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불출석' '재판 연기신청' 밥 먹듯..대체 왜 이러나?
  •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람과, "억울하다"고 반론을 제기한 양측이 재판에 불성실한 자세로 임하면서 공공기관인 법원의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가수 비(본명 정지훈)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의류사업가 이 모씨를 고소,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단독에서 진행 중인 형사재판이 6개월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판에 꼭 필요한 증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피고인 측에서 일방적으로 공판기일을 연기했기 때문.

    지난 7월 31일 열린 재판에서 형사2단독 박순관 판사는 비를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에 법원은 비가 다음 공판 예정일인 9월 11일에 참석할 수 있도록 군부대에 증인 소환장을 발송했다.

    그러나 9월 11일, 비는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재판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증인이 별도의 사유 없이 법정에 나서지 않을 경우 500만원의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비는 이를 알고도 재판에 무단 불참한 것일까?

    당시 재판부와 검찰의 해명을 들어보면, 놀랍게도 당사자에게 건네져야 할 '증인 소환장'이 비의 법률대리인에게 전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증인으로 채택된 비가 '소환장'을 구경도 못해봤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번 재판에서 굳이 증인을 부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비가 다음 기일까지 출석하지 않으면 증인신청을 철회할 생각"이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놨다. 오히려 "피고인 이씨 측에서 필요하면 별도로 비의 주소를 알아내 증인 신청을 하라"는 말까지 건넸다.

    이에 이씨 측 변호인은 "군 복무 중인 비의 소재를 충분히 알 수 있는 검찰이 소환장을 대리인에게 준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지적했으나, 이미 증인 출석이 불발된 마당에 이같은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증인이 공판 심문에 불응함에 따라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비를 증인으로 재소환키로 하고 공판기일을 10월 16일로 연기했다.

    하지만 다음달에도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피고인 이씨 측에서 개인적 사유를 들어 '기일변경 신청'을 했기 때문.

    당초 10월 16일을 공판 기일로 잡았던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달 후인 12월 6일로 재판을 연기했다.

    자연히 비의 법정 출석도 뒤로 미뤄졌다.

    그러나 재판이 열리기 며칠 전, 비는 "현재 군 복무 중인 상황 때문에 출석이 힘들다"며 '증인불출석신고서'를 대리 제출한 상태였다. 따라서 재판이 정상적으로 열린다 하더라도 비는 출석하지 않을 요량이었다.

    세간의 이목은 자연히 다음 재판으로 향했다. 12월 6일에는 비가 '증언대'에 설 수 있을까? 이번에는 재판이 정상적으로 열리는 걸까?

    많은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취재진은 12월 6일 오후, 비의 재판이 예고된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재판이 또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번에도 피고인 측의 요청으로 재판기일이 변경됐다는 것. 요청 사유도 이전과 동일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부득불 재판에 나올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와 관련, 증인 출석이 예정됐던 비의 입장을 듣기 위해 '국방부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에도 수차례 문의 전화를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법원에 따르면 3번째 연기된 공판은 내년 1월 17일 오후 4시에 속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부터 딜레이 된 재판이 해를 넘겨 봄에 재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법정에선 흔히들 있는 일이라곤 하지만, 유명 대중가수가 연루된 재판이 (석연찮은 이유로)거듭 연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누군가를 겨냥해 '법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면, 재판에 성실한 자세로 임함으로써 재판부에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며 "어차피 사람이 내리는 판결이니만큼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는데, 혹여나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경우 정작 '원하는 답'을 찾기가 어려워 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 3자가 보기에는 공인이 공권력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고, 재판부가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며 "다음 재판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 ■ '비 횡령루머' 사건이란?

    의류사업가 이모씨는 2010년 3월 31일, "비의 소속사 제이튠엔터테인먼트의 패션 브랜드 '식스투파이브'에 투자해 손해를 봤다"며 비와 회사 대표 등 9명을 고소했다.

    당시 이씨는 "가수 비가 제이튠크리에이티브 대표이사 등과 가장납입 등을 통해 회삿돈 46억원을 횡령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가장납입(假裝納入)은 유상증자시 실제 대금을 납입하지도 않고 납입한 것처럼 일부러 꾸미는 행위를 말한다. 이 경우 회사 자본금은 늘어났지만 실제로 들어온 돈은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누명을 쓴 비 측은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모델료 20억원 등 회사 공금 46억원이 사라졌고 15억원이 제이튠엔터테인먼트로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은 절대로 사실이 아니며 당시 '식스투파이브'의 광고모델 활동도 활발히 펼쳐왔다"면서 이 씨 측이 제기한 '먹튀' 논란을 불식시켰다.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찰 역시, 비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 조사결과, 비는 회사 자금을 유용한 사실이 없었고, 자금을 빼돌린 후 회사 문을 닫는 사기행각을 벌인 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12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은 비는, 곧장 이씨와 모 통신사 기자와 스포츠신문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검찰은 2011년 5월 31일 두명의 기자와 이씨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이씨의 제보를 받고 관련 기사를 쓴 기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비는 2011년 7월 13일 법원으로부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도합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