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어 가는 安의 5년 청사진, 정몽준보다 똑똑하고 박태준의 실패도 알고!
  • 안철수가 그리는 5년 뒤의 청사진이 이제는 거의 완성돼 가고 있다.

    청사진이 아니라 고화질 컬러 사진으로 인화되기 위해선 아직 여러 단계를 거치고 위기를 넘겨야겠지만, 기초 설계도는 이제 대충 나왔다.

    안철수, 그의 정치 청사진 파일 노트에는 YS 이후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 정치인들의 오답·정답이 모두 집대성돼 있는 듯하다.

    꿈을 이룬 DJ·노무현의 환희는 물론 실패한 JP나 이회창 그리고 박태준의 눈물도 들어있다.
    사이사이 박근혜의 절박함과 애절함도 묻어나고, 손학규나 정동영의 비참함과 굴욕도 눈에 띈다.

    위인전 표현 같긴 하지만, 어찌됐건 반세기 정치 역사에서 민주당을 이토록 속속들이 파헤치고 뒤흔든 인물은 그동안 없었다.

    박근혜가 ‘지 잘난 맛에 살던’ 여러 갈래 보수들을 우여곡절 끝에 20여년 만에 하나로 묶어내어 대한민국 공화 가치 우산 아래  한 목소리를 내뿜게 했다면, 덕분에 안철수는 이른바 '진보'라는 우산 아래 짬뽕처럼 혼재되어 있던 여러가지 세력 가운데 핵심 코어(core)로 존재하던 ‘종북’을 세상에 드러냈다.

    온건 개혁 리버럴, 즉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공화가치를 인정하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꿈꿀 수 있게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첫 번째 발자국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에 의해 일어난 종친북 성향으로 기울어진 민주당 붕괴의 면면들이다.

  • ▲ 6일 적극 지원 표명을 한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의 얼싸안은 뒷모습 ⓒ 민주당 제공
    ▲ 6일 적극 지원 표명을 한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의 얼싸안은 뒷모습 ⓒ 민주당 제공

     

    판세는 박빙. 이제는 이기든 지든 모두 문재인의 책임이다.


    ➀ 11월 23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던 날. 안철수는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이었다.

    잘하면 청와대도 노려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목표를 수정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스쳐갔다.
    지난 해 박원순에게 넘겨준 서울시장 자리도, 4월 총선에서 꾹 참아낸 금배지도 아까울 법 했겠다.

    하지만 목표를 수정했다.
    5년 뒤로!

    어쩌면 애초에 정한 원래 목표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쿨(cool)했다.

    안철수! 그는 12월 19일을 미리 봤다.

  • ▲ 지난달 23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 연합뉴스
    ▲ 지난달 23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안철수 ⓒ 연합뉴스

    스스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단일화 과정에서 느낀 민주당의 치사함과 압도적인 조직력은 안철수를 심각하게 매질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로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도 조직력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봐온 대한민국 정치와 국민성은 5년 후에는 야권의 우세가 더 강할 것 같았고, 그 분위기는 자신에게 기회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철수는 2002년의 정몽준보다 똑똑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➁ 12월 3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뒤 자신이 운전하며 대한민국을 여행한지 열흘만에 공평동 자신의 캠프를 찾았다.

    평온한 모습.
    결심이 굳은 사람에게만 흘러나오는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박원순의 품에 안길 때도, 올해 9월1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도. 그리고 지난달 23일 사퇴 기자회견을 할 때도 볼 수 없는 모습.

    그는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더욱 안철수에게서 이런 표정을 본 적은 없었다.

    그는 결심을 굳혔다!

    열흘전 느꼈던 ‘조직을 가져야겠다’는 판단을 실천하러 돌아왔다.

    조직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신당 창당과 민주당 흡수!

    전자든 후자든 조건이 필요하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왜냐하면 그는 박태준을 알고 있기 때문!

    안철수의 옆에는 조용경이 있었다.
    박태준의 최측근 비서!
    안철수가 포스코 사외이사 할 때부터 깊숙한 인간관계를 맺어 온 사람.

    박태준은 자민련 총재로 JP와 함께 DJ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박태준이 받은 것은 국무총리 4개월 임기, 그리고 DJ 동교동계의 뒤통수치기에 엎어치기 당한 쓸쓸한 말년뿐.

