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김씨일가 3대째 미신정치를 하다

    최다미 기자 /뉴포커스

    북한 권력 내부사정에 밝은 뉴포커스 통신원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씨 3대 세습정권의 새로운 비밀을 알려왔다.

    김일성, 김정일은 북한의 유명 점쟁이들을 현지시찰 때마다 데리고 다닐 정도로 평생 미신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씨 일가는 숫자 '9'에 자신들의 운명은 물론, 국가정책 결정도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3남 중 막내인 20대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심한 것도 그의 길운,
    즉 생일인 1월 8일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  그에 대해 통신원은 "우선 9는 숫자 0부터 10 사이에 가장 많은 숫자의 표기다. 그래서 한자의 의미로 봤을 때도 갖출 구(具)는 아홉 개의 획으로 돼 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숫자 3을 행운의 숫자로 여겼다. 이 3을 세 번 더하면 '9'가 되는 숫자이기도 하다.

    김일성이 '9'의 '구'발음을 특별히 좋아한 이유는 금테두를 구(釦)에 자기의 성 씨인 김(金)이 들어가 있어서라는 것이다. 해방 후 조선8도를 대표했던 8대 무당들 중 '맹호출림'의 평안도 무당 기운이 가장 셌는데 그는 김일성의 길운은 숫자 9와 융통한다고 늘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일성은 공화국 창건일을 9월 9일, 원래 5도였던 북한 행정구역도 9도로 만들었다. 그 뿐이 아니다. 자기의 경호부대인 호위사령부 부대명칭도 '963군부대'라고 했는데 앞자리의 '9'와 뒤의 숫자(6+3)도 '9'가 되어 겹 '9'를 이룬다. 실제 '963군부대'는 김일성, 김정일 경호부대들인 1호 호위총국과, 2호 호위총국, 이렇게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김씨일가에게만 진상되는 식품들에도 숫자 '9'를 적용했다.
    북한 전역에는 중앙당재정경리부가 지정한 '9호농장', '9호작업반'들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각종 특산물들은 김씨 일가에게 공급되는데 이것을 바로 북한에선 '9호제품'이라고 한다.

     김정일 또한 아버지로부터 김씨일가의 '대통운'인 숫자 '9'의 미련을 계승하려고 했다.
    우선 김정일은 자기의 생일인 2월 16일 (2+1+6=9)부터가 숫자 9와 연관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김정일은 자신의 차량 앞번호를 '2.16'으로 했고, 이후 경호 위장술 차원에서 그 번호를 북한 최고위직들의 다른 차량에도 달도록 했다.

    군 최고사령관 추대도 12월 24일,(1+2+2+4=9)로, 심지어 김정일은 자기의 절대권력을 공식화하는 당총비서 추대도 김일성 사후 1994년 7월 8일 이후 3년 3개월을 더해 1997년 10월 8일(1+8=9)로 맞추었다는 것이다. 

     통신원의 제보를 근거로 기자가 북한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추적해보니 거기에도 숫자 '9'의 비밀이 얽혀있었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세습의 첫 공개직함인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2010년 9월 27일에 주었는데 이는 앞의 9와 뒤의 (2+7)를 합쳐 겹 '9'가 된다.
    2012년 4월 11일(1+2+4+1+1=9) 에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다음날인 2012년 4월 12일(2000년을 뜻하는 2+4+1+2=9)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7월 18일에는 (2000년을 뜻하는 2+7=9 1+8=9) 겹 '9'를 맞춰 공화국 원수로 추대했다.

     북한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장거리로켓이나 핵실험 공갈을 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예상날짜를 김일성, 김정일 생일, 혹은 북한의 기념일을 전후로 계산해서 점쳤었다.

  • ▲ 北김정일화 축전에 전시된 '은하3호'와 '은하9호'
    ▲ 北김정일화 축전에 전시된 '은하3호'와 '은하9호'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국가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정책들도 숫자 9에 맞추었다.
    장거리로켓 2호 발사실험도 2009년 4월5일(4+5=9)로 겹 (9)를 맞추었고,
    장거리로켓 3호 발사 실험은 2012년 12월 12일 (1+2+1+2+1+2=9)로 똑같은 숫자 1,2를 합쳐 9를 만들었다.

    또한 올해 3차 핵실험도 2013년 2월 12일 (1+3+2+1+2=9)에 감행했다.
    얼마 전 북한이 미국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려 논란이 됐었는데 그 동영상에 등장하는 장거리로켓도 '은하9호'라고 했다. 

     이렇듯 김씨일가의 3대 세습은 숫자 9의 세습이었다.

    주민들에게는 미신행위를 엄격히 통제하고 개인우상화를 정치적 중범죄로 다스리는 북한 정권이다. 더구나 유물론주의 주체철학을 국가이념으로 규정하고 오직 수령만 믿고 살도록 온갖 세뇌와 통제를 하던 북한 정권이다. 그런데 정작 김씨일가는 북한의 유명 점쟁이들을 옆에 두고 자기들의 안위와 번영만 축원하는 숫자 '9'에 의존하고 살았다.

    나라와 인민의 운명은 아랑곳없이 자기들의 길운만 기원했던 김씨일가의 주체이념은 숫자 '9'였던 셈이다.
    [국내최초 탈북자 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