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려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 장군의 순국 103주기 추모식을 연다고 밝혔다.

    추모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남산공원에 있는 (사)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안중근 의사 숭모회(이사장 안응모) 주관으로 열린다.

  • 안중근 장군(1879 ~ 1910)은 황해도 신천 사람이다.

    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는 삼흥(三興)학교, 돈의(敦義)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광무황제 폐위, 군대 해산 등으로 나라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 회령에서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연추(煙秋) 등을 왕래하며 동지들을 규합하고, 1909년 봄에는 김기열(金基烈), 백낙길(白樂吉), 박근식(朴根植) 등과 함께 ‘단지(斷指)동맹’을 결성했다.

    1909년 9월 일제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10월 26일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역에서 일찍부터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렸다.

    안 장군은 9시 30분 무렵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안 장군은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러시아말로 “코레아우라(대한만세)”를 연호하였다.

    안 장군은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의 일제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안 장군이 재판 중 설파한 우리나라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에 일본인들마저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안 장군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안 장군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