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전 우리나라는 못 사는 나라였다.
    이때 우리나라가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목숨을 걸고 해외로 떠났던 숨은 영웅들이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50년 만에
    손주뻘 되는 대학생들의 손을 거쳐
    자서전으로 나왔다.

  • 대학생 등 20대 청년들이 모인 단체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은 지난 9월부터 작업한
    [청년들이 쓰는 대한민국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20일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었다.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 측은
    [산업화를 주도한 1세대와
    그 손주 뻘 되는 3세대의 소통과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신보라>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 대표의 말이다.

  • “오늘은 1세대와 3세대가
    하나의 공간에서 한 목소리를 내게 된,
    정말 뜻 깊은 날이다.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다.
    통합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대 간 통합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1세대와 3세대 사이에는 소통의 기회가 없었고,
    현대사에 대한 기억도 달라
    세대 간 갈등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래서 추진한 사업이 1․3세대 자서전 출간이다.

    이 사업을 하면서
    대한민국에는 숨은 영웅들이 참 많은 것 같다고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들은
    꽤 많은 공을 인정받은 데 반해
    산업화를 이룬 분들의 공로에 대해서는
    공로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저희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참전용사들,
    이 분들의 땀과 피로 산업화가 가능했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우리나라 1세대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잊히고 교과서에도 제대로 기술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자서전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저희가 대학생 단체다보니 재정이 넉넉지 않아
    총리실 지원을 받았지만 많은 수를 출간하지는 못했다.

    저희가
    6명의 베트남 참전용사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들로부터
    [나는 요새 대학생들이 외계인인줄 알았다]는 말씀도 들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까워졌다.
    그런 3개월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6권의 자서전이다.
    지난 60~70년대 우리 어르신들께서
    독일과 월남에서 고생하셨던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다.”


    자서전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온
    <최홍재>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축사에서 [대통령께 이 행사의 뜻과 모습을 꼭 전하겠다]고 밝혔다. 

  • “제가 청와대에 들어간 게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직후였다. 

    저도 감개가 무량해서 누님께 전화를 했다.
    누님께서는 제 말에 울먹이시더라.

    저희 누님은 공장생활을 했다.
    제가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저희 누님께서 공장을 다니시면서 희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희 누님 같은 분들이 아니셨으면
    지금의 제가 영광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가 어릴 적,
    저희 집도 가난했지만, 당시에는 우리나라 모두가 가난했다.
    그때 동생들을 위해 여기 계신 많은 분들께서
    독일의 광산으로, 병원으로, 월남의 정글로 떠나셨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키운 건
    열사의 땅에서, 정글에서, 이역만리의 탄광에서
    노력하신 분들이다.

    이런 분을 잊는 건 싸가지 없는 것이다.
    싸가지 없는 사람이 잘 되어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게 우리의 의무다.

    지난 50년 동안 흘린 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 행사의 기쁨을 대통령께도 반드시 전해드리겠다.”


    이어 자서전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과
    50년 전 독일 탄광과 병원으로 갔던 근로자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줬다. 

  • “…독일로 와서
    한동안 아이와 남편 생각에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묵직한 편지를 받았다.
    그 속에는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문주란 씨의 노래가 들어있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차 속에서 나오던 노래라고 했다.
    남편의 글을 본 뒤
    나는 다시 테이프 재생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민간인인지 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다.
    당시 우리에게 내려진 1호 명령은
    [100명의 적 사살보다 1명의 양민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찔렀다.
    …피아식별이 되지 않는 정글에서 살기 위해서
    적을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나라가 우리를 기억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산업화를 성공시킨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공식적인 유공자이지만
    우리의 참전을 기념하는 날이나 행사는 아직 없다….”

  • 영상을 트는 동안
    참석한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과거가 떠올라서인지
    눈물을 보였다.

    짤막한 영상 소개 뒤에는
    이날 출간한 6권의 자서전 주인공 소개와
    그들의 소감 발표가 있었다.

    자서전 주인공은
    독일 파견 간호사 및 간호보조원이었던
    <김병연>,
    <윤기복>,
    <윤상순>씨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김영균>,
    <장의성>,
    <신호철>씨.

    이들은 모두
    50년 전 이 나라가 잘 살게 되기를 바라며
    떠났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라인 강가에서>라는 자서전을 펴낸
    <김병연> 씨의 이야기다.

