 것을 보니 앞으로는 신중하게 증언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 북한 동영상에서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빌어 혜산 경기장에서는 공개총살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답: 공개총살을 본 것은 여러 번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 엄마가 죽는 것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11살이었다,(미국 나이로 9살이었다.)
    지금까지 그 증언중에서 고원이란 지명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가족들의 신변을 걱정해서였고, 그래서 공개 처형 장소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북한 중부지역이라고만 해왔다.
    단 한번도 혜산 경기장에서 공개처형을 봤다고 한 적은 없었고 혜산 연풍시장이나 시장 근처에서 공개 처형이 있었다고는 말했다.
    고원에서 본 공개처형 증언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별명이 까나리(하도 말라서 까나리라 불렀다)었는데
    그 친구의 집에 가면 항상 여러 나라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까나리 엄마”가 빌려준 비디오를 본 친구가 안전원에게 잡히게 됐고, 그 친구가 취조를 받던 중 결국 "까나리 엄마"에게서 DVD를 얻었다는 것을 자백했다.
    그 집에선 헐리우드 영화 외에도 남한 드라마들이 가득 나왔다.
    미국인들이 강연 대상이어서 가볍게 헐리우드라고 했던 것이다.   

    문: 북한은 박연미 씨의 증언에서 강에 시체들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점을 외국인을 내세워 부정했다. 그 외국인은 강에는 시체가 아니라 아이들이 뛰어놀고 행복한 모습 뿐이라고 했다. 
    답: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북한의 모습에 그런 처참한 장면들이 있을리 없다.
    그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구태어 해명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없나?
    답: 2009년 12월 엄마가 중국에 가서 아버지 유골을 가져오려고 했다.
    그런데 상담사한테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한국 국적이 없기 때문에 중국 공안에서 문제 삼을 것이다면서 만류했다.
    일이 터졌으니 이제 유골을 가져오려고 한다.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묻힌 장소를 외신 기자들과 함께 가려고 한다.
    중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한동안 치료 받았던 중국 병원에 가서 진료기록과 의사들도 만나려고 한다. 

    북한은 남포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했는데 그 완전한 날조를 아버지 유골로 증명하려고 한다.
    DNA조사도 신청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 언론들이 섭섭하다.
    어떻게 북한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 할 수 있나?
    북한이 그렇게 진실한 정권이나?
    왜 북한 편에서 나에게 의혹을 던지나? 
  • ▲ 박진식(박연미 아버지) 씨의 영정사진과 가족사진
    북한은 내가 영어를 좀 한다고 해서 미국 CIA에서 만들어 조종하는 로봇인형이라고 했는데 나는 지금도 북한 혜산의 소녀이다.
    북한 주장대로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는 그런 무릉도원이라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이렇게 잔인한 수법으로 나의 가족들에게까지 뼈아픈 고통을 준단 말이가.
    펭귄과 책을 쓰고 있는 동안 정말 별의 별 협박을 다 받아왔다.
    솔직히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책은 출판 될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 그 곳에서 벌어지는 북한정권의 만행을 고발할 것이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