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68m에 사는 공군들 “삽질이 뭐죠?”

대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후보들마다 나름대로의 안보관을 내세운다. 이들의 정책이나 공약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군대는 힘들다”라는 것. 특히 좌파진영 후보 캠프에서는 ‘군 인권’을 내세워 모병제, 병력감축 등을 거론한다.

지난 7월 말 육군 8사단에서 확인한 군 생활은 ‘인권침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본 대로 말해줘도 여러 사람들이 “거짓말, 그럴 리 없다”고 반응했다.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육해공군의 격오지를 모두 가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경기 가평군 화악산에 있는 공군 8386부대였다.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화악산

경기 가평군에 있는 화악산은 해발 1,468m다.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과 경기도 가평군 북면 사이에 있다. 돌산인 탓에 이름에 ‘악(岳)’자가 붙었다. 산세도 무척 험준한 편이다.

이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다. 그것도 두 개 씩이나. 하나는 공군 8386부대, 다른 하나는 8979부대다.

지난 9월 25일 오후 가평군 북면에 있는 관사(창공회관)에서 안내를 받아 화악산 꼭대기로 향했다. 목적지는 8979부대. 로디우스 승합차로 1시간 가량 걸렸다. 도로는 지난해 포장을 마쳤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승차감은 오프로드 주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차에 실려 몸을 상하좌우로 흔든 지 1시간 10분 가량. 산꼭대기가 다다랐다. 공기가 달랐다. ‘지상’에서는 햇볕 때문에 더웠는데 꼭대기에서는 추웠다. 안내를 맡은 이대준 대위가 말했다.

“저희 부대는 여름에 근무하기 좋습니다. 지상과 온도차가 보통 4~5℃ 정도 납니다. 아무리 더워도 25℃를 잘 안 넘습니다. 모기도 없죠.”

8386부대는 1979년 10월 1일 생겼다. 그 전까지는 주한미군의 특수부대인 ‘이븐리치’ 캠프가 있었다. 현재 부대원 수는 110명. 이 중 간부와 병사의 비율은 4 : 6 가량이다.

사실 8386부대 인원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 부대 인원은 300여 명이었다. 하지만 군 현대화에 따라 부대가 증설돼 차출되는 인원들이 생기고, 장비는 신형을 도입하면서 인원이 점점 줄어 현재 상태가 됐다고 한다.

부대에 도착하자 8386부대장 김재훈 소령이 반겼다. 김 소령에게 부대 장병들이 어떤 부분을 힘들어 하느냐고 묻자 “가장 큰 애로는 자연환경”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군 생활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나를 살펴보기 위해 간 것이었지만 역시 자연환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제일 컸다.

“여기는 아무래도 고지대인데다 산꼭대기라 그런지 일교차가 무척 심합니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20℃ 정도 일교차가 보통입니다. 여름에는 큰 일교차가 이점이 되기도 합니다만 겨울에는 바람과 일교차 때문에 장병들이 무척 힘들어 합니다.”

특히 겨울에 부는 강풍은 평균 10m/s, 최고 30m/s에 달해 체감온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때문에 경계근무를 나가는 병사들에게는 발열내의와 발열조끼, 방한화 등을 반드시 챙겨 입도록 지시한다. 덕분에 환자는 거의 없다고 했다.

병사들 “삽질이 뭐죠?”

병사들은 현재 신형 막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과거에 사용하던 슬레이트 막사는 민간 업체가 철거공사를 하고 있었다. 부대 행정본부는 여전히 수십 년 전에 지은 슬레이트 막사였다. 블록과 시멘트로 만든 슬레이트 막사는 단열이 거의 되지 않았다.

“여름에는 선선하니 좋지만 겨울이 되면 솔직히 못 견딥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격오지 부대라 사령부에서 겨울용 연료를 넉넉하게 제공합니다.”

병사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부대 규모가 작은 탓에 생활관은 6인 1실로 사용 중이었다. 지난 5월부터 시행한 ‘동기생활관’을 여기서도 시행하고 있었다. 김재훈 소령의 말이다.

“동기생활관을 시행한 뒤로 갓 전입 온 신병들과 상담을 해보면 예전에 비해 생활하는데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처음 자대에 배치 받으면 아무래도 주눅이 들 수 있는데 이런 게 없으니 조금은 차분하게 부대 생활에 적응한다고 털어놓습니다.”

김 소령은 “물론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병사들 말을 들으면 장점이 더 많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병사들은 이제 더 이상 간부들의 업무를 대신 하거나 일과 이후에도 일에 시달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고급 지휘관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고 부대원이 초긴장 상태에 빠지는 일도 없다고 했다.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 있던 ‘삽질’ 또한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8386부대에서 병사들의 투표를 통해 ‘으뜸병사’로 뽑힌 김성환 상병도 ‘삽질을 왜 하냐, 다른 곳은 진짜 하느냐’고 되물었다.

공군은 지원병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가고 싶은 부대도 1, 2, 3지망을 선택하면 이 중 신병이 필요한 곳으로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김 상병은 1지망이 이 곳이었다고 했다.

