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칼럼세상>

    이재오의 폭주(暴走)  

     

  • 이재오가 박근혜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날리는구나. 워낙 지지도가 밑바닥이다보니 급기야.

    어제 외신기자 초청 회견에서 박근혜를 정조준한 이재오의 직격탄.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란 이유로 리더십을 가지기엔 어려움이 있다.” “여성만이 가진 리더십을 말하는 건 아직 이르다.”

    준비된 비수! 왜 이게 이재오의 ‘준비된 비수’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이건 단순히 이재오 개인이 머릿속에서 조용히 내면적으로 갖고 있다가 얼떨결에 입에 올린 여성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속에 뼛속깊이 내장된 이른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얼마나 여성 정치인에겐 치명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이재오. 대세론의 박근혜를 꺾어버린 결정적 주무기도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을 사로잡고 있는 남존여비 의식이었음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박근혜는 2006년 대권·당권 분리 원칙에 따라 당대표에서 물러나고 후임에 강재섭을 앉힌 뒤 정치무대에서 한가롭게 물러나 있었다. 요지부동의 박근혜 대세론!

    당시 이재오까지 박근혜를 하늘처럼 모셨다.

    오늘의 이재오가 한나라당 원내대표이고 박근혜가 당대표였던 시절, 이재오는 중앙당사 회의실에서 기자들이 시커멓게 지켜보는 가운데 생일을 맞은 박근혜에게 흰색·노란색 섞인 장미다발을 선물하는 깜짝쇼까지. 박근혜는 함박웃음!

    이재오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박근혜에게 활짝 웃으며.

  • 서울시장 이명박이 대권 야심가로 거론은 되고 있고,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이 열린우리당을 기반으로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근혜로서는 ‘천막당사’ 시절부터 27개월 동안 당대표를 지내며 당을 완전 장악해왔고, 부동의 지지도 1위를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

    그러나 박근혜 대세론에 결정타를 날린 건 대한민국 정치판이 아니라 저 김정일!

    2006년 6월 김정일은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쐈다. 안보문제에 대한 국민의 각성도 커진다. 그래, 그럴수록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유리하겠지. 박근혜가 대통령 되나보군.

    이게 완전히 착각으로 규명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선후보 지지도 구도에 갑자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어라? 이상하다, 그럴 리 없는데.

    여론조사에서 ‘남자 후보’ 이명박과 고건의 지지도가 서서히 불붙기 시작. 그러나 박근혜는 김정일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단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침묵!

    이런 어정쩡하고 찜찜한 상황이 몇 달 계속되는 가운데 이명박과 고건, 고건과 이명박이 1위 박근혜를 코끝가지 추격하면서 2,3위 자리를 서로 주고받는 상황까지 도래.

    여기에 김정일이 결정타를 때렸으니, 그게 2006년 10월 북한의 제1차 핵실험!

    대한민국 ‘대권 시장’에 핵폭탄을 날린 것-노무현 탄핵 과정을 통해 행정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로 포장됐던 고건이 단연 1위로 급부상하고, 2, 3위를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자리다툼.

    이게 2007년 1월1일 모든 신문의 신년호 특집에 실린 여론조사 결과-어떤 신문에서는 1위 고건과 3위 박근혜의 지지도 차이가 3배까지 나온 경우도.

    박 근혜 대세론이 일거에 붕괴되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MB 캠프로 쇄도하기 시작-이때 이명박 캠프에 사실상 첫 깃발 꽂고, 대세론 따라 박근혜 캠프로 몰려갔던 의원들을 뒤에서 양떼 몰아 가 듯이 MB 캠프에 몰아간 좌장이 이재오!

    당시 친이계 작전통들은 “여자는 아직 대통령 돼선 안된다. 분단 국가에서 안보 때문에‘라는 구절을 노래 부르고 다니며 여론을 주도해 나갔다.

    박근혜의 사촌형부인 김종필까지 “여자는 아직 안 돼!”라고 외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MB는 박근혜를 향해 “아이 낳아보지 않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은…”이란 말로 박근혜가 여자임을 부각. 예상 밖으로 고건의 대선 불출마 전격 선언→MB가 확실히 1위를 굳힌다. 박근혜는 끝내 MB를 추적하지 못하고 2007년 8월20일 전당대회에서 패배.

    역사적 가정은 부질없다고 하지만 박근혜가 김정일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침묵하지 않고 팔 확확 걷어붙이고 앙칼지게 대들었다면 대한민국 대권사(史)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이재오가 박근혜가 ‘여성’임을 입에 올린 것?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에 칼을 댄 것-다분히 의도된 폭주(暴走). 폭주족이 300cc 스쿠터에 '소음 확성기' 갖다 붙여 왕~소리 내며 벤츠 뒤 따라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이재오의 다음 카드? 박근혜의 사생활이 되지 않을까? 더럽게 피 튀기는 전쟁이구나!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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