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추진 핵심사안마다 黨 제동…"마무리 해라"'여론재판'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입장표명'
  • "마음속으로는 찬성하면서 대선에 불리할까 우려해 추진을 보류하는 것 아니냐."

    대선 출마를 목전에 둔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가 다시 한번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MB 최측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의 사퇴로까지 번진 한ㆍ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ㆍ한일군사협정)의 주도권이 청와대에서 새누리당으로 넘어오면서 부터다.

    정부는 한일군사정보협정을 국회 동의를 얻어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다, 야권 역시 이번 사태를 대선 이슈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박 전 대표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침묵을 '미덕'으로 여겼던 박 전 대표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유신정권의 후손이라는 약점 외에도 '친일(親日)이 아니냐'는 악플까지 뒤따르는 박 전 대표다. 정치권에서는 그가가 자칫 어중간한 입장을 보였다가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 새누리, 입장변화 중심엔 朴 있었다

    정부가 한일군사협정을 '잠정보류'하게 된 데에는 박 전 대표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3일 기자들과 만나 당이 정부에 협정 체결 보류를 요구한 것과 관련, 이한구 원내대표와 사전에 논의했는지 여부에 대해 "다 지나간 일을 묻고 그러냐. 지나간 일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건지…"라고 말해 교감을 사실상 시인했다.

    처음 이 협정이 비밀리에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마치 이 협정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27일 김영우 대변인의 논평이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테러집단의 테러활동 등 안보관련 정보를 필요한 경우에 교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협정이다."

  • 이러한 시각은 적어도 이튿날까지 계속됐다. 광복 이후, 한·일 양국 간의 첫 군사협정이 제대로 된 논의도 거치지 않고 '밀실처리' 된데 대한 야당의 공격은 가열되고, 국민여론은 악화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입장은 거론조차 안됐다.

    김 대변인은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독도와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문제와 같이 묶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체결로 계획된 29일 오후가 돼서야 이한구 원내대표, 진영 정책위의장 등이 만나 "국회와 상의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로 연기를 요청했다.

    진 의장은 "아무리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외통위나 국방위에 보고하고 국민의 검사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주요사업의 선택은 차기 정부 몫이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인 윤상현 의원은 "정부는 체결을 연기할 것이 아니라 차기 정부 판단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반대가 큰 데다가 민주통합당이 적극 반대하고 있는 만큼 대선을 앞두고 '무리'하지 말잔 뜻이다.

    ◆ 黨 지도부, 경쟁하 듯 청와대 압박 "손 떼"

    새누리당 지도부도 청와대를 향해 '더이상 일을 벌리지 말고 마무리에 애쓰라'는 신호를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가 한일군사협정 외에도 인천공항 지분매각,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정부가 주요사업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황우여 대표까지 나섰다.

    황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이제 이명박 정부의 끝 마무리를 짓는 마당에 무엇보다 강조해야 할 것은 부패와 비리 근절"이라고 했다. 저축은행 사태로 2007년 경선캠프 자금까지 논란이 되는 마당에 '자숙'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 ▲ 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양호상 기자
    ▲ 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양호상 기자

    유기준 최고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임기 말 청와대의 손 발을 꽁꽁 묶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부가 여당의 지원없이 주요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건 착각이다. 마치 물 없이 공중에 솟아있는 선박과도 같다. 대형 국책사업을 무리해서 추진하는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데는 분명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애당초 협정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당당하게 설명하고,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을 '가뿐히' 생략했다. 그러한 상태에서 '미래 권력'의 제동에 걸려 협정 서명을 불과 한 시간 앞두고 거둬들이는 수모를 당하게 됐다.

    ◆ 朴 입장은 여론에 있다?

    입김은 내뿜었지만, 아직 박 전 대표는 한일군사협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회가 개원했으니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할 것으로 본다.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추진할 때) 국민의 공감대가 필요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여전히 한 발 물러선 모습으로 '원칙론'을 앞세우고 있다.

    내용면에서는 함구한 채 '방법론'만 문제 삼으며 제동을 건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논란이 발생 이후 '여론재판'이 끝나고 대세를 따르듯 나오는 언급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보인다.

    미래권력의 위상은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뒤늦게 반격에 나서며 박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협정체결의 배경으로 "국익을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핵·미사일 위협 등 급변하는 대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정보 교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부정적 여론은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동북아 안보지형의 큰 틀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강화 구상을 더이상 미루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국익을 위해서"를 외치며 한미FTA를 강행한 바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렇다. '부정적인 여론'을 잘 알면서도 때론 정면으로 맞서 꼿꼿하게 해쳐나가야 한다. 문제가 됐던 절차적 문제도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의 사퇴로 형식도 갖췄다.

    남은 것은 이번 협정의 추진 여부다. 물론 칼자루는 박 전 대표에게 있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약속' '신뢰'를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꼽혀왔다. 지난 2008년 세종시 축소 논란이 불거졌을 때다. 당시 그는 세종시 사수를 외치며 현 정부와 맞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주저함은 없었다. 잠시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약속' '신뢰'를 상징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권가도의 채비를 마치고 오는 10일 출마 선언을 한다. 입을 다물고 당론 뒤에 숨어도 됐던 150명(새누리당 의석 수) 중의 1명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주요 현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당장은 논란에서 비껴갈 수 있지만 거듭될 수록 여론만 쫓는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

    차기권력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국민들의 여론에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담보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만약 끝까지 어중간한 입장을 유지한다면 그동안 '원칙주의자'로서 쌓아온 리더십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