“모두가 가는 군대인데 뭔가 특별한 곳에서 생활하고 싶었습니다. 거기다 친한 친구가 이 곳 선임병이었는데 부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는 이곳으로 지원했습니다.”

20여 년 전 공군 부대 이야기를 살짝 해줬다. 김 상병은 ‘그게 정말이냐, 말도 안 된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내를 맡은 이대준 대위도 ‘무슨 6.25때 군대 이야기냐’며 막 웃었다. 

김 상병이 말하는 태도나 분위기, 표정 모두 자연스러웠다. ‘연기력이 좋은 병사가 으뜸 병사냐’고 묻자 깔깔대며 웃었다. 김 상병은 솔직하게 ‘불만’을 털어놨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걱정을 했습니다. BX(공군의 PX)도 없다, 복지시설이 최악이다 등등 온갖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와 보니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부대 분위기가 가족적인 게 좋았습니다.”

다만 생활할 때 지겨운 것과 자연환경은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행단’으로 배치 받은 동기들과 만났을 때 자기 부대에는 수영장, 볼링장, 스타벅스가 있다고 자랑하면 괜히 열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8주마다 3박4일 외박을 나갈 수 있고, 격오지 근무 덕에 일병 때 13일, 상병 때 19일, 병장 때 20일의 정기휴가가 있다는 점은 약간이나마 위로가 된다고 했다.

다른 병사들의 일상생활을 살폈다. 긴장감은 없었다. 편안한 느낌이었다. 근무를 제외하면 과거 틈 날 때마다 삽질하고 작업하는, 그런 군대는 화악산 꼭대기에는 더 이상 없었다.

먹는 것도 식사 외에 컵라면, 과일, 빵, 아이스크림 등이 매일 나오고 있었다. 부대가 자체 운영하는 BX에는 먹을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간부 가족들에게 더 없이 열악한 주변 환경

병사들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군대 생활. 반면 간부들의 생활은 무척 힘들어 보였다. 병사들에게 업무를 맡기지 않아서인지 퇴근 시간이 되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혼자를 포함해 간부 대부분은 가평군 북면에 있는 관사까지 매일 출퇴근 한다. 과거 공군에서 유명했던 ‘버럭(버스트럭)’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대신 진중버스와 4륜구동 승합차(로디우스)를 출퇴근용으로 사용 중이었다.

매일 오전 6시 30분 관사 앞에서 진중버스와 로디우스가 출발한다. 약 1시간 가량 산길을 타고 올라오면 ‘공기가 다른’ 직장에 도착한다. 오후 5시면 퇴근한다. 포장되었다고는 하나 길이 워낙 좁고 거칠어 내려갈 때 더 위험하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자기 차로 출퇴근하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위험한데다 길이 험해 웬만한 차는 출퇴근하다가 망가지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라고.

간부들의 생활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가평군 북면은 면적은 가장 넓지만 인구는 제일 적은 지역이다. 인구 대부분도 노년층이다. 관사 주변에는 분식집조차 하나 없었다. 가평읍내로 나가도 커피숍 하나 없다. 인근 10km 내에는 초등학교 하나와 중학교 하나 밖에 없다. 

젊은 기혼 간부들은 아이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주변에 소아과나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었다. 때문에 아이들이 아프면 춘천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부대 간부들 중에는 ‘주말 부부’나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한 간부가 요즘 군대 생활을 설명해 줬다.

“90년대 군대요? 그랬다가는 큰 일 납니다. 저희들이 병사들 교육할 때나 지적할 때도 절대 쌍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병사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다들 남의 집 귀한 자녀들인데 우리가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제는 간부들도 자질이 무척 높아져 조근조근 말로 하며 잘 가르칩니다.”

또 다른 간부의 이야기다.

“실은 군대에서 사고가 나거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80~90년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줄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실은 부대의 문제라기보다는 각 개인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왜 입대할 때 안 걸러지는지 궁금합니다.

이제는 군에서도 전투력 강화만큼이나 병사들 안전 문제도 신경 씁니다. 누구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병사들이 곧 전투력이니까요. 훈련이나 교육할 때는 속된 표현으로 ‘빡세게’ 하고, 쉴 때는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제는 간부들일수록, 지휘관일수록 더욱 열심히 일하면서 모범을 보이려 합니다. 그래야 병사들이 보고 따르기 때문이죠.”

‘자연 환경’과 싸우는 화악산 부대, 본부에서는 알까?

군대에 다녀온 사람 대부분은 공군이라고 하면 ‘편한 군 생활’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 화악산은 달랐다. 부대 옆에서는 육군 이기자 부대가 국방부유해발굴단과 함께 생활 중이었다. 이기자 부대 지휘관들이 8386부대에 와서는 “우리 부대원들 중 말 안 듣는 애들 좀 보내야겠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라고 한다.

이런 화악산에서 생활하는 8386부대의 평시 적은 자연환경이었다. 하지만 보급이나 막사, 관사 등은 후방 또는 지상과 거의 비슷했다. 환경에 맞는 군수지원과 고급 지휘관의 관심이 필요해 보였다.

병사들을 위한 ‘병영문화개선’은 서서히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듯 했다. 그 다음은 격오지 부대에서 근무하는 간부들을 위한 ‘병영문화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