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 무너진 아스날
  • '역습의 진수를 보여준 다이나믹 첼시'

    한국시각 22일 밤 9시 45분, 첼시와 아스날의 2013-1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가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렸다.

    경기 전부터 아르센 벵거(아스날)의 "무리뉴는 실패를 두려워 한다" 는 발언으로 장외전쟁의 포문을 열었던 양팀은 무리뉴가 "그는 8년간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실패 전문가" 라고 반격하며 더욱 관심을 모았다. 이는 2005년 무리뉴 감독이 벵거 감독에게 "관음증 환자같다" 는 직접적인 발언을 한 지 약 9년 만에 일어난 일이기에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2004-05 시즌부터 로만 아브라히모비치 체제 출범 후 안정세에 접어든 첼시가 맨유-아스날 양강구도를 깨면서 무리뉴와 벵거의 불편한 관계는 시작됐다. 그 해 아스날은 승점 95점을 기록한 첼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고, 무리뉴가 잠시 프리미어리그를 떠났을 때도 맨유와 첼시, 맨시티에 밀려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또한 벵거 감독은 부임 후 무리뉴 감독을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기에, 이번 경기는 벵거 스스로에게도 매우 절박한 경기였다.

    양팀 모두 리그 최상위권에 포진한 위엄과는 달리, 최상의 선발진을 꾸리지는 못했다. 첼시는 윌리안과 하미레즈가 경고 징계로 제외됐고, 에슐리 콜도 지난 6일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아스날은 이 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팀의 핵심인 외질과 램지, 윌셔, 월콧이 모두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

    갈라타사라이에 기분 좋은 완승을 거둔 첼시와 북런던 더비를 힘겹게 이긴 아스날은 최근 팀 분위기와 부상 선수의 여파가 말해주듯이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연속 실점을 하며 0-2로 끌려갔다.

    아스날의 지루는 울었고 에투는 잠깐이었지만 환하게 웃었다. 단 1분 만에 양팀 스트라이커의 명암이 갈렸기 때문이다. 전반 4분 로시츠키의 스루 패스를 받은 올리비에 지루의 왼발 슈팅은 체흐의 선방에 막혔다. 반면 쉬얼레의 패스를 받은 사무엘 에투는 페널티 박스 밖 우측면에서 옥실레이드 챔벌레인을 페인팅으로 속인 뒤 왼발 감아차기로 아스날의 골망을 흔들었다. 무리뉴가 에투와 쉬얼레를 적극적으로 원했던 이유가 여실히 나오는 순간이었다.

    추가골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이 필요했다. 첼시의 안드레 쉬얼레는 에투가 골을 기록했던 위치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재차 흔들었다. 마티치의 중앙 압박은 아스날의 패스 미스로 이어졌고, 첼시는 단 한 번의 역습을 그대로 골로 만들어냈다. 1000 번째 경기를 맞이한 벵거에게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고, 벵거는 마신 물통을 앞으로 던지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반 15분 만에 첼시는 전화위복을 경험했고, 아스날은 설상가상의 난국에 처했다. 좋은 모습을 보였던 에투가 전반 9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토레스가 교체 투입된 것. 하지만 벤치에서 투입된 토레스의 컨디션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진 불과 6분이 걸렸다.

    토레스는 페널티 에어리어 내까지 돌파한 후 아자르에게 볼을 연결하며 바로 팀에 녹아들었다. 토레스의 패스를 받은 아자르는 그대로 슈팅을 날렸고, 볼이 골대를 향해 날아가던 시점에서 챔벌레인이 왼손을 뻗으며 페널티킥으로 이어졌다. 비록 주심은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아자르가 적극적으로 항의를 했고, 다시보기 화면에서도 볼은 챔벌레인의 뻗은 손으로 인해 굴절되며 코너 아웃됐다.

    결국 페널티킥을 얻은 첼시는 아자르가 키커로 나섰고, 아자르의 슈팅은 가운데 골망을 흔들었다. 3-0 스코어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7분이었다. 페널티킥 판정이 나기 직전, 아스날로선 다소 황당한 카드를 받았다. 카드를 꺼내는 것은 정당했지만 카드를 받은 선수가 잘못됐기 때문이었다. 고의적으로 손을 뻗은 것은 챔벌레인이었음에도 퇴장을 받은 것은 키에런 깁스였다. 다시보기 장면에서 키에런 깁스가 주심을 향해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은 없었고(격렬히 항의해도 카드는 경고의 수위를 넘지 않는다), 수비 과정에서도 키에런 깁스가 연루된 것은 전혀 없었기에, 이는 마리너 주심의 오판이었다. 물론 챔벌레인과 깁스의 외모가 다소 비슷한 면은 있지만 양 선수가 판정에 대해 강력히 어필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의아했다.

    선수 한 명이 부족했던 아스날은 로시츠키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첼시의 미드필더진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첼시는 다비드 루이즈와 쉬얼레가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며 첼시를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41분 아스날은 첼시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페널티 우측 박스를 돌파했던 토레스는 욕심부리지 않고 중앙을 파고든 오스카에게 크로스를 내줬고, 이는 그대로 골로 이어졌다.

    후반 시작과 함께 아스날은 체임벌린과 코시엘니를 각각 플라미니와 젠킨슨으로 교체하며 수비진 강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미 4-0 으로 기운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첼시는 더욱 강하게 아스날을 밀어부쳤다. 후반 2분 만에 다비드 루이즈가 페널티 박스 내에서 강한 슈팅을 날린 첼시는 21분에 기여코 추가골을 넣었다. 페널티 박스 부근 로시츠키가 아르테타를 보고 패스를 내줬지만 이를 오스카가 가로챘고, 오스카는 오른발 슈팅으로 5-0으로 달아났다.

    추가골을 기록한 오스카는 바로 모하메드 살라와 교채됐고, 모하메드 살라도 후반 25분 골키퍼와 1:1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며 경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살라의 골도 정확했지만 마티치의 로빙 스루 패스는 일품이었다.

    추가 시간이 주어진 지 2분 만에 무리뉴 감독은 라커룸으로 들어가며 승리를 자축했고, 아브라히모비치 구단주 또한 기립박수하며 팀의 완승을 즐겼다. 

    세밀한 패스 축구를 구사하는 아스날은 퇴장이후 급격히 무너졌지만 이를 야기한 수비진과 공격진 간의 간격 유지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반면 첼시는 다비드 루이즈에 마티치로 이어지는 강한 압박이 완승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아스날은 로시츠키와 바카리 사냐가 분전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첼시는 다비드 루이즈가 중앙 라인까지 올라오며 아스날을 저지하며 팀의 무실점 완승에 기여했다.

    경기 전까지는 첼시가 17승 6무 3패(승점 57), 그 뒤를 아스날이 17승 5무 4패(승점 56)의 구도였지만 이 날 첼시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승점은 4점 차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