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통역봉사 합격 50대

    알고보니 최수현 금감원장

    3대 1 경쟁률 뚫어…"한국의 정(情) 문화 알리고파"



      24시간 전화통역 봉사단체 'BBB코리아'는 지난 4월 올 상반기 언어봉사자 모집 공고를 냈다.

    431명을 뽑는 데 몰려든 인원은 1,300여명. 외국 생활을 오래한 대학생에서부터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수두룩했지만 고난도 언어테스트를 이겨내지 못하고 대거 탈락했다.

    이 험난한 단계를 묵묵히 통과해 나가는 지원자 중 5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 유독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지원서 이름란에는 '최수현', 직업란에는 '금융감독원장'이라 쓰여 있었다.

    올해 58세인 최 금감원장은 지원 동기란에 "한국 특유의 정(情)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적었다.

    최 원장은 지난 4월말 3차 언어테스트인 '지원자-외국인-한국인 간 3자 통화' 관문도 가볍게 통과,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 취임한 최 원장은 눈코 뜰 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합격을 통보받은 날부터는 언제 통역 요청이 올지 몰라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고 했다.

    그가 통역 봉사를 마음먹은 건 2010년 외국 출장길에서였다.

    딸이 3년 전부터 BBB코리아 봉사자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망설이던 참에 인천공항 대기실에서 우연히 통역봉사자를 모집한다는 팸플릿을 보게 된 것.

    최 원장은 BBB코리아와의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의 정 문화와 통역 자원봉사가 결합한다면 외국인에게 도움을 주고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 지원했다"며 "물질이 아닌 언어 재능을 기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당시 재정경제부에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현 세계은행)으로 3년간 파견 근무하면서 습득한 영어실력이 전부라고 했다.

    최 원장은 "중·고·대학에서 그토록 영어를 배웠지만 막상 입이 안 떨어지는 게 영어고 외국어더라"며 "업무를 위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기초부터 배울 수밖에 없었다"며 객지에서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덧 경제관료들 가운데서도 수준급 영어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갖춘 최 원장이지만 막상 BBB코리아의 언어테스트는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전화상으로 빠르면서도 정확한 통역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요령을 조언해 준 딸 덕택에 합격했다"며 공을 딸에게 돌렸다.

    최 원장은 조직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고 24일 전했다. 현재 금감원 직원들이 현충원에서 묘비와 주변 시설물을 청소하는 활동이 그 일환이다.

    최 원장은 "취임 직후 국민검사청구제도를 도입한 것도 금융 소비자인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금감원의 노력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