  • “예전에 독일에 처음 갔을 때
    기숙사가 라인강 옆에 있었다.

    그때
    [이게 라인강의 기적이구나. 우리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상상했는데, 제 상상력이 부족했는지
    지금 보라, 얼마나 발전했는가.
    제 독일생활이
    우리나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우리나라는 더 발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우리 조국의 미래를 밝게 본다.”


    <영원한 청춘, 끝없는 도전>을 펴낸
    <윤기복> 씨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의 눈치 보기, 사치 풍조를 고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 “제가 일을 마치고 독일에서 돌아왔을 때
    저희 이모님께서
    [선진국 독일에서 온
    너희 행색이 왜 그리 초라하냐]고 물으시더라.
    그때 느낀 게 있다.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보고,
    너무 낭비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제가 독일에서 배워온 것은 근검절약이었다.”


    <끊임없는 노력의 이름으로>를 펴낸
    <윤상순> 씨는
    [우리가 분수에 맞춰 살면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근검절약]을 당부했다.

  • “독일 사람들은 겉으로 볼 때
    화려하거나 호화찬란하게 살지 않는다.

    그런데 10여 년 독일생활을 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보니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겉으로 보면 너무도 잘 사는 것 같다.

    남의 시선 때문에 겉은 화려하게 꾸몄는데
    속은 부실한 경우도 있다.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
    우리가 실속을 갖고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면
    앞으로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들은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충용정책을 가슴에 안고>를 펴낸
    <김영균> 씨의 이야기다.

  • “학생들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했다.
    저는 숨은 영웅이 아니라고.
    25년의 군 생활을 시작할 때
    부사관 학교에서 배운 충용정책을 따르느라
    노력만 했을 뿐이다.
    진짜 숨은 영웅들은 우리 전우들 한 분 한 분이다.

    베트남에서 수색 작전 도중
    5발의 AK소총탄을 맞고도
    살아나 귀국한 우리 전우도 여기 왔다.
    한 분대장은 전투에서 자기 대원 4명을 잃은 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일주일에 2번씩 전우의 무덤을 찾는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의 숨은 영웅들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해방 이후 격동기를 겪을 때
    먹거리조차 해결하지 못했었다. 

    우리나라가 2개 사단을 베트남전에 보내려 했을 당시
    북한군이 우리보다 훨씬 우세했다.

    그럼에도 국군 현대화, 산업화가 시급하다고 판단,
    그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들을 정글로 보냈다.

    그 돈이 모여 포항제철이 되고, 고속도로가 되고
    산업화의 시작을 이끌어낸 것이다.

    현대건설, 한진그룹 등이
    베트남에서 기술을 배워와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학생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여러분도 50~60년 뒤에
    자서전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숨은 영웅들을 많이 찾아 달라.” 


    <대한민국 윤리는 어디에>를 펴낸
    <장의성> 씨는
    대학생들과의 만남으로
    [젊은 세대는 이럴 것]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던진 것을 가장 기뻐했다.

  • “제가 자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대학생들과 대화가 안 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언론 등을 보면서 쌓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학생들과 직접 만나 보니
    제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느끼고
    그 벽을 허물게 됐다.

    제 인생을 시시콜콜 다 물어 이야기로 엮어준
    젊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30여 명의 대학생들은
    50년 전의 [숨은 영웅들]을 만나며,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단순한 역사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 “인터뷰를 하면서 그분들께 들은 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삶, 가족, 베트남 전쟁 이야기,
    그리고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살았던 삶이었다.”
    이은희, 한국외대4


    “근현대사 속으로 떠난 두 달 간의 여행은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겨있었다.

    그 분들의 이야기에는
    단순히 과거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가야할 미래가 담겨있었다.

    인생의 스승을 만나 삶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안상우 건국대 국제무역학과4


    “선생님의 당당한 직업의식,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매진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쿨한 어르신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여이레, 경희대


    대한민국 1세대와 3세대 간의 교감에는
    2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 보는 성과는 꽤 커 보였다.

  • 자서전의 주인공인 1세대와
    집필을 대신 한 3세대들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합창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헤어졌다.

  •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의
    [1․3세대 자서전 출판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세대 간 갈등을 치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