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만남, [특별법], [진상조사위] 유족 참여시켜달라는 말에.."오죽했으면"
  •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주된 요구사항은 단 한가지였다.

    희생자의 [명예]를 말하는 유족도 있었지만, 핵심 내용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고 사고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에 유족들을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한 유족은 이를 두고 대통령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실상 유족들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수사하고 재판하는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겠다는 말이다.

    한 남성 유가족은 "특별법의 초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만든 그 특별법을 지지해 줄 수 있느냐"고 했고, 또 다른 유족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유족들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 ▲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을 나누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뉴데일리
    ▲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면담을 나누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뉴데일리


    유족들이 이런 과도한 요구를 하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할 만 했다.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미흡했던 초동 대응. 서로 책임 미루기만 바빴고, 인사권을 가진 상사가 시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들. 그리고 그 상사도 지휘본부의 눈치를 보며 몸사리기 바빴다.

    참혹한 현장에서 공직사회의 무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유족들에게 더 이상 정부에 대한 신뢰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한 여성 유족의 말이다.

    "해경에 대한 조사가 계속 이루어져야 되는데 현재 합동수사본부에는 해경도 수사의 주체로 지금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수사본부에 해경이 들어가 있는데 해경을 조사한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을 할 수 없는 상황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될 것인가. 자기 식구들을 자기가 수사해서 자기가 벌을 주는 것을 결정해야 되는데 과연 이게 정이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걸 해낼 수 있을 것이냐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남성 유족의 말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가족이 수사 주체로 참여하겠다."

    "저희들이 전문지식이 없는데 수사권을 주는 것이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사되는 내용을 상시적으로 저희들이 볼 수 있고, 항상 열람할 수 있고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중요한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이 되고.."


  • ▲ 한 여성 유가족을 안내하는 박 대통령. ⓒ 뉴데일리
    ▲ 한 여성 유가족을 안내하는 박 대통령. ⓒ 뉴데일리

    안타깝지만, 유족들의 이런 요구는 대통령도 들어줄 수 없다.

    정부조직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해 취임 후 몇달동안 정부 출범도 하지 못한 대통령이다.

    법 제정이라는 헌법기관의 권한을 줄 수 있는 건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만 줄 수 있는 초월적 권한이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에게 사법권을 줄 수도 없다.
    살인사건 유가족에게 살인범을 심판하는 꼴이며, 자칫 [인민재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도 유족들의 이런 요구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들어줄 수는 없는 요구였다.

    "수사권까지 민간이 받아 가지고 했으면 하는,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느냐,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유족 여러분하고 철저하게 모든 것을 공유해서 그 뜻이 반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

    "지켜봐 주시고, 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되지 않겠느냐, 혹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지만 그런 게 있으면 또 의견을 주시면 보완을 해 가면서 하겠다."

    "민간에다가 수사권을 줘서 하는 것은 그게 효율적이겠느냐 하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


  • ▲ 한 여성 유가족을 안내하는 박 대통령. ⓒ 뉴데일리

    접점을 찾지 못한 1시간 20분간의 대화였지만, 뭔가 빠진 부분이 하나 있었다.

    참사의 직접적 원인인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 그리고 청해진 해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한 유족은 하나도 없었다.

    살인자에 대한 처벌은 한마디도 없이 살인을 막지 못한 정부를 처벌해 달라는 말만 계속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를 살인죄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무책임과 무능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 유족의 말이다.

    "선장이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도 그걸 모르고 있는 거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책임지지 않는 부정부패 위에 이 대한민국의 이 현실을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가지 않으면 절대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꿈과 미래와 희망을 빼앗아간 거나 진배없는데 이번 기회에 양심 회복을 통해서, 인간성 회복을 통해서 가장 뿌리 있는 근간에서부터 우리가 이것을 캐내는 작업을 매듭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지만, 이 여성 유족이 말하는 인간성과 양심회복은 대통령이 아니라 초월적 권한을 가진 어떤 지도자가 와도 이뤄낼 수 없는 꿈이다.

    또 다른 남성 유족의 말이다.

    "9.11테러 이후에 미국이 1년 동안이나 정말 모든 전문가들이 다 참여를 해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대책을 만들고 그 결과 이 나라가 더 신뢰감 있는 그런 국가 정부로 우뚝 서는 것을 목격을 하면서 우리도 그걸 한 번 해 보고 싶은 겁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 분노를 쏟아냈고, 결국 테러조직을 소탕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벌써부터 한 시민단체가 특별법 제정에 민간도 참여해야 한다며 [안산시민대책위원회]란 이름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는 매일 같이 세월호 참사를 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