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패권경쟁과 한국의 대응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구한말 이후 현재에 이르는 우리의 국제정치사와 대외정책을 국제정치이론과의 긴밀한 연관성 하에서 고찰하고 있다.
구한말 이후 한반도는 세계사적 전환기마다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의 영향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근대국제정치질서가 형성된 이후 전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된 패권경쟁은 세 번 일어났다. 구한말 대영제국 패권에 대한 도전, 냉전기 미·소 패권경쟁,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이 그것이다. 패권경쟁의 결과는 기존 국제정치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영향은 쓰나미처럼 한반도를 덮쳤다.
구한말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고집한 조선왕조는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실패하고 일제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해방 이후 냉전이라는 이름 하에 전개된 미·소 패권경쟁의 소용돌이는 또 다시 한반도를 덥쳤다. 그 여파로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고 6·25전쟁이라는 전례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또 다시 미·중 패권경쟁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의 미래, 한반도 통일, 동북아 지역질서, 21세기 국제정치질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미·중 패권경쟁에 잘못 대처했다가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구한말만큼이나 국제정치의 중요성이 무겁게 느껴지는 21세기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 국가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의 뿌리를 키신저의 “외교혁명”에서 찾는다. 1971년 키신저에 의해 추진된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는 국제정치질서를 순간적으로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전환시킨 총성없는 “외교혁명”이었다. 이 책은 키신저가 봉쇄정책을 입안한 케넌의 “다섯개 중심국가론”을 국제정세 변화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어 “외교혁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패권경쟁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6·25전쟁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건국혁명과 6·25전쟁은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서 세계적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해방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1941년 8월 “대서양헌장”에 그 맥이 닿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이상주의적 외교전통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한·미관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패권경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패권안정이론,” “권력전이이론,” “세력균형이론,” “세가지 이미지 이론,” “신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등과 같은 국제정치이론들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서 이 책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패권경쟁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 전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이 책은 미·소 패권경쟁, 즉 냉전 종식 직전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교차승인을 추진한 북방정책을 키신저의 미·중관계 개선에 버금가는 “한국판 외교혁명”으로 규정짓고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고 있다. 동시에 이 책은 북방정책, 햇볕정책, 동북아균형자론, 한미동맹 공동비전 선언,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 세계화 정책 등과 같은 한국의 중요한 대외정책들을 패권경쟁과 국제정치이론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건국혁명’의 마지막 단계인 통일은 ‘보수적 외교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론,’ ‘동북아균형자론’ 등과 같이 이상적인 정책 구호로 주변국가들을 깜짝 놀라게 해서는 통일의 외교혁명이 성공하기 어렵다. 반동집단의 성채를 향해 소란스럽게 떼지어 행진해가는 것과 같은 급진적 방식이 아니라 국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보수적 전략’을 갖고 조용히 이슬에 옷 젖듯이 통일의 장벽을 허물어나가는 지혜가 통일전략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과연 국제정치에서 “도덕적 여유”는 없는 것인가 하는 국제정치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국제정치의 비극성은 국익을 위하여 비도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또한 그 비극은 국가의 안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그 목적만큼이나 도덕적으로 타당하고 정당한 가치를 때로는 방기하지 않을 수 없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국제정치적 선택에는 이런 비극적 측면과 딜레마가 항상 내재돼 있다. 그래서 도덕성과 국익 추구의 긴장관계에서 생겨나는 딜레마와 국제정치의 비극적 측면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는 "나는 내 조국을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한다(I love my country more than my soul)"고 말했다는 점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 김영호 저,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