  • ▲ 지난 3일 대선 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안철수 ⓒ 연합뉴스
    ▲ 지난 3일 대선 캠프 해단식에 참석한 안철수 ⓒ 연합뉴스

    그래서 기자회견에서 다소 욕심을 냈다.

    10여분간의 짤막한 기자 회견 중 안철수는 ‘새 정치’는 5번을 언급했고, ‘문재인’은 단 한 번만 언급했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싸움에서 빠지겠다는 것. 중립선언이었다.

    민주당에게는 지지에 대한 감사를 전할 ‘명분’을 주고, 새누리당에게는 민주당이 아전인수를 하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나름대로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안철수를 그냥 놔두지 않았고, 그도 이미 이를 모르지 않고 있었다.


    ➂ 12월 6일

    역시 폐족이란 쓸개를 삼키고 삼키면서 와신상담 끌에 다시 일어선 노무현의 후예들은 과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차별 공세를 퍼부었다.
    언론플레이를 동원하고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며 안철수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마땅한 언론창구도 없어진 안철수를 거듭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실 ‘이랬다저랬다’한 쪽은 따로 있었건만, 가만히 있던 안철수가 그 똥물을 다 뒤집어 쓰게 될 기세였다.

    선전선동에 취약한 떼거리 여론은 전후사정을 살피지 않는다.
    그저 불쌍한 사람과 냉정한 사람을 나눌 뿐이다.

    무턱대고 집까지 찾아갔던 자칭 '큰 형님'이 추위에 벌벌 떨다 발길을 돌리는 장면은 정말 압권!
    '큰 형님'의 친구 겸 '주군' 노무현이 10년 전 써먹었던 방법.
    하지만, 이 감성팔이는 여전히 유효했다.

    게다가 노무현보다 시간도 넉넉했다.
    한 번만 더 찾아도 ‘삼고초려’라는 감성팔이의 ‘끝판 단어’가 완성될 지경!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이대로 두고 봤다가는대한민국 건국 이래 항상 30%를 차지하는 좌파 지지성향 유권자의 비난 화살이 자신에게로 조준점이 옮겨질 상황.
    동시에 안철수의 효용성과 가치는 땅바닥으로 추락한다.

    이기든 지든 책임은 고스란히 그가 져야 할 판!

    '큰형님' 쪽이야 얼마든지 '희생양'을 만들 수 있는 입장이지만, 안철수 자체야말로 바로 그 '희생양' 후보 1순위가 아닌가?
    그쪽은 120석이 넘는 금배지를 거느린 곳이니까.


    그러니 호랑이를 잡으려면, 역시 그 굴로 들어가야지.

  • ▲ 6일 적극 지원을 선언한 안철수를 껴안은 문재인 후보 ⓒ 연합뉴스
    ▲ 6일 적극 지원을 선언한 안철수를 껴안은 문재인 후보 ⓒ 연합뉴스

    결국 안철수는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절묘한 타이밍인 것은 물론 치열한 머리싸움의 결과.

    이제 판세는 박빙으로, 무게 추를 원점으로 돌렸다.

    동생 안철수는 할 만큼 했다!
    이제부터는 모두 '큰형님" 책임!


    ➃ 그리고 12월 19일까지

    안철수의 머릿속에는 박태준의 실패도 있지만, 박근혜의 성공담도 새겨져 있다.

    2007년.
    대통령 후보에서 탈락했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대선가도에서 가장 핫(hot)한 인물이었다.
    이회창이 대문 앞을 여러번 찾아왔다.
    하지만 침묵을 지켰고, MB의 BBK에도 이런 돌출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차기 대권 0순위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안철수도 그럴 것이다.

    5년 뒤 투표 날까지 계속 뜨거운 감자로 남으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 정상윤 기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 정상윤 기자

    그리고 그렇게 생긴 야권 차기 후보로서의 대세론은 반세기 역사의 정당을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겨줄 것이다. 이게 그의 정치공학 셈법!

    문재인이 대선에서 패한다는 전제 아래 치밀하게 계산된 안철수의 '정치수학 3차 방정식'의 결론이 정답일지 오답일까?
    지금으로선 헤아리기가 매우 힘들다.

    다만 백면서생처럼 느껴져서, 순수-순진해 보여서, 그래서 국민적 인기 기반을 닦은 안철수의 정치 행위가, 바로 그가 구태라고 비판하는 구닥다리 정치행태와 너무나 유사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뒷맛이 매우 씁슬하다는 것 하나만은 정답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