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기자회견서 발언 번복 '측근보좌' 구멍굵직한 法 전문가 당내 영입에도…잘못된 법 해석
  • "앓던 이를 빼려다가, 잇몸까지 다치고 말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수장학회 해법을 모색했지만 되레 역사인식 논란으로 역풍을 맞았다. 당내에서 조차 '법원 판결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참모진의 실책, 폐쇄적 리더십 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과거사 논란에 발목을 잡혀 지지율 추락을 맛 본 한 달 전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 정수장학회, 털고 가려다가…

    박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사실상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에게 퇴진을, 정수장학회 명칭에 대한 변경을 요구했다. 동시에 자신과 정수장학회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는 '논리적 모순'을 감안하면서까지 이 문제를 정리하고자 했다.

    당 안팎에서도 박 후보의 기자회견에 앞서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등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최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당 고문급 인사들도 최 이사장 측에 "박 후보를 위해서 물러나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견 다섯시간 만에 최 이사장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임기를 마치겠다"는 뜻을 밝혀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 ▲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최근 4.19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양호상 기자
    ▲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최근 4.19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양호상 기자

    무엇보다 논란은 기자회견 뒤 질의응답 과정에서 증폭됐다. 그는 '재산 헌납과정에서 강압성'에 관련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해서 법원에서는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후 박 후보는 "강압이 있었는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패소 판결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법원은) 강압에 의해 주식 증여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고 얘기를 하고 또 강박의 정도가 김씨 스스로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할 만큼, (그래서) 무효로 할 정도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결했다)"고 정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제기한 주식 반환 청구 소송 1심에서 "김씨가 정부의 강압에 의해 주식을 증여한 것은 인정되나, 당시 김씨가 의사결정의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증여를 했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국가도 과거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지만, 이미 김씨 유족이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시효(10년)가 지났다"고도 했다.

    ◈ 이재오 "과거사 사과 원점으로 돌아갔다"  

    박 후보의 이러한 '번복'은 법원의 판결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대법관 출신의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등 굵직한 법률전문가들을 곁에 두고도 실책을 범했다. 비(非) 법률전문가인 측근에 의한 '보좌'를 따르다보니 모호한 해석이 나왔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정치쇄신특위 이상돈 위원은 2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어떤 참모가 핵심 판결 내용을 잘못 알렸을까"라는 질문에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당에는 황우여 대표나 이주영 특보단장,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등 쟁쟁한 법률가 출신 당직자가 많은데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라고 했다.

  • ▲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22일
    ▲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22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해 공격으로 끝난다"고 비판했다. ⓒ 뉴데일리

    그는 또 "실망을 넘어 걱정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에 있었던 일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는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 것으로, 헌정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시기인데 그 시절 조치를 두고 정당하다고 하게 되면 끝없는 논쟁을 또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같은 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본인도 (강압이 없었다는 발언은 잘못됐다고) 수정했지만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을 그대로 존중해야 하지 않나 싶다. 참모들이 왜 그런 어드바이스(조언)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는 저도 약간 갸웃거려진다"고 지적했다.

    당내 대표적인 비박(非朴·비박근혜)계인 이재오 의원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5.16쿠데타와 유신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그때 강탈한 남의 재산은 합법이라고 한다면 자질을 의심받는다. 지금이라도 정수장학회는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고 적었다.

    "정수장학회는 법의 잣대가 아니라 국민 눈의 잣대로 봐야 한다. 쿠데타가 아니었으면 부일장학회를 강탈할 수 있었을까"라고 했다.

    한 초선 의원은 "박 후보가 앓던 이를 빼려다가 잇몸까지 상처를 입은 격이 됐다. 불과 한 달 만에 또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난 인식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말했다.

    ◈ 이정현 단장 "朴 잠시 착오 있던 것"

    이정현 공보단장은 "후보가 (사실관계를) 다 알고 있었지만 잠시 착오가 있던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패소했다는 법원의 판결을 강조하다보니 마치 법원이 '정부의 강압에 따른 증여'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비춰졌다는 뜻이다. "뒷 부분에 원고 패소 판결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야권의 정수장학회 쟁점에는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정말 이 분을 감싸고 비호해야 하는 입장인지, 그게 민주당의 정체성인지 묻고 싶다."

    이 단장은 과거 언론보도를 인용하며 "일제시대 때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회사에서 일하고 옥토 2만평을 지급 받은 뒤 전국 10대 재벌에 오른 자이다. 또 62년 군사정부에 의해 밀수, 재산 해외도피 등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구속됐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이 재벌해체까지 거론하며 재벌개혁을 외치면서 부정을 일삼은 인물을 두둔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뜻이다.

    박 후보도 정수장학회 논란을 빌미로 공세를 퍼붓고 있는 야당의 태도를 '흑색선전'으로 규정,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해 공격으로 끝난다"고 했다. "네거티브와 흑색선전만 하고 우리가 공들여 만든 정책과 공약은 제대로 설명할 기회를 못 가질 정도로 묻혀버리